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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 단계의 「월남 진출」(1)-월남화 쇼크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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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월남화」계획의 진전과 함께 한국의 월남「붐」도 사라져 가고 있다. 이렇듯 급격한 경기 퇴조로 정리 단계에 접어든 현지의 움직임을 추적해 보면. <편집자 주>
「베드나미제이션·쇼크」는 주월 한국군 철수와 때를 같이해서 월남에 있는 한인 상사와 기술자들의 철수를 재촉하고 있다.
요즘 「사이공」의 관문인 「단손 누트」공항에는 출국하는 한국인으로 부산을 피우는 반면, 입국하는 일본인들의 소란이 눈길을 끌고 있다.
전우에서 피를 같이 흘린 한국의 기술자들은 『썰물처럼 나가』는데 일본의 상혼은 『밀물처럼 파고 도』는 야릇한 「베트나미제이션」의 반응이다. 「달러·박스」인 미군의 격감으로 미군 상대의 용역에만 거의 전 신경을 써 오던 한국 업체 앞에 황혼이 깔리고 자본 투자·일반 무역에 역점을 둔 일본 업계의 황금시대가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는 셈이다.
전쟁의 치열 상이 극으로 치닫던 69년6월에 54만4천명에 달하던 주월 미군이 오는1월말이면 13만9천명 선으로 감축되고 6월말께엔 3만∼5명밖에 남지 않을 공산이다.
확전 초기의 의롭고 난처한 미국의 입장을 이해, 5만 대군을 파월 해 준 한국에 대한 뼈저린 고마움 때문에 때에 따라선 월남 정부의 비위를 거슬려 가면서까지 한국에 경제적 이득을 많이 주려던 미국도 철군이 가속화하자 『싹 입을 씻고』월남정부의 정책에 장단맞추어 적극 협조하게 됐다.
경제적 「베트나미제이션」이라고 불리는 이 정책이 강력히 추진된 결과 미군 당국에 의한 용역사업, 건설회사의 입찰, 고용계약은 월남인 업자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방향으로 낙오되고 이른바 한국인이 주가된 제3국인의 문호는 개각 일보 전에 이르렀다.
월남 정부는 미국 측에 미군 관계사업 및 고용에 있어 월남인을 우대하고 제3국인을 강력히 억제하라고 꾸준한 압력을 가해 왔으며 7l년6월 주월 미국 대사관, 주월 USA1D와 원칙적인 합의를 보았기 때문에 현재 이를 실현하고 있다.
미군 철수·축전·예산 감축에 따른 작업량의 감소, 미·월 양군의 경제적 「베트나미제이션」, 미 원조 불의「바이·아메리컨」정책의 강행으로 한국 용역 업자들의 계약은 대부분 72년6월말엔 끝날 것 같다.
따라서 월남 업자가 기술·자본 면에서 혼자 감행하기 힘드는 업종에 한해서만 한·월 두 나라 업체의 합작의 길이 터 있는데 이것도 일정 기간 후면 월남 업체에 넘겨준다는 조건하에서만 가능할 것 같다.
이렇게 볼 때 6월말이면 월남에 남을 한미 기술자 수는 1천명 내외, 72년말까지는 수백 명에 불과할 것으로 보인다.
우리의 월남 경제 진출은 경제 진출이라기 보다 『월남에 있는 미군 기지에의 진출』이었다는 점에서 우리의 업체 진출이 월남에 깊숙이 뿌리박지 못했다.
이득이 큰 군납에 재미를 붙였던 용역 회사들이 이윤이 적은 합작 투자에 큰 흥미를 갖지 않으려는 것은 일단 수긍할 수 있지만 보다 거시적 관점에서 업자와 본 정부가 합심, 협력하여 투자의 방향을 전결케 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일이다.
한국 기술자들이 68년, 69년 월남으로 살도 했듯 지금 일본 업자가 이곳으로 몰려드는데 한국 기술자들은 빠져나가기 바쁘다는 것은 우리의 자세와 정책에 어딘가 허점이 있었다는 실증밖에 안 된다.
걸핏하면 나오는 전후 경제 부흥 계획에 참여할 수 있는 전원도 탁 트인 것은 아니다. 참전국으로서의 유리한 요건은 전쟁 종식 「패턴」때문에 사라졌다.
게다가 월남으로서도 전후 경제 부흥 계획에 투입될 자금 염출이 막연한 것이다. 월남에 들어 올 돈이 없으니 우리가 월남에서 따먹을 돈도 없는 것이다.
71년에 열릴 예정이었던 제5차 한·월 각료 회담은 두 나라 형편상 72년으로 연기됐으나 뚜렷한 안건이 없어 유보 상태에 있으며 한국의 월남전 후 경제 부흥 계획 참가에 획기적인 터전을 닦을 가능성도 희박한 것 같다.
주월 한국 대사관 경제 담당 김세원 공사는 미국의 경제적 「베트나미제이션」, 미국 대월 원조 자금의 「바이·아메리컨」정책 강화 (현 비율 80%)로 한국 업자들은 일대 타격을 받게 됐으며 활로는 월남 측과의 합작뿐이라고 내다보았다.
김 공사는 그러나 합작을 하는 경우라도 그 정의가 막연하며 운영 실제에 난관이 많고 합작을 하는 한국 업자에게도 월남 외자도입법, 각종 세법, 노동법이 엄격히 적용될 것이므로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는 것.
또한 우리 나라가 외자를 도입하는 나라임을 감안할 때 본국 정부의 자금 지원에 많은 제약이 있을 것이라고 김 대사가 강조했다.
일반 수출업체인 삼양「라면」의 한·월 합작 문제가 거론된 지 오래지만 아직 구체적 진전이 없는 것은 합작의 어려움을 입증하는 것이다. 하나 월남의 어족 자원은 풍부하므로 이 나라 어업에 투자하는 방안도 모색하는 게 좋다.
정착 의욕이 많은 비 진출 업체의 정착을 장려해야 한다. 1백만 이상의 병력을 유지하는 월남군 상대의 군납의 길을 개척할 필요도 있다. 석회석 매장량이 풍부하나 「시멘트」가 부족한 월남 「시멘트」사업을 합작하는 길도 검토해야 하겠다. 【사이공=신상갑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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