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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3)<제25화>카페 시절(5)|이서구(제자는 필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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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멋장이 술집 「바」>
「카페」와 「바」는 몇 촌간이나 되는지는 몰라도 카페」가 한창 번창하게 되니 그 바람을 타고 등장한 것이 「바」다.
「바」란 역시 외래어요, 술을 파는 집이라는 점에서 「카페」와는 대동소이한 것이지만 우선 「카페」와 다른 점이 조용하고, 아늑하고 은근한 점이다.
요릿집을 귀족적 술집이라면 「바」는 의젓한 멋장이의 술집이다. 넓은 「홀」에는 「테이블」이 밀림같이 줄지어 놓이고 미희들은 벌떼같이 떠도는 형편이니 피차간 은근한 이야기는 통할 도리가 없다. 한창 손님이 몰려들 때쯤 되면 그 넓은 「홀」은 마치 술과 계집을 팔고 사는 장바닥이다.
어느 곳에나 미희는 들끓는다. 하지만 보는 눈은 있어서 그 중에서도 소위 「넘버·원」이라는 대표적 미인이라는 게 있게 마련이다.
술만 마시려면 집에서 병술을 사다가 마누라더러 따르라면 그것으로 고작이다. 그러나 사나이란 반드시 그렇지는 못해서 결국은 어여쁜 손이 따르는 술 생각이 간절해지게 마련이니 「카페」나 「바」에 미희가 없다면 이야기는 달라질 것이다. 그래서 옛 어른이 이르기를 「주·색·잡기」세 가지를 삼가라고 한 것이다.
「술, 계집, 도박」지금도 밤에 밤을 이어 도시의 밤은 이 세 가지로 저물고 새는 것을 보면 이 세상이 끝날 때 같이 없어질 지언정 막을 도리는 없을 것 같다. 술집에는 술만 마시러 가는 게 아니라 술 따르는 「호스티스」라는 이름의 서글픈 천사를 찾아가는 이상 어느 술집이나 술만 놓고는 장사가 안될 것은 뻔한 노릇이지만 「카페」손님들의 불편한 점은 술좌석이 공개된 점이다. 체모도 차릴 수 없고, 밀어조차 속삭이기 낯간지럽다.
이 같은 맹점을 제지하고 등장한 것이 곧 「바」라는 것이다. 「바」는 우선 조명부터 은근하고 의자의 키가 높아서 푹 파묻히면 은밀해서 좋다. 여급도 지극히 차분해서 속삭이듯 대화를 나누라면 제법 교양 있는 말도 듣게된다.
『「바」로 가세, 「카페」는 너무 요란스러워서, 젊은이들이나 갈 데야.』
중년이상의 멋장이들은 「바」를 찾아들고 20, 30대 젊은이들은 소리치고 떠드는 「카페」로 몰리게 된 것은 그럴법하다. 요즈음의 「바」는 「카페」의 소형일 뿐이다. 점잖게 노는 손님이 적어졌나 보다.
「카페」에는 주인이 없다. 없는 게 아니라 나타나지를 않는다. 그 대신 「매니저」(지배인)라는 게 있어서 주인노릇을 대신한다. 그러나 「바」라는 곳에는 중년을 바라보는 우아한 숙녀가 주인으로 등장해서 눈길을 끌었다.
화제에 막히지 않고 몸가짐이 멋져서, 여급보다는 훨씬 돋보이는 것이 잇점이다. 이것을 「마담」이라 불렀다. 서울에 「바」라는 게 등장한 것은 「카페」보다는 몇 해 뒤졌지만, 그 세력은 대단했다. 「카페」에서는 양으로 셈을 놓지만 「바」에서는 질을 가지고 나섰기 때문이다.
명치정에서 제일 먼저 「바」라는 이름으로 영업허가를 맡은 집은 청목당 주장일 것이다. 청목당은 일본에서 건너온 장사치가 벌인 장사 터이지만, 안목이 매우 고상하여 모든 것이 구미 식을 따랐다.
그 장소는 지금 헐리고 금은상들이 들이차 있지만 충무로 어귀, 신세계백화점 서쪽이요, 한국은행 서남쪽 「코너」에 있었으니 목조이지만 3층집이요 옥상에 전망대까지 있어서 신사숙녀들이 많이 찾았다.
이 집에는 여급조차 없이 「보이」가 술을 따랐다. 「바」로서는 최고급인 셈이었다. 「바텐더」가 「카운터」에서 여러 가지 양주병을 늘어놓고 소위 「칵테일」이라는 혼합 주를 만드는 솜씨는 제법 멋졌다.
그러나 이런 곳에 가서 「칵테일」쯤 마시려면 우선 「칵테일」에 대하여 아는바가 있어야 하는 것. 까딱하면 제돈 쓰고 촌놈소리 듣기가 일쑤이니 자연 모여드는 손님은 구미각국을 돌아보고 온 사람이었고. 그렇다보니 「칵테일」을 찾는 손님은 흔치 못했다.
이런데서 이름을 날리는 사람은 구미각국에 유학을 하고 돌아온 사람이나 고급관리들이었으니 양식 부는 손님이 들끓어도 주장이라는 데는 늘 조용했다.
그러나 청목당에서는 양주를 도매도 하였으니 시중에 나도는 양주는 대부분 청목당·귀옥·안합호 등 외래품 판매업자의 손을 거쳐서 나갔으며 지금 한창 화젯거리가 된 외국담배는 청목당·안합호에서는 시판이 허락되어 청지연·칼 표 여송연 등 외국산 담배를 자랑스럽게 물고 거드럭거리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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