(364)제25화「카페」시절(6)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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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한인 편든 일 여급>
카페와「바」가 한창인 어느날 밤 이름을 잘 기억해낼 수 없는 한「바」에서 한국인과 일인이 민족적인 감정 때문에 싸움을 벌이고 일인 여급들이 한국인 편을 들고나선 사건이 일어났다. 당시 일본인들은 한국 사람을 불령선인이라 부르며 역적같이 취급했지만 총·칼을 쥐고 나대는 자와 맨주먹 밖에 없는 우리인지라 무슨 소리를 하든지 꿀꺽 참고 지내던 때 일이다.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이「바」는 경성욋과대학 일본인 교수 중에 경망하고 철 덜난자가 있어서 엉뚱한 소리를 했다. 제 딴에는 하나의 학설인양 크게 떠들었지만 그야말로 천만뜻밖의 수작이었다. 『조선인의 두개골을 연구한 결과 전일 몽고족 중 야만의 그것과 동일하다』는 것이었다.
도무지 말이 안되는 허튼 소리였다. 신빙성도 허술한 수작이지만 우리에게는 크나큰 모욕이 아닐 수 없었다. 그래서 일시 크게 웅성거렸지만 일인이 떠들어댄 수작이요, 일본인 권력자들이 그냥 그대로 받아주고 있으니 여기서 자칫 항의하고 말썽을 일으킨다면 반드시 망발한 자를 두둔하고 우리를 억눌러 불령선인으로 때려치울 것은 뻔한 일이다.
그러나 아니꼽고 시시한 수작에 한마디의 응수조차 못하고 그야말로 야만인의 두개골에 비슷한 체 꿀꺽 참자니 견디기 어려운 굴욕이었다.
어느날 밤 이 장본인이「바」에 나타났다. 물론 일본인이 경영하고, 여급도 전부 일본 여자만 있는 곳이었다.「바」이름은 얼른 생각이 나지 않으나 청목당 남쪽에 이웃한 집으로 기억된다. 이 집에는 키가 크고 몸집이 육중한 여급이 있었는데 별명이 1만t이었다. 그러니까 1만t급 호화선이라는 애칭이다.
또 한사람은 살색은 약간 검으나 색깔이 알맞고 키는 좀 적은 편이나 코와 눈이 시선을 끄는 여인이다. 이 여인은「클레오파트라」라는 애칭으로 불리고 있었다.
철딱서니 없는 젊은 의학도는 이 집에 단골손님이었다.
인간이 경박하니 술을 마시면서도 말이 많고 저 잘난 척이다. 이때 우리쪽 젊은이들도 자주 가는 축이 있었다.
우선 생각나는「멤버」로 명동에서「트로이카」라는「러시아」식「카페」겸 다방을 경영하는 연학년군과 자칭 천재로 이름을 날리던 김문집군, 그리고 나(필자)등 만만치 않은 사나이들이다.
마침 우리 일행이 있을 때 이자가 불어왔다. 이미 술은 취해 있었다. 제가 제일인척 안하무인이다.
우리 일행을 곁눈질 해가며 떠드는 수작이 아니꼽다. 그러나 무던히 참고 있었다.
그랬더니 이자가 또 한국사람을 빈정대는 망언을 털어놓았다. 우리는 언제나 참는 것 이상책임을 모르는바 아니나 우리의 분노는 극도에 달했다.
곁에서 듣고 있던 1만t이며「클레오파트라」는 참아가며 술 마시는 우리에게 미안했던지『왜 조선사람을 헐뜯어요. 그만해요』하면서 입을 막으려 애도 썼으나 이자는 그칠줄을 몰랐다. 이런 경우 우리 일행은 얼른 피해 나오는 것이 상책이지만 주호 김문집은 벌떡 일어섰다. 경성제국대학문과를 나온 사람이오, 일본말을 일본인보다 더 잘한다는 친구다.
『네 이놈!』
점잖게 호령했다. 한창 까불던 그자는 뜻밖의 호령을 듣고 당장 맞섰다.
『아니, 건방지게, 웬 수작이야.』
김문집의 대답은 주먹으로 대신했다. 성난 사자와 같이 달려든 김문집은,
『네 이놈, 섬 구석에서 원숭이새끼 같이 함부로 까불 줄만 아는구나. 말조심해!』
첫마디부터 일본인을 얕잡아보는 불령선인이다. 이에 분격한 그자는 화가 머리끝까지 올라 맞섰다. 두 사나이는 한국과 일본이나 대표한 듯 격전을 벌였다. 이때 우리가 나서서 뜯어말리려 했지만 이번에는 그자가 듣지 않았다.
『조선놈 건방지다. 너는 불령선인이다. 감옥에다 처 넣어야한다』고 고함을 쳤다. 이때 김군은 술이 만취. 약간 열세에 몰리는 눈치였다. 이때까지 말리기만 하던 일본인 여급들이 김군의 편을 들고나섰다.
『조선놈은 야만이다. 식민지의 토종이다』라고 고함을 치는 그자의 주먹이 김군의 가슴을 향해 날아들 때 중간에서 막은 여인이 바로 1만t이었다.
『이거 왜 이래요. 명색이 학자라는 분이 기껏하는 수작이 조선 사람을 헐뜯는 거요. 아무도 믿지 않는 수작 좀 작작 하라구요.』
곁에서 지켜보던「클레오파트라」도 동조하고 나서니 그자는 궁지에 빠졌고, 때나 만난 듯이 김군의 반격이 치열해져 그자는 기어이 KO되고 말았다.
이일이 있은 후 1만t의 입장은 크게 달라졌다.
『도대체 어떻게 생긴 여인인지 한번 가보세.』 북촌의 주객들이 몰려들었다. 혹시나 본정 경찰서에서 귀찮게 굴지 않을까. 1만t을 위하여 걱정도 했으나 별탈 없었다.
그후 1만t은 동경에서「바」를 경영하였다. 마해송군이 동경에 있을 때 한번 찾아갔는데 그때는 이미 40대였다.<계속>【이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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