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상병 시집『새』출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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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시인이자 평론가인 천상병씨(41)가 행방불명이 된지 5개월만에, 그의 소식을 기다리는 시 우들에 의해 그가 남겨둔 시 60편을 모아 시집 『새』가 출판됐다.
천씨는 근년 알 콜 중독으로 아주 병 쇄한 형편인데, 지난 7월말까지 서울과 부산을 오르내리다가 행방이 묘연해졌다. 그래서 시 우들은 그의 소식을 기다리다 못해 주머니를 털어 유고 집이 될지 모르는 이 시집을 내놓게된 것이다.
송영택 씨의 발의로 시작돼 성춘복 씨가 인쇄비용을 내놓았고 또 이형기 박재삼 정인영 김구용 민영씨 등 평소에 가까이 지내는 사람들이 모두 힘을 합쳐 출간했다.
사륙배판 126면의 호화판 시집인데, 천씨의 사진을 구하지 못해서 김영태씨의 그림으로 초상화를 대신했다. 가정과 일정한 주거가 없는 천씨의 생활을 입증하는 삽화이다.
김구용씨는 이 시집의 발문『내 말이 들리는가』에서 천씨를 다음과 같이 회고하였다. 『그대는 범속한 상식으로는 따질 수 없는 일화를 많이 남긴 주인공이지만, 또 그 장난기로 어디에 숨어서 나 같은 사람의 하찮은 시름을 가가 대소 하는가. 그러지 말고 어서 나오게. 무던히도 때(구)를 타지 않던 마음아. 비범하고도 천진 무상한 웃음을 다시 활짝 보여주게나. 이상 선생의 무덤은 없어졌고 김유정 선생이 뼈는 강에 뿌려졌다지만, 그대가 전례 없는 승천을 하 실리 있나.』
의사로부터 한두 달밖에 더 못살 거라는 선고가 이미 내려진 이 기인은 어쩌면 아무도 모르게 타계했을 것이라는 게 시 우들의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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