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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청소할아버지 모자노점상 조천만씨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영하의 추위가 매서운 아침 6시. 서울 중구 남창동 52의4, 남대문 시장 안 자유극장으로 들어가는 골목길에서 「모자점 아저씨」조천만씨(59·서울동대문구답십리동4의135)가 대나무빗자루로 비질을 시작한다. 골목길은 너비2m, 길이50m가량. 밤사이에 행인들과 술주정꾼들이 어지러 놓은 오물과 쓰레기가 너절하다. 조씨는 먼저 전봇대주위와 담벼락에 묻은 오물을 물로 씻어 내린다. 장갑도 안낀 두 손엔 금새 오물 투성이.
그러나 그는 언짢은 표정한번 짓지 않는다. 때로는 오물에 막혀 흘러내린 하수구를 뚫기도 하며 빙판진 길에 연탄재를 주워다 뿌려 행인들이 미끄러지는 것을 막는다.
상오 8시. 자유극장입구∼남대문파출소∼남대문지하도 입구사이의 한길이 그의 비질로 말끔해졌다. 그제서야 조씨는 홀가분한 기분으로 노점의 가게문을 연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다.
지난 12년 동안 그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이 일대를 말끔히 청소해왔다. 그래서 남대문시장상인들 사이에서 착한 아저씨로 소문나 있다.
조씨가 비질을 시작한 것은 지난 59년 11월. 모자행상을 해온 그가 저축한 1천3백원으로 이곳에 노점을 벌이면서부터였다. 그때만 해도 이 길목은 판잣집과 노점상 등 오만잡상이 난장판을 이루고 있었다.
조씨는 처음 고객들의 불쾌감을 덜어주기 위해 가게 앞을 쓸기 시작했다. 내친 비질은 점차 남의 가게 앞까지 쓸어주었고 남산 소풍객이 느는 봄·가을철에는 하루4∼5번씩 쓸어야했다.
한참 비질을 하다보면 아는 사람들이 지나치며 『길은 뭣 하러 쓸어 뭐 먹을 것이 나오는 것도 아닌데…』하고 핀잔을 줄 때도 있다. 행인들 가운데는 먼지를 낸다고 투덜대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래도 조씨는 잠자코 비질만 했다.
『하찮은 일이지만 뭔가 남을 위해 이바지한다는 나대로의 조그마한 보람을 느끼며 살아간다』는게 그의 생활신조.
처음엔 극성스런 아저씨라고 수군댔던 이웃주민들은 얼마안가서 모두 그의 정성에 감동했다. 밤마다 연탄재를 길거리에 내버리던 주부들도 자진해서 버렸던 연탄재를 주워갔다.
정초를 맞은 지난 4일 조씨가 청소를 하는 동안 가게를 지켜주던 이웃 아주머니 배선희씨(41)는 모자 값을 몰라 찾아온 손님을 5명이나 돌려보냈다면서 안타까와했다. 그때도 조씨는 『돈만 벌면 다 되는게 아니야, 모자 좀 안팔아도 괜찮아』하면서 태연한 표정―.
조씨는 노점상에서 벌어들인 한달 수입 2만여원으로 그럭저럭 살아가고 있다. 서울서대문구답십리동4의135 싯가 1백만원짜리 그의 후생주택에는 아내 김복순씨(49)와 어머니 김분이씨(85)가 저녁마다 일을 끝내고 돌아오는 조씨를 기다린다. 미군PX에서 일하는 맏아들 태현씨(35) 등 6남매는 모두 분가시켰다.
조씨는 빗자루값으로 한 달에 6백원을 쓴다. 예전에는 한 자루에 10원짜리 싸리비도 열흘은 너끈히 썼는데 요즘 1백50원짜리 대나무빗자루는 일주일만 쓰면 모지랑비가 돼버린다고 불평이 대단했다.
새로 입고 나간 남편의 옷이 이틀이면 먼지투성이가 돼 세탁을 자주 해야 된다고 못마땅하게 여기던 아내 김씨도 이제는 남편을 이해하게 됐다.
맏아들 태현씨도 『아버지의 뜻을 그만두게 할 수는 없다』면서 어쩔 수 없다는 표정.
이제 남산으로 오르는 길목에는 아스팔트가 깔리고 관광호텔이 하늘높이 치솟았다. 그래도 조씨는 비질을 계속한다. 『내가 쓸고싶어 쓰는데 누가 뭐래?』 <금창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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