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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멀 vs 로맨틱 디자인 취향 다르지만 끝장 토론으로 풀지요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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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8호 17면

5일 서울 청담동 비욘드뮤지엄에서 열린 2014 S/S 앤디앤뎁 컬렉션. 김 대표와 윤 이사가 모델들과 함께 했다

남자는 고등학교 때 록음악에 빠졌다. 중학교 때까지만 해도 군인이나 정치인이 되리라 마음 먹었다. 하지만 그룹을 만들어 공연하러 다니면서 ‘즐거운 삶’을 꿈꾸기 시작했고, 음악을 즐기며 할 수 있는 일을 찾다 패션을 생각했다. 어릴 적부터 어머니와 함께 양장점을 드나들며 옷이라면 관심이 많았다. 집안에선 난리가 났지만 어머니는 든든한 후원자가 돼 줬다.

9년 만에 단독 패션쇼, 앤디앤뎁의 김석원·윤원정 부부

여자도 처음부터 패션을 생각한 건 아니었다. 장래 희망을 적어내야 할 땐 꼭 의사를 썼다. 하지만 고등학교 때 응급실에 갔다가 마음을 바꿨다. 평생 아픈 사람들을 돌보는 일로 행복해질 자신이 없었다. 그때 어머니 손에 이끌려 자주 갔던 양장점을 떠올렸고, 사람들을 멋지게 만들어 주자는 꿈을 품었다.

데칼코마니처럼 닮은 유년 시절을 보낸 동갑내기 두 사람. 앤디앤뎁(Andy& Debb)의 김석원(43) 대표와 윤원정(43) 이사다. 김 대표와 윤 이사는 뉴욕 프랫 인스티튜트 패션 디자인과에서 만나 결혼을 했고, 99년 둘의 이름을 딴 브랜드를 론칭했다. 김 대표가 프러포즈를 사랑 고백 대신 “같이 브랜드를 만들자”고 에둘러 말했다는 일화는 지금까지도 유명하다.

그로부터 14년이 흘렀고 둘은 ‘앤디앤뎁 스타일’이라는, 절제되면서도 여성스러움이 가득한 특유의 색깔을 만들어 내며 주요 백화점 16곳에 매장을 냈다. 국내 시장이 럭셔리 브랜드와 저가형 패스트패션으로 양분된 요즘에도 꿋꿋하게 버티고 있는 셈. 그렇게 무탈하게 지내나 싶었는데 지난주 소식이 들려왔다. 9년 만에 단독 패션쇼를 연다는 것. 행사 전 티저 동영상을 만들어 대대적 홍보에 나섰다고도 했다. 둘에게 무슨 변화가 생긴 것일까. 5일 컬렉션을 보고 다음날인 6일 서울 성수동 사무실로 그들을 만나러 갔다.

펜싱·양궁·사격을 모티브로 삼은 컬렉션. 정지 자세가 아름다운 스포츠를 앤디앤뎁의 우아한 스타일로 풀어냈다.

매너리즘 벗어나려고 단독 패션쇼
부부의 얼굴엔 피곤함이 그득했다. 전날 컬렉션이 끝나고 애프터 파티가 이어졌고, 이른 오전엔 새로 나왔다는 원단을 보러 외출했다고 했다. 그런데 ‘방전 상태’는 아니었다. 오히려 어려운 시험을 한바탕 치르고 나서 아직 차분해지지 못하는 흥분이라고 해야 하나. 그런 에너지가 느껴졌다. 컬렉션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아 보였다.

“패션쇼를 왜 따로 했느냐고요? 한 마디로 ‘도전’이었죠. 매너리즘에 빠지는 느낌이 들었어요. 서울패션위크의 공식 행사장에서 계속 쇼를 하다 보니 새롭게 할 여지가 별로 없더라고요. 쇼가 바로바로 이어지니까 무대 변경도 힘들고, 시간도 제한적이고….”(김) 컬렉션을 숙제처럼, 그래서 쳇바퀴 돌 듯 긴장을 안 한다는 생각이 들면서 안 되겠다 싶었다고 했다.

