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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이상의 경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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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소설 『날개』에 보이는 『안해는 한달 동안 아달린을 아스피린이라고 속이고 내게 멕였다. 그것은 안해 방에서 아달린갑이 발견된 것으로 미루어 증거가 너무나 확실하다. 무슨 목적으로 안해는 나를 밤이나 낮이나 재웠어야 됐나? 나를 밤이나 낮이나 재워놓고 그리고 안해는 내가 자는 동안에 무슨 짓을 했나? 나를 조금씩 조금씩 죽이려던 것일까?』도 피해망상의 결과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어휘의 반복적인 구사는 분열증의 한 증상인 음송증(verbigeration)에 의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음송증의 증상을 가진 입원환자의 글과 이상의 시를 비교해 볼 때 거의 구별할 수 없는 것이 되어버리고 만다. 그러므로 이상의 시는 어떤 의미를 붙이기보다는 전달되어오는 느낌만으로 충분한 것이다.
『하나가전부를위한것이며전부가하나를위한것이다.또둘이전부를위한것이며전부가하나를위한것이다.또둘이전부를위한것이며셋이전부를위한것이다.여기저기어디서나전부』(주20)(칼·메닝거‥인간의 마음·이용호 역 P161) .
이것을 이상의 시라고 한다면 또 기발한 상상작용이 일어나게 될 것이다.
이 3편의 시에서 또 하나 문제가 되는 것은 『오감도』라는 시제와 시제이호의 『아버지』에 관해서이다.
『오감도』는 『내과』에 나오는 <자가용복음> 및 시제목으로 등장한 <브8씨의 출발><지주회시><삼심원>과 더불어 신어작화증(neologism)의 현상에서 나온 것이라 할 수 있고, 『아버지』는 어린 시절 아버지에 대한 어떤 문제가 심각하였음을 알 수 있게 하고, 그것은 퇴행현상을 가져와서 『오감도시 제일호』나 『날개』 등에서 유희의식과 유아의식을 보여주고 있다.
『평행광선을 굴절시켜서 한 촛점에 모아 가지고 촛점이 따끈따끈 하여지다가 마지막에는 조회를 끄스르기 시작하고 가느다란 연기를 내이면서 드디어 구녕을 뚫어 놓는 데까지 이르는 고 얼마안되는 동안의 초조한 맛이 죽고 싶을 만치 재미있었다』(날개).
오감도 시「제1호, 제2호, 제3호」 및 『내과』를 비롯한 문자화된 이상의 대부분의 시들을 당시 일본에서 유행하던 초현실주의의 여러 요소들의 수용에 의한 것이라는 수용가능성을 완전히는 배제할 수 없다. 이러한 수용가능성 때문에 흔히들 이상을 초현실주의자로 규정한다.
그러나 이상작품은 그러한 규정보다는 오히려 위에서 말한 피해망상증, 음송증, 신어작화증, 감정의 장애 등의 병적 증상의 결과라고 보는 것이 가장 타당한 견해가 될 것이라 생각된다. 초현실주의를 비롯한 전술적인 여러 외래사조들은 이상의 병적 증상에다 해체적인 시작의욕을 자극하는 다소의 자극제가 되었던 것이며 그것은 초현실주의의 수용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가설을 성립시킬 수 있다.
이러한 문예사조의 수용문제는 이상과 「다다이슴」과의 관계를 해명해야할 단계에 이르게 하며, 그것은 『오감도』「시제사호」와 「시제오호」를 통하여 설명할 수 있다.
시제사호
환자의 용태에 관한 문제
진단O·I
26·10·1931
이상 책임의사 이상
시제5호
전후좌우를제하는유일의흔적에있어서익은
불서목부대도
반왜소형의신의안전에아전낙상한고사를유함
장부라는것은침수된축사와구별될수있을런가
「다다이슴」은 일체의 전통을 부정하는 해체의 정신에서 출발하고 있다. 시의 내용과 형식을 부정한 「다다이슴」의 정신은 자폐증으로 인하여 극단적인 상징을 요구하는 이상의 병적 증상에 쉽게 접근할 수 있다.
오히려 이상은 「다다이슴」을 수용하기 이전에 이미 「다다이스트」의 생활을 하고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다다이슴」의 창시자들이 어떤 상황 속에서 생활을 영위했는지는 모르나, 「다다이슴」운동이 의도적으로 행해졌다면, 이상의 자의식과잉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이상의 작품이 외적인 문제보다는 내적인 증상에 더 많이 기인되고 있다는 것은 앞에서 말해온 바와 같으며, 이것은 「다다이슴」의 해체정신과도 어느 정도 교류되고 있었음에 틀림이 없다.
그러므로 「시제사호」가 현대문명을 진단하고 있다는 견해들은 「다다이슴」의 부정과 해체의 정신으로 볼 때 가능성이 희박한 관점들이며, 자폐증의 증상으로 볼 때도 의미해석은 불가능해진다. 「시제오호」도 동궤의 사실로 받아들일 수 있다.
이제 마지막 작업으로 이상의 작품에 나타나는 성도착증의 요소와 「지주회시」에 나타나는 보속증(perseverance)의 문제, 그리고 주지적 성격의 문체에 대하여 말하고자 한다.
이상의 거의 모든 작품에서 성도착증적인 요소를 찾아낼 수 있다. 원시적이고 미분화적이고 충동적으로 쓰여진 성적인 시가 많이 있음은 물론, 「날개」를 비롯한 여러 소설에도 보이고 있다.
종이로만든배암을종이로만든배암이라고하면 ▽은배암이다
▽은춤을추었다
▽의웃음을웃는것은파격이어서우스웠다 (『▽의 유희』에서)
『나는…아내의 화장대 앞으로 가까이 가서 나란히 늘어 놓인 그 가지각색의 화장품병들을 들여다본다. 그것들은 세상의 무엇보다도 매력적이다. 나는 그 중의 하나만을 골라서 가만히 마개를 빼고 병구멍을 내 코에 가져다 대고 숨죽이듯이 가벼운 호흡을 하여 본다. 이국적인 <「섹슈얼」한>향기가 폐로 스며들면 나는 저절로 스르르 감기는 내 눈을 느낀다.
확실히 아내의 체취의 파편이다. 나는 도로 병마개를 막고 상상해 본다. 아내의 어느 부분에서 요 냄새가 났던가를….』(『날개』에서)
프로이트의 말을 빌지 않아도 「배암」과 「▽」가 남자의 생식기를 상징하고 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이러한 충동적인 성적요소를 가지고 있는 성도착증은 피해망상으로 진전되어 분열증의 증상으로 나타나며, 다음으로 「지주회시」에 나오는 『그저 얼마든지 오늘오늘오늘』과 『보아라 안해가 거미다. 거미 아닐 수 있으랴 거미와 거미 거미와 거미냐』와 『날개』의 『아스피린·아달린·아스피린·아달린·맑스·말사스마드로스·아스피린·아달린』은 분열증의 한 증상인 보속증의 현상에서 온 것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이상의 시와 소설에 지적인 언어들이 많이 보이는 것은 지적성격의 특수성에서 온 것이 아니라 분열증의 지능화현상(주21)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정신분열증은 인격의 붕괴, 사고의 장애, 감정의 장애는 가져오나 지능의 장애는 가져오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상은 지능이 우수했기 때문에 거기에다 분열증의 증상인 지능화가 곁들여서 매우 지적으로 보이는 언어들을 구사하고 있었던 것이다.

