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사태하의 근로자 권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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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노동청은 21일 일부기업체에서 국가비상사태선포를 악용하여 노동조합과 근로자들의 권익을 침해하는 부당노동 행위가 늘어나고 있다는 한국노총의 건의에 마라 전국 각시·도 근로감독관 실에 악덕기업주를 일제 조사하여 입건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노동청의 이러한 조치는 1월13일박대통령의 연두순시 때 지시에도 힘입은 것으로, 조사 내용은 노동조합을 인정하지 않거나 근로자들의 권익을 침해하거나, 또는 노동구경과 근로조건의 개선을 소홀히 하여 노사 분규를 일으켜 온 업체를 대상으로 하고있다.
노동청은 이미 지난 15일과 17일 근로자의 국민저축금을 유용하고 임금과 퇴직금을 체불한 강원도 공천의 모 업체와 15명의 종업원을 부당 해고 조처한 서울의 모 업체를 입건 송치했다. 한국노총에 의하면 이들 기업체 이 외에도 비상사태를 핑계로 하여 근로자의 권익을 침해하고 있는 업체는 상상 수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더 말할 것도 없이 비상사태 선언의 취지는 국민총회를 이룩하여 안보태세를 강화하자는 데 있는 것이지 결코 근로자의 근로삼권을 제한하려는데 목적이 있는 것은 아닌 것이다. 사실 비상사태 하, 우리의 방위력을 한층 강화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노사간의 일치단결이 필요한데 보위 법이 일시적으로 근로자의 파업권 등을 제한 할 수 있는 근거를 두고 있다하여, 이를 기화로 근로자의 권익을 침해하여 노사간의 감정대립을 격화시키는 것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노총이 고발한 내용을 보면, 비상사태를 빙자, 노사교섭권을 거행하고 노조활동의 부가를 공언하는 업체가 있는가 하면 노조원이나 간부 등을 부상해고하며, 단체협약의 체결에 부응할 뿐만 아니라 노조원의 조합탈퇴까지 강요하고 있다고 한다. 국가 보위 법 자체도 근로자의 단결권에 관해서는 하등의 규정을 하지 않고 있으며 근로자의 단체교섭 가이나 단체행동유의 행사는 주무관청에 조정을 신청한 다음에만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는 것이다. 동법 제9조의 정신도 무작정 헌법상의 단결사이나 단체 교섭권을 제한하려는 것은 아니라 생각되나, 어떠한 경우에도 헌법상의 국민의 저리가 부상하게 제한될 수 없다는 것은 민주국가의 당연한 요구라 함 것이다.
하물며 법에 따른 대통령의 특별한 조치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계기로 하여 부당 해고·임금체불 등을 자행하는 악덕기업 주는 마땅히 지탄의 대상이 되어야만 할 것이다. 비상 사태 하에 있어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되도록 빈부의 격차를 줄이고, 계급적 대립감정을 없애 노사간의 협조 「무드」를 더욱 제고함으로써 국민의 총화를 이루는 일이다. 그런데도 이 명백한 사리를 외면하고 일부 기업가들이 오히려 노동자의 권익을 침해함으로써 사회정의의 실천에 역행하는 듯한 인상을 준다면 이는 통탄을 금할 수 없는 일이라고 하겠다.
물론 이들 기업체들의 말못할 사정도 짐작이 안가는 것은 아니다 유례없는 불황 속에서 자금사정이 나빠 대금체불이 행하여지고 있으며, 또 경영합리화와 적자요인해소를 위하여 감정감치를 하지 않을 수 없는 사정도 전혀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다.
그러나 이러한 때일수록 노사간의 협조 정신이 요망되며, 근로자의 생계유지를 위한 군소 조의 고려가 있어야 할 것이다. 기업은 기업주만의 것이 아니라, 동시에 사회 전체를 위한 공익성을 저버릴 수 없다는 것을 모든 기업주들은 명심하고, 비상사태를 빙자한 근로자의 권익침해가 없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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