힘들 거라 짐작은 했지만 정말 힘들었단다. 장소 섭외부터 게스트 리스트 작성, 애프터 파티 메뉴 선정까지 하나하나 손 안 가는 일이 없었다. 하지만 설레다가 초조했다가 끝나고 나니 또 허무한 이런 감정의 변화를 얼마 만에 느껴보는지 모르겠다며 둘 다 만족스러워 했다. “특히 모든 걸 신경 써야 하는 그 긴장감이 정말 좋았어요. 우리 회사 같은 규모에서 이런 일을 벌이는 게 과용이라는 걸 아니까 절실함도 느꼈고요. 늘어지는 것보단 몸을 피곤하게 하는 게 훨씬 나아요.”(윤)

시험 삼아 해봤던 동영상 제작은 특히 흥미로웠다. 런웨이가 아닌 곳에서 옷이 함축적으로 표현될 수 있다는 게 좋았다. 뮤직비디오처럼 드라마틱한 장면이 연출되고 막연한 상상이 현실화되는 경험이 재미있었다고 했다. 둘은 앞으로 컬렉션 때마다 동영상 제작을 함께할 계획이다(부부는 기사로 나오고 나면 자신들이 지킬 수밖에 없을 거라며 웃었다). 이 또한 ‘앤디앤뎁’만의 시그너처 스타일이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더하면서, 벌써 다음엔 뭐 할까 라는 구상을 하게 된다는 게 윤 이사의 얘기다.

취향 서로 달라 생겨난 ‘앤디앤뎁 스타일’
부부는 살면서 닮는다는데 둘은 좀 달랐다. 김 대표가 얼굴에 웃음이 만면하다면 윤 이사의 첫 인상은 차가웠다. 말하는 스타일도 남편이 툭툭 내지른다면 아내는 낮은 어조로 꾹꾹 찍어 얘기했다. 실제 둘이 만나 브랜드를 만들 때도 디자인 취향은 극과 극이었고, 김 대표의 표현을 빌리자면 “서로 본질을 모른 채” 일을 벌였다. 남편은 검정과 흰색의 미니멀리즘을, 아내는 컬러풀한 로맨티시즘을 선호했다. 그래서 첫 시즌엔 서로 양보하지 않고 각자 하고 싶은 걸 만들어 옷걸이에 걸었는데 손님들이 알아서 믹스앤드매치를 하며 ‘앤디앤뎁 스타일’을 만들어냈다.

아무리 그래도 14년을 함께 일해 왔다는데, 여전히 다를까. 정말 다르다면 영감을 얻고, 시각적으로 풀어내야 하는 것이 디자인인데 어떻게 합의를 볼까.

“생각하는 컨셉트를 막 던져요. 그리고 내가 맞다, 네가 틀리다가 아니라 서로 좋다, 싫다도 분명히 얘기하죠. 공통된 의견이 나올 때까지 끝장을 봐요. 나는 좋은데 왜 너는 싫으냐 그런 질문을 던지면서 얘기가 꼬리에 꼬리를 물죠. 그러니까 어디 가서 컨셉트를 말할땐 굉장히 논리적이죠.”(김)

상황을 돌이켜보니 부부가 이번 컬렉션을 설명할 때도 정말 그랬다. 펜싱·양궁·사격처럼 정지된 자세가 멋진 스포츠 종목을 모티브로 삼아 경기복의 디테일을 우아한 여성복에 적용시켰다는 설명은 간단하고 또 명료했다. 게다가 “우리나라 여자선수들이 돋보이는 종목이잖아요” “올림픽에서 억울한 일도 있었고…”라는 식의 부연 설명이 스토리를 더했다.

하지만 이런 작업 과정은 서로가 솔직하고, 또 오픈 마인드가 돼야 가능할 터. 아니나다를까, 그래서 싸움도 많단다. 특히 윤 이사는 남편이 정색을 하면서 “그건 아니다”고 못 박을 때마다 마음의 상처를 입는다며 김 대표를 향해 눈을 흘겼다. 그래서 가끔 정말 치열하게 싸울 땐 직원들이 하나 둘씩 자리를 떴다 결론이 난 뒤 조용히 돌아온다고 했다. 이번 컬렉션에서도 갈등은 있었다. 김 대표는 흰색·크림색·검정으로 색깔을 제한하고 싶다 했고, 윤 이사는 다른 컬러를 시도해 보자고 했다. 티격태격 서로가 자기 뜻대로 피팅을 하기도 했단다.

주거니 받거니 대화가 길어지자 이쯤에서 윤 이사가 수습에 나섰다. “혼자 하는 것보다 진도가 느려 보여도 일단 합의점을 찾으면 실제 작업이 빨라져요. 그리고 김 대표가 독단적인 것 같아도 원하는 바가 분명하고 옳고 그름의 잣대가 확실하거든요.” 아내의 말에 이어진 남편의 화답. “윤 이사는 아우름이 있어요. 제가 못 보는 부분을 다 보면서 밸런스를 맞춰주죠.” 이래서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 했던가.

“대중적인 옷이 대세 … 그래서 홈쇼핑도 진출”
앤디앤뎁은 2008년 가을부터 뉴욕 컬렉션에 나갔다가 다섯 번 만에 무대를 접었고, 올 8월부터는 ‘디 온 더 레이블(D on the label)’이라는 홈쇼