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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청 전관예우 의혹 … 32명 수리 전문업체 취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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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문화재청 출신 공무원들 중 문화재 수리 기술자 자격증을 취득한 상당수가 문화재 수리와 관련된 업체에 취업한 것으로 드러나 또 다른 전관예우 논란이 일고 있다. 이는 본지가 문화재청을 통해 단독 입수한 ‘문화재 수리 기술자 중 문화재청 출신 직원 현황’을 통해 10일 확인됐다. 이 문건에 따르면 1971년부터 2009년까지 총 57명의 문화재청 출신 공무원이 문화재 수리 기술자 자격증을 땄다. 56명이 보수 기술, 1명이 단청 자격증이었다. 57명 가운데 절반이 넘는 32명은 퇴직 후 건축사무소·조경·건설 등 문화재 수리를 전문으로 하는 업체에 취업했다.

익명을 요구한 문화재 수리업체 대표는 “자격증을 딴 문화재청 출신 직원들이 수리업체를 직접 세운 경우도 많다”며 “ 문화재청 출신 직원만 있어도 업체로선 입찰에 유리한 것이 사실”이라고 전했다.

 이 과정에서 문화재청 공무원들에게 필기시험 일부를 면제해주는 특혜가 작용했다는 주장도 있다. 수리 기술 자격증은 2002년까지만 해도 문화재청 수리기술과에 10년 이상 근무하면 필기시험 모두를 면제했다. 필기와 면접 위주인 상황에서 필기 면제는 사실상의 합격이나 다름없었다. 문화재청은 시민단체 지적이 계속되자 2003년 법령을 개정했다. 문화재수리 등에 관한 법률 제8조 3항을 고쳐 ‘문화재 수리 업무에 10년 이상 종사한 6급 이상 공무원에게 해당 분야 문화재 수리 기술자 자격시험 중 일부 필기시험 과목을 면제’하는 것으로 바꿨다. 면제 대상은 단청을 제외한 보수·실측설계·조경·보존과학·식물보호 등 5개 자격증 시험에서 5개 과목 중 2개(문화재 법령, 한국건축구조 등 논술형)다.

 황평우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장은 “보수 자격증 시험에서 면제되는 전공 과목인 한국건축구조는 전공 시험의 핵심”이라며 “예컨대 숭례문의 건축구조적 특징을 알아야 복구작업을 이해할 텐데 이 시험을 면제하는 건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황 소장은 “문화재청 출신 공무원이 수리기술 자격증을 쉽게 딸 수 있는 건 필기시험 면제 덕택일 것”이라고 말했다. 2010년 수리기술 자격증 면접위원이었던 김호석 전통문화대 교수는 “문화재청 공무원이 면접을 올 때 누가 쉽게 불합격시킬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문화재청장 “자격증 불법 임대 수사 의뢰 검토”

자격증 소지자 중엔 숭례문 복구공사와 단청작업을 감독했던 문화재청 수리기술과 전·현직 공무원 3명도 포함돼 있었다. 이들이 면허를 획득한 시기는 89~95년으로 필기시험 전면 면제 혜택이 있던 시기다. 당사자들은 “필기 면제 혜택을 받지 않고 시험을 치러 합격했다”며 “필기 면제를 받은 공무원일지라도 10년 넘게 각종 문화재 수리 현장을 다니며 배운 경험이 있다면 기술자격증을 획득할 자격이 충분하다”고 말했다.

 한편 변영섭 문화재청장은 9일 본지와의 전화통화에서 “문화재청 차원에서 (숭례문 부실 복구 에 대해) 자체 감사를 하고 있다”며 “감사원도 감사에 착수할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석굴암 균열 문제에 대해선 “ 당연히 보강이 필요한데 이를 위해 구조적 상태를 정확히 조사하는 게 먼저”라며 “세계적 학자라도 초청해 공론화하면서 대책을 강구하겠다”고 말했다. 본지의 ‘문화재 수리 기술자의 자격증 불법 임대’ 기사와 관련해선 “조사 후 수사를 의뢰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문화재수리 등에 관한 법률 10조 3항은 ‘다른 사람에게 자기 성명을 사용하여 문화재 수리 등의 업무를 하도록 하거나 문화재 수리 기술자 자격증을 대여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감사원의 한 간부는 “숭례문 부실 공사와 관련해 꽤 오래전부터 자료를 축적해왔다”며 “본격적인 감사 착수를 위한 사전 조사를 진행 중”이라고 전했다.

안성규·이승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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