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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5)<제24화>발명학회|목돈상<제자는 필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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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발명에 눈뜨다>
발명은 태평양 건너에서나 하는 줄 알았던 우리민족이 차츰 발명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세종대왕·이 충무공 등 선조들의 탁월한 발명 소질이 민족의 혈통에 흐르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발명학회의 장려운동이 크게 작용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과학지식보급회의 생활의 과학화, 과학의 생활화 운동은 뜻 있는 사람들로 하여금 생활주변을 냉철한 과학의 눈으로 살피게 했다.
그리하여 생활 주변부터 발명과 개량으로 과학화하는 움직임이 뚜렷이 나타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러다가 제2회 과학「데이」행사로 기세를 올리던 해인 35년에 발명 붐이 일어났다. 우리민족의 머리 속에 잠자고 있던 발명 능력이 발명학회와 과학지식보급회의 자극에 의해 비로소 꽃을 피우게 됐다고 해도 지나치지는 않을 것이다. 구태여 옛날의 선조를 들추지 않더라도 우리 나라엔 말총 토수로 첫 특허를 딴 정인호 씨와 같은 훌륭한 발명 선배가 있었다.
정씨는 1910년 말총 토수 등에 대해 한꺼번에 4건의 발명(당시는 전매) 특허를 등록했는데 이는 우리 나라 사람이 그로부터 1935년 10월까지 25년 동안에 특허건수 27건의 6분의1에 해당된다.
일제의 소위 소화연대에 들어서서도 만력호의 특허로 돈을 벌어 지금의 을지로인구 개성상회 옆에 3층 빌딩을 짓고 떵떵거리던 이성원 씨 같은 뛰어난 발명가가 있었긴 했다.
그러나 이씨 같은 발명가는 매우 희귀했기 때문에 발명학회의 발명장려 운동이 일어났다고 볼 수 있다. 아무튼 발명「붐」이 35년부터 일어나 몇 년간 절정을 이뤘다.
당시의 기록을 통해 발명 붐이 어떻게 일어났는가를 살펴본다. 1932년엔 고량전분정제법(안복평) 발조해제력조성장치(정관조) 등 5건의 특허가 등록 됐다. 그리고 실용신안은 황노(김한경) 초절기(이규청) 파종기(이재) 등 16건이 등록됐다. 33년엔 간유가공법(오영수) 등 단 2건의 특허가 등록 됐을 뿐이다. 실용신안은 빙상골지기(김관영) 보온기(김도희) 등 14건이 등록됐다. 34년에도 특허는 등사기의 잉크공급장치(이덕균) 등 2건이 등록됐을 뿐이며 실용신안 역시 전년과 마찬가지로 14건이 등록됐다. 14건 가운데선 임병치료기(박제원) 흑판닦이(신앙배) 등이 두드러진 것들이다.
그러다가 35년에 들어서서 특허와 실용신안의 등록건수가 급격하게 늘어났다. 특허는 공기총(송영길) 패류채취기(김은철) 등 11건으로서 전년과 전전년에 비하면 5.5배나 늘어났던 것이다. 실용신안권 역시 전년과 전전년에 비해 약5배인 67건의 등록을 보았다. 67건의 실용신안권 중엔 수시계(정순옥) 유동체의 용기(김덕운) 연탄화력 강화기(임학삼) 조선복 재봉형(이소담) 회전력(고유근) 등이 들어있다. 하긴 아무리 발명「붐」이라고는 하지만 오늘날과 비교하면 어림도 없는 숫자인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지난 70년엔 특허가 1천8백46건 출원에 2백66건 등록이고 실용이 6천1백67건 출원에 8백64건 등록였다. 그리고 71년 6월 말 현재론 특허 9백3건 출원 1백12건 등록, 실용 3천3백37건 출원 4백18건 등록이라는 숫자를 보이고 있다. 여기에 의장과 상표까지 합하면 우리 나라에서도 연 2만건 가까운 공업소유권을 출원해서 5천건 이상을 등록하고 있지만 그 질에 있어선 그렇게 자랑거리가 못되고 수도 선진 외국에 비하면 아직 대수롭지가 않다.
실정이 이렇게 대수롭지 않아서인지는 몰라도 요즈음 신문들은 발명에 대해 별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고작 발명의 날(5월19일)에나 2, 3단 짜리 행사기사와 더불어 계획기사가 실릴 뿐 우리 나라 사람의 발명에 대해서 냉담하다.
해방전의 민족신문들의 우리민족의 발명에 대한 관심은 대단했다. 과학「데이」나 정초엔 으례 우리 발명가의 업적이 대대적으로 소개되어 많은 발명가들을 고무했던 것이다.
지금 보관하고 있는 소화 11년1월1일자의 어떤 신문을 보니까 양 페이지에 걸쳐 발명을 다루고 있는 그 뒤에도 계속 4, 5일 동안 매일 발명기사를 취급하고 있었다.
제2회 과학「데이」행사로 기세를 올리던 해의 다음해 1월1일자의 신문에서는 우리 나라 사람의 손으로 이뤄진 발명이 급격히 늘고 있음을 나타내기 위해 공고된 특허와 실용신안 및 발명자의 명단을 구체적으로 발표하고 있다.
그리고 세종대왕·이 충무공·정평구(비차) 변이중(화차) 등 위대한 옛 발명가들에 대해 대대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그와 아울러 1천개 이상의 회사 연구소에서 3만명 이상의 연구자들이 발명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미국, 발명에도 5개년 계획을 추진하고 있는 소련, 많은 발명 장려금을 내고있는 일본 등의 발명계에 대한 소상한 소개가 나와있다. 발명에 대해 무관심한 오늘날의 신문들을 위해 참고가 되리라 생각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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