<오감도시제호칠>
................략................
적거의지를관류하는일봉가신, 나는근근히차재하였더라. 몽몽한월아, 정밀을개엄하는대기권의요원. 거대한곤비가운데일년사월의공동. 반산전도하는성좌와성좌의천열된원호동을포도하는거대한풍설·강??·혈홍으로염색된암염의분쇄. 나의뇌를피뢰침삼아심하반과되는광채림박한망해…
쉬운 언어로써 충분히 전달할 수 있는 경우에도, 대중들이 잘 모를 고차적인 언어를 쓰지 않고는 배기지 못하는 강박적인 증세에 이상의 지능화현상이 나타나며 이것은 이상의 작품 전체에서 엿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말해온 사례에 대해서 의문을 가져올 수 있는 매우 중요한 문제가 있다. 즉 이상이 동경으로 건너가기 직전의 작품들과 동경에서 쓴 소설이나 사신·수필·동화들은 (「종생기」「날개」를 비롯한 몇 편의 소설과 「황소와 도깨비」및 많은 사신) 「오감도」나 「이상한 가역반전」시절의 작품보다는 점차 정상적인 모습을 띠어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이상의 정신분열증이 어느 정도 치료되어 가는 자연적인 치료과정에 있었다고 할 수 있고, 이 과정에서 수용된 것이 신심리주의의 소설방법의 하나로 등장한 「의식의 흐름」이다.
『이상이 동경에 도착하자, 여러 벗에게 계속하여 편지를 보냈으나 그것은 모조리 엽서였고, 동시에 서울서는 보인 일이 없던 모두 어두운 눈물의 자국이었다. 받아보는 우리가 한숨을 쉬지 않을 수 없는 사연뿐이었다. 그는 우리 앞에서 가장하여 쓰고있던 가마귀빛 같은 흑색의 복면을 벗고 백색의 비둘기의 본바탕을 보여주었다.』(윤태영·송민호:전게서 P84)
이상에서 이상의 작품을 그 난해의 이유를 통해서 살펴본 결과, 이상의 문학은 자의식문학에서 사용하고 있는 의도적인 기법의 사용으로 얻게 된 것이라고 하기보다는 자의식과잉의 병적인 상태에서 이루어진 결과라 할 수 있고 거기에 난해의 한계성을 훨씬 벗어난 이상문학의 특수성이 있다.

<오, 사족>
60여년의 한국신문학사에 있어서 난해의 시인, 가장 문제성을 띤 작가로 등장한 이상의 문학은 의도적인 내면추구를 행한 자의식문학의 한 방법의 요소가 되는, 여러 가지의 난해성을 보여 주었다고 하기보다는 자의식과잉에 의한 해체된 생활을 한데서 온 것이었다. 따라서 그의 작품이 초현실주의나 「다다이슴」과 다소 상통은 하고 있으나, 그것을 그대로 수용하고 있지 않은 내적인 증상에 의거한 난해성이라는 것도 규명해 보았다. 그리하여 이상의 문학은 어떤 의미화도 손이 닿지 않는 데에 그 난해의 한계성을 볼 수 있고, 이상의 작품에 굳이 의의를 붙여본다고 하면 「무의미의 의미」란 아주 역설적인 의의를 붙여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끝>

<주20>미국의 국립병원에 입원한 정신분열증 환자의 글

<주21>A. M. Freedman and H. I. Kaplan; Comprehensive text book of psychiatry. p549

<차례>
일, 서언
이, 자의식과 자의식문학
삼, 이상의 생활과 해체의 동기
사, 이상의 문학과 난해의 한계성
오, 사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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