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해를 되돌아보며|강신재<소설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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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일년이라 하고 해가 바뀌려는 막바지에 이르러 뒤돌아다보면 언제나 다사다난한 한해있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더러는 다행히 큰 탈없이 넘긴 경우도 있을 법하건만 예외 없이 그렇게 느껴지는 까닭은 사람의 기억이 고난과 더불어 더욱 깊이 새겨지는 때문이겠고, 또 실지로 사람의 사회가 단 1년을 평온 무사히 넘기기 어려운 구조를 지니고 있다는 이야기가 될 듯하다.
그러나 어쨌든 금년은 에누리없이 끔찍끔찍한 한해였던 것 같다.
국제정세의 미묘한 흔들림이 위협을 가져오고 가져가고 한 그 위험감도 근래의 어느 해의 비가 아니었으려니와 겉으로 평화적인 제의가 오갔으면서 급기야 비상사태 선포에까지 이른 북괴와의 관계, 스튜던트·파워의 문제 등 언뜻 생각나는 2, 3개월간의 일만 하여도 고개가 옆으로 저어지는데 크리스마스날에는 대 연각의 화재라는 대 참사까지 돌발하였다. 평화와 사람의 상징이어야 할 성탄절의 등불장식이 슬픔 속에 껌벅이다 써늘하게 헤식어 가는 느낌인 것을 바라보기는 참으로 고통스럽다.
이런 일 저런 일로 하여 연말의 거리는 살벌하고 걷고 있는 사람도 차를 몰아가는 사람도 대부분 제정신이 아닌 것처럼 여겨진다.
생각해보면 우리들 스스로가 가엾어 지기도 한다. 몸을 담고 있는 주위환경만 둘러보아도 탁한 공기, 위험한 음식물, 안전치 않은 건축, 노상 부딪고 뒤집히는 차량…이래가지고 어떻게 사람이 살겠는가 싶어진다. 이렇게 살아 난아 연말을 맞고 있는 일이 기적이다 싶어진다.
그러나 어떠한 해악이 수반되더라도 인간은 종래와 동일한 방향의「진보」를 결코 멈추지는 않을 것이고 보면 내년도에도 우리는 기계화문명 그 자체에 따르는 해독이며 그 실수나 미비에서 오는 참변이며 속을 헤치며 나가야 할 것만은 거의 확실하다. 그리고 또 아무리 싫고 몸서리가 나더라도 하게되면 하지 않을 수 없는 전쟁의 위협, 의견이 맞지 않는다고 날뛰는 젊은이의 문제 등을 여전히 안고 힘들게 나가야 할 것이다.
다 좋다. 하는 수 없는 일이다. 인간이 사는 곳에는 언제나 무언가 투쟁해야 할 거리가 있어왔다. 달갑지 않더라도 감당해 나갈 밖에는 없는 것이다.
다행이랄지 인간에게는 깊이 절망하였어도 다시 일어나는 힘이 부여 되어있다. 스스로 가엾다면서 앉아있어 보아야 아무 것도 개선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있는 것이다. 「기적과도 같이」살아 있는 순간의 귀중함을 자각할 수 있는 것이다.
그 생명이 그 순간을 어떻게 사는가는 사람 따라 의미도 방법도 다르겠지만 그 자신으로서 최선이 없지 않겠다. 그리고 원체 생명의 의의란 그 자신의 자각도 (도)와 비례하는 것이어서 취생몽사·몽롱히 반만 깨있는 것 같은 인생에서는 위대하달 것은 아무 것도 발견되기 않기 마련이다.
자기의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우리 나라에도 가득해졌으면 한다. 천사처럼 양심적인 인사는 물론 더러 속임수를 쓰는 상인도, 두발의 길이 때문에 경관과 승강이를 벌이는 청년도 모두 최선을 다한다면 결과적으로 「빌딩」이 무너져도 덜 무너지고 기차가 뒤집혀도 덜 뒤집혀질 것이다.
전쟁조차도 막아낼 수 있을는지 모른다. 인간으로서의 공감은 누구 건 실은 바닥에 갖고 있겠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년의「다사다난」은 부디 웬만한 정도로 그치게 하였으면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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