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상하는 대선거구제 논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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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국가비상사태에서 정치인이 해야할 것이 있다면 돈 적게 들이고, 지역에 얽매임 없이 국가적 차원에서 일하도록 제도를 개선하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새해 시무식이 끝난 1월4일 상오 공화당의 구태회 정책위 의장은 구랍 중순 정부·여당 연석회의에서 논의된 대선거구제도의 국회의원 선거제도 개선문제를 조용히 끄집어냈다.
연석회의에서 찬·반이 있어 일단 더 연구하기로 했던 것을 구 의장이 다시 제기한 것은 고위 결단이 청신호 쪽으로 내려진 징조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백남억 당의장은 상무회의와 의원총회에서 토론을 거쳐 당론을 결정하겠다고 했지만 집권당의 안정세 확보와 대선거구제로의 전환이란 기본 방향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공화당이 대선거구제를 내세우는 명분은 소선거구제에서 빚어지는 선거 타락과 의원들의 지역구 속박을 없애고 사표를 축소한다는 것 등이다. 이러한 명분이 새로운 선거제도하에서 완전히 살려지지는 않더라도 제도를 바꾸는 사실 자체가 심기일전의 계기가 되지 않겠느냐는 소박한 희망도 밑바탕이 되고 있다.
개혁안의 대강이 보도되자 신민당은 우선 경계 태세를 취했다.
이 개혁안이 가져올 새로운 정치·정당질서와 집권당에 대한 39석의 「프리미엄」의석이 피부적인 반감을 가져온 것 같다. 그래서 신민당은 개혁안을 분석 비판하는 이론을 다듬고 현행 소선거제를 유지하면서 제도적 개선방안을 연구하기 위한 당내 6인 소위원회를 재빨리 구성했다.
집권당의 절대 안정 세력확보와 정당의 통제강화를 특징으로 한 이 개혁안은 무척 복잡하고 낯설다. 특징적인 요점만 소개하면-.
▲선거구=전국을 22개로 나누어 선거구마다 국회의원 6명 내지 9명씩 지역구에서 1백53명, 전국구에서 51명을 뽑는다. 22개 선거구는 서울 전남 경북 경남이 셋씩, 경기 충남 전북이 둘씩, 부산 강원 충북 제주는 하나씩으로 구성된다.
▲후보자=지역구 후보는 정당별로 선거구의 의원정수만큼 서열을 붙여 낸다. 지역구 후보자는 전국구 후보를 자동적으로 겸하고 그밖에 따로 전국구 후보를 둘 수 있다. 전국구 후보는 명단만 등록하고 서열은 개표 후 소속정당에서 정해 지역구 낙선자를 구제할 수 있도록 했다.
▲투표 및 개표=투표는 정당이나 후보에게 모두 할 수 있다. 정당에 대한 투표는 그 선거구의 의원정수만큼 가중 계산되며 후보에게 투표할 경우에는 정당소속에 관계없이 의정정수까지 연기명 투표한다. 정당과 후보 양쪽에 투표한 경우에는 정당투표만 유효로 간주한다. 이러한 연기명의 A안 외에 정당이나 후보에게 단기 명으로 투표할 수 있는 B안이 있는데 당의 통제권 강화란 면에서 A안으로 기울어졌다.
▲의석배분=전국구는 대통령 당선 정당에 51석의 3분의1인 17석을 「프리미엄」으로 주고 나머지 34석을 정당 득표율에 따라 배분한다. 지역구는 선거구별로 총 유효투표를 의원 정수로 나눈 배분기로 각 당의 득표수를 나누어 결정한다. 다만 나누고 남은 단수 때문에 배분하지 못한 의석은 1석을 우선 집권당에 「보너스」로 주고 나머지가 있을 때는 득표수를 배분기로 나누고 남은 잉여가 큰 야당의 순으로 배정한다. 이 과정에서 집권당은 선거구 수인 22개만큼 「보너스」의석을 갖게 되는 것이다.
▲당선자 결정=각 정당별로 선거구의 득표 총수를 배분의석에 1을 더한 숫자로 나누어 당선기에 이른 후보는 우선 당선자가 되고 나머지는 서열 순으로 정당득표를 후보에게 이양해주어 당선자를 결정한다. 만약 이렇게 해도 배분의석을 채우지 못할 때는 서열에 관계없이 다수 득표자 순으로 나머지를 채운다.
공화당이 마련한 대선거구제 개혁안은 당초 당 간부들이 의도했던 외의 효과와 부수된 문젯점이 뒤따른다. 소선거구제에 뼈가 굳어 온 안일에서의 문젯점은 이 제도가 제대로 운영되면 오히려 장점이 되거나 해소될 것도 있을 것이다. 우선 이 개혁안은 전국구의 서열을 선거전에 정하지 않기 때문에 소위 『전국구를 판다』는 폐단은 상당히 없앨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점은 지역구에서 낙선했지만 당에서 꼭 필요한 사람을 전국구로 구제할 수 있다는 사실과 함께 장점으로 평가되나 백 당의장이 지적한바와 같이 동일 선거에서 국민의 심판을 받은 낙선자를 구제한다는데 이론상의 난점이 있다. 특히 대선거구제가 비례 대표라는 점에서 전국구제도를 현재같이 지역구의 3분의1이나 두어야 할 것 인가도 재평가해야할 문제다. 전국구의 비율을 줄여 남은 의석으로 지역구의 인구 비례 불균형을 조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얘기가 많다.
연기명 투표제를 채택하면 「아라비아」숫자로 된 기호표기를 작대기 표시로 바꾸자는 얘기가 나오는 현 실정에서 투·개표가 너무 복잡해 무효 표가 많아질 가능성이 크다. 특히 정당투표에 대한 가중 계산이 사실상 후보 단독으로 당선기를 얻기 어렵게 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당의 통제 강화란 점에선 오히려 정당 명부제도가 간편할 것이며, 국민의 선택권도 조화하려는 취지면 단기명 투표인 B안을 택하거나 제한 연기 명이 바람직하다는 의견도 있다. 어느 경우건 정당통제가 강화되고 그로 인한 파벌대립의 요지는 정당의 민주적 운영에 문제를 제기하고있다.
무엇보다도 큰 논란이 있을 것은 집권당의 「프리미엄」시비. 사표를 줄여 농촌에서의 야당 열세를 만회할 수 있는 대선거구 제도를 야당이 반대하게 된 가장 큰 이유가 이 「보너스」다
공화당에선 『야당은 집권할 자신이 없는 모양』(백 당의장 말) 『미국에선 다수 야당이 돼도 큰 문제가 없을지 모르나 우리 정치에는 파국이 올 것이다. 그러니 한국적 사고로 생각하면 집권당의 안정세력은 필수적』(구 정책위 의장)이라고 안정세력을 강조한다.
그러나 백 당의장도 『지역구 의석 배분 과정에서 단수처리로 인한 집권당「보너스」를 우리 안대로 쉽게 야당이 넘겨줄 것으로는 보지 않는다』고 야당과의 실질적 협상용의를 보이고 있다.
요컨대 집권당이·대선거구제도의 개혁방향을 잡은 이상 공화당내의 토론과 대야협상을 통해 얼마만큼 문젯점을 여과하고 당초의 명분에 충실한 제도를 구현하느냐에 제도개혁의 성패가 가름될 것이다. <성병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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