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시 악순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고교 문전마다 성시를 이루고있다. 입시를 보는 날이다. 영상의 날씨는 입시생들의 마음을 한결 풀어 줄 것 같다.
올해는 무시험 중학의 첫 졸업생들이 고교에 진학하는 해이지도 하다.
이 소년들은 이 세상에 나서 이제 처음으로 경쟁에 나선다. 창백한 아이들이 중학 입시장에서 발을 동동 구르고 있던 광경보다는 훨씬 어른들의 마음을 편하게 해준다. 고교 입시생이면 적어도 15세는 되었다. 어딘지 의젓하고 어른스러운 면모도 없지 않다.
그러나 고교 문전마다의 성시는 중학입시의 악몽이 3년만에 거듭되는 느낌도 없지 않다. 학부형들은 숙성한 수험생들의 앞장을 서서 시험장으로 몰려와 서성거린다. 불안하기는 중학입시나 고교의 그것이나 매양 한가지인가 보다. 아마 고교 입시장에 학부형이 동반하여 웅성거리는 풍경은 우리 나라 말고는 별로 흔하지 않을 것 같다. 「교육열」이라고 자찬하기엔 민망스러운 데가 없지 않다.
결국 입시 악순환이 해소되었다기보다는 3년쯤 유예된 것에 지나지 않았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일반적으로 구미의 각급 학교들은 입학은 쉽고, 졸업이 어려운 제도를 선택하고 있다. 그것은 교육적인 면에서도 과히 나쁠 것 같지는 않다. 졸업이 어려운 환경 속에는 학교에 따라서 학비가 많이 드는 경우도 포함된다. 어떤 명문교는 다만 그 명문의 전통 때문에 학비가 터무니없이 들기도 하는 모양이다.
한편 입학이 쉬운 학교일수록 학점을 따기가 어려워 힘에 겨운 학생은 제풀에 물러서게 된다. 이것은 우선 모든 학생들에게 학교선택의 폭을 넓혀준다. 또한 스스로 실력을 쌓지 않으면 안 되는 자동면학장치의 구실도 하는 것이다.
이것은 학교나 가정이 입시문제로 전전긍긍하는 부덕한 교육을 없애는 계기도 된다. 중학이나 고교는 상급에 이를수록 입시에만 얽매여 있는 것이 사실이다. 또한 입시준비는 가정생활까지도 긴장시키며, 그것은 많은 사람들에게 필요 이상의 좌절과 환상을 주는 것도 사실이다.
물론 그런 제도는 사회의 가치안정과 높은 양식의 수준이 전제되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교육악순환으로는 그런 것을 기대하기 힘들 것이다.
그렇다고 현실을 개탄만 하고 있을 것인가. 입시제도의 번장 만이라도 풀어줄 수 있다면 이 사회의 정신적 부담은 한결 덜해 질 것이다. 또한 개개인의 구체적인 가정생활도 한결 다른 분위기를 갖게 될 것 같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