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희, 이번엔 "박근혜씨 독재자" … 야당은 역풍 우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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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희 통합진보당 대표가 대중집회에서 ‘박근혜 대통령’이란 호칭을 쓰지 않고 ‘박근혜씨’라고 불렀다. 역대 대통령을 향해 상대진영에서 쏟아냈던 험한 말과는 성격이 다르다. 이 대표의 호칭 속엔 박 대통령을 대통령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뜻이 담겨 있어 여권의 반발을 사고 있다.

 이 대표는 9일 서울역광장에서 정부의 당 해산청구를 비난하는 연설을 10여 분 동안 했다. 박 대통령을 주어로 한 언급이 세 차례 나왔는데 한 번도 ‘대통령’이란 표현을 쓰지 않았다. “정권 비판한다고 야당에 내란음모죄를 조작하고 정당해산까지 청구하면서 헌법 파괴하는 박근혜씨가 바로 독재자 아닙니까? 시키는 대로 하지 않으면 검찰총장까지 잘라내는 박근혜씨가 독재자 아닙니까?”라거나 “박근혜씨를 여왕으로 모시고 숨죽이는 바로 저 새누리당…”이라는 식이었다. 이날 오후 7시 서울광장에서 한 집회에선 박 대통령의 유럽 순방을 언급하며 “39년 만에 ‘박근혜 공주’가 파리를 방문했다”고 비꼬기도 했다.

 이 대표는 지난해 대선후보 TV토론에서도 박 대통령 면전에서 독설을 퍼부었다. 이 대표는 당시 TV토론 출연 자체가 “박 후보를 떨어뜨리기 위해 나온 것”이라고 선언해 논란을 일으켰다. 야권 내부에서조차 당시 이 대표의 지나친 태도가 보수층을 결집시켜 대선 패배의 주요한 원인이 됐다는 분석이 나왔을 정도다.

 과거에도 대통령을 향한 막말, 폄훼 발언 논란은 있었다. 2009년 대정부질문에선 당시 민주당 천정배 의원이 이명박 전 대통령을 가리켜 “쥐박이·땅박이·2MB”라고 했다. 2003년 한나라당 의원들은 연극을 하면서 노무현 전 대통령을 ‘노가리’란 등장인물로 등장시켜 “이런 육실헐 놈” 등의 표현을 썼다. 1998년 당시 한나라당 김홍신 의원은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입을 공업용 미싱으로 꿰매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대표의 발언은 대선 불복성 발언이란 점에서 다른 차원의 논쟁을 일으키고 있다. 명지대 김형준(정치학) 교수는 “박 대통령과의 대립을 통해 통진당의 분노를 전달하고 투쟁의 중심에 서겠다는 건 이해가 가지만 이런 발언은 결국 진보세력과 야권 전체에 해가 된다”고 지적했다. 민주당 관계자도 “2004년 한나라당의 탄핵 역풍에서 보듯, 국민의 선택 자체를 무위로 돌리려는 주장은 역풍만 맞을 뿐”이라며 “진보당이 걸러지지 않은 분노를 표출하고 있지만, (민주당과) 진보당의 거리는 더 멀어졌다”고 했다.

 이날 청와대는 굳이 공식 반응할 가치도 없다는 투로 대응했다. 하지만 내부에선 불쾌한 기류가 역력했다. 한 핵심 관계자는 “국가원수에 대한 비난이 도를 넘은 것 아니냐”고 되물었다.

 새누리당 홍지만 원내대변인은 “대통령을 ‘박근혜씨’로 지칭한 이 대표는 진보당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기엔 부적격자”라며 “국기문란·내란음모에 휘말린 것만 가지고도 이정희 대표는 국민 앞에 석고대죄해야 마땅하다”는 공식논평을 발표했다. 이에 홍성규 통진당 대변인은 논평에서 “더 이상 어떻게 예의를 갖추기를 바라느냐”면서 “끓어오르는 분노를 삭이고 최대한의 예의를 취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글=하선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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