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이 가른 생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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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1백56명의 목숨을 앗은 참사의 이면에는 해장국 때문에 불행을 면한 사람, 예약된 방을 뺏기는 바람에 화를 면한 일가족이 있는가하면 평상에 한번들 른 고급 호텔의 환락이 죽음의 길이 된 사람, 바쁜 직무 때문에 공 휴 출근했다가 죽은 사람들 희비와 아 슬한 생사의 갈림길이 있었다.

<쉬트 찢어 연결 8층서 5층에, 5층서 옆 건물로>
성모병원 612호실에 입원한 대도화남씨(28·일본 CDC회사의 기사)는 907호에 들었다가 기지로 위험을 탈출했다. 대도 씨는 25일 상오9시30분쯤 일을 보기 위해 밖으로 나가려는 순간 연기와 이상한 냄새가나 복도의 문을 열자 열기가 확 하고 들이닥쳤다.
『불이다』직감한 대도 씨는 쉬트 커버를 모조리 뜯어 연결, 한끝을 의자에 묶어 의자를 창문에 걸고 쉬트 줄로 8층 7호실 창까지 내려와 유리문을 발로 차 깨고 들어갔다.
807호실에는 일본 야마모도씨(산본·37)가 당황해 있었다.
두 사람은 쉬트커버를 다시 연결, 7층으로 내려갔으며 똑같은 방법으로 5층까지 내려갔다.
5층 창을 연 이들은 바로 2m아래 있는 옆 건물지붕으로 탈출한 것이다.

<예약했던 방 뺏겨 일가 7명 화 면해>
충남 아산 군 온양 읍 온천 리 공립의원원장 백남은씨(48)의 일가족 7명은 24일 하오3시쯤 대연 각 호텔에 전화로 방을 예약하고 일가족 7명이 올라왔으나 호텔 측에서 방을 다른 손님에게 주어 방을 뺏기는 바람에 대원호텔로 옮겨 화를 면했다.
백씨 가족은 서울 장 충 중 1년에 재학중인 장남 용기 군(13)이 방학을 맞아 가족들이 함께 서울서 크리스마스를 보내기 위해 상경했던 것. 친지들이 원장가족이 대연 각에 묵고 있는줄 알고 구조본부에 생사여부를 조회한 것이 잘못되어 한때 일가족이 소 사된 보도도 나왔다.

<해장국 덕택에 살아, 재미교포 김씨>
7층에 투숙했던 재미교포 김병남씨(30)는 해장국 덕택에 무사했다. 김씨는 미국을 떠날 때부터 해장국생각이 났는데 이날 아침 일찍 해장국 먹으러 갔다고 호텔을 떠났던 것. 김씨는 H관에서 해장국을 먹다가 불 소식을 들었다.

<8층에서 뛰어 상처 없는 처녀>
6층에 투숙했던 최영희 양(23)은 상오9시30분쯤 목욕을 하다가 불이 난 것을 알았다. 최 양은 당황하여 쉬트를 뒤집어쓰고 뛰어 내렸으나 기적적으로 발만 조금 다치고 무사했다.
8층 종업원 최태욱 양(22)도 불이 나자 6층 베란다까지 뛰어내려와 땅위에 있던 사람들에게『나 좀 받아달라』면서 뛰어내려 화 마에서 탈출했다.

<침 작이 구한 생명 옆의 사람 구조도>
헬리콥터로 구출된 이범상씨(35·서빙고 동231)는 강인한 체력과 불의의 사고에 침착한 태도로 자기의 생명을 구하고 다른 사람까지 도운 케이스.
이씨는 24일 밤늦게 술을 마신 뒤 18층 14호실에 들어있었다.
불이 나자 연기 속에서 우왕좌왕 하는 사람들 틈에 끼어 서쪽 끝 방까지 피신한 이씨는 창문 밖으로 몸을 내밀고 구조를 요청, 헬리콥터에서 내린 로프를 간신히 잡았다.
이씨는 거의 질식상태로 옆에 있던 40대의 남자에게 로프의 쇠고리를 잡게 하여 같이 구조되었던 것이다.

<연하장 정리 위해 휴일 출근 소사>
호남정유 총무이사 심상웅씨(51·의정부시장안동187)는 휴일을 이용, 친지들에게 보낼 연하장을 정리한다고 회사에 나왔다가 참사했다.
심씨는 연말의 업무가 밀려 이날 아침 일찍 출근, 11층 자기 방에서 일보다 피하지 못했다.
육사 특별7기 출신으로 6·25때 중대장으로 참전한 심씨는 육군 통신 감을 지내고 지난64년 준장으로 예편, 호남정유의 총무이사로 취임했었다.

<파티 끝내고 잠들어>
Y다방 종업원 이화자양(20·영등포구 시민아파트 7동)은 24일 밤11시쯤 일을 끝내고 평소 사귀던 남자와 함께 대연 각 호텔 클럽에 들러 크리스마스이브를 즐겼다.
이양은 25일 새벽 5층1호실에 투숙, 단잠에 빠졌다가 눈을 떴을 때는 이미 검은 연기가 방안을 메운 뒤. 이양은 허우적거리며 베란다로 기어나가다 숨졌다.

<다정한 두 동창생 뛰어내리다 죽기도>
무참히 죽은 민병무군(19·서울대공대건축과 l년)과 방희준 군(19·서울대공대재료공학과 1년)은 지난봄에 경기 고를 졸업, 서울대공대에 나란히 합격한 다정한 친구사이.
이들은 친구들과 크리스마스파티를 가진 뒤 25일 새벽 호텔 9층에 방을 얻었다. 불길이 건물을 휩싼 상오11시쯤 민 군은 창 밖으로 뛰어 내렸으나 온몸이 으깨어져 숨겼고 방 군은 방안에 남아 있다가 불타죽었다.

<고향보고 파 귀국 재일 교포도 참사>
10층10호실 침대에는 일본인 소전영치씨(50 대판시)가 죽어 누워있었다.
해운관계회사를 경영하는 소전 씨는 한달 전에 내한, 대연 각 호텔에 장기 투숙했다.
친구 장인갑씨(50)에 의하면 소전 씨는『고향의 가족이 보고싶다』면서 27일 출국예정이었다는 것.
장씨로부터 참변 소식을 들은 부인 소전환자 씨와 맏아들 소전승계 군(22)이 26일 하오5시15분 JAL기 편으로 날아와 경희대병원 시체실에서 주검과 상봉했다. 부인은『유해를 일본으로 가져가 고향의 동산에 묻겠다』면서 눈물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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