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극의 원조 「몰리에르」-탄생3백50주년…서울서도 축전준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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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몰리에르」가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은 1622년. 그의 정확한 생일에 대해서는 학자들 사이에 논쟁이 있는 듯 하나 그가 세례를 받은 1월15일을 생일로 잡는 것이 일반적인 의견인 듯하다. 그러니까 금년이 그의 탄생 3백50주년이 되는 셈이다. 희극의 원조라 해도 과언이 아닌 그의 탄생 3백50주년을 맞이해서 세계의 연극계가 곳곳에서 희극의 축제를 마련하느라 서서히 술렁이고 있으며 서울에서도 4월에 오기로 되어있는 「프랑스」정부 파견 극단을 맞이해서 「드라머·센터」·광장·자유시장 등 4, 5개 극단이 「몰리에르」축전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동안 나는 웃음을 주제로 한 작품을 꽤 많이 연출해왔다. 그럴 때마다 나는 연극에서 웃음이 차지하는 비중을 강조해 왔다. 흔히 생각하듯이 웃음이 울음보다도 결코 천한 것이 아니며 희극이 비극보다도 저위의 예술이 아니라고. 그래서 내 안에는 건강한 웃음과 연극적 재미를 우리의 무대에 도입함으로써 선병질적인 문학성과 따분한 자연주의에서 우리의 연극이 탈출해야한다고 주장해온 것이다. 그러니까 연극성의 회복과 희극정신의 추구라는 단순한 생각이 나의 무대상의 창조에만 집념해 왔다고 하겠는데, 이러한 나의 집념은 한국 연극의 따분함을 극복하는데에만 뜻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한국사회에서 가장 결핍된 것이 바로 희극정신이라는 생각에도 연유하는 것이다.
이그러지고 위선적인 사회에 대한 처방이라면 너무 과장된 표현일까…하여튼 점잖은 의식구조를 가진 한국인들은 웃음을 웃는다는 것을 천하게 생각했고 더우기 자기가 웃음거리가 된다는 것, 웃음의 대상이 된다는 것을 참지 못할 뿐 아니라 두려워한다는 것은 사실인 것 같고 이러한 위선과 두려움을 연극을 통해 중화시킨다는 것은 연극인의 하나의 사명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이 「몰리에르」는 통쾌하게 그 시대와 사회에 웃음의 「메스」를 가한 것이다. 『탈튜프』에서는 신앙을 팔고 사는 거짓 신앙 가를, 『수전노』에서는 금전과 자기의 이익에만 집착하는 인간을, 『천민귀족』에서는 벼락부자를, 『돈·주앙』에서는 쾌락만을 추구하는 인간을, 『유식한 여인들』에서는 잘난 체하는 귀부인들을, 『여인학교(아가씨 길들이기)』에서는 애정을 독점하려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풍자하고 웃음거리로 만듦으로써 사회를 웃음의 홍수로 구원하려 들었다고 할까….
흔히 「몰리에르」는 영원불변의 전형을 무대에 창조했다고 하며 3백50년이란 긴 세월이 흘렀음에도 전혀 퇴색하지 않은 인간상, 오늘에 살수 있는 주인공들을 창조했다는 점에서 그의 위대함과 그의 작품이 오늘에 사는 고전으로서 평가되기도 하지만 그 자신은 단순히 그 시대의 뚜렷한 병폐를 날카롭게 추구하고 이들 인간성과 깊이 관련시켜 그림으로써 그의 인물이 시대를 초월해서 우리에게도 공감을 주는 전형으로 강조된 것이 아닐까….
또한 재미있는 것은 「몰리에르」는 작가이기 전에 배우요, 연극인이었다는 것이다. 그의 희곡은 결정적으로 쓰여지기 전에. 먼저 무대에서 상연되었다.
그의 작품의 인물들의 대부분은 사회적 「모델」을 자연주의적으로 묘사한 것이 아니라 무대 위에서 극적 재미와 필연성에 따라 구축되고 창조된 것이다.
그는 「셰익스피어」와 같이 작가이기 전에 연극인이요 또한 극단의 운영자였다.
그런 점에서 연극적 재미를 그의 작품의 근간으로 할 수 있었으며 이러한 그의 연극성이 웃음거리의 대상이 된 본인들까지도 즐길 수 있게한 것이 아닐까…사실 그의 시대에서 그의 웃음의 화살을 맞지 않은 사회계층의 인간은 거의 없다해도 과언이 아니지만 그들 자신이, 그들 자신이 웃음거리가 된 것을 즐길 수 있었던 것이다.
그의 작품이 좁은 소견의 사람들에 의해서 말썽을 일으킨 적도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그 시대의 인간들은 스스로가 웃음거리가 된 것을 참을 줄 알았다.
스스로가 웃음거리가 된 것을 모른 경우도 있었겠지만 그것을 안 경우도 웃어넘기는 아량이 있었던 것이 아닐까….
「몰리에르」가 이 세상에 태어난지 3백50주년, 그리고 이 세상을 떠난지 내년이면 3백주년이 된다. 그동안 인간사회는 많은 변화를 가져왔지만 인간성에 어떠한 변화가 일어난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이기적인 욕심과 외고집만이 늘어났다고 할까….
「몰리에르」의 눈으로 불 때 우리는 그 만큼 더 웃음거리가 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적어도 우리는 웃음거리가 된데서 겁낼 필요는 없는 것이며 현대인의 병폐는 통쾌한 웃음으로만 희유될 수 있다고 새삼 생각해보는 것이다. 【김정옥<연출가·중앙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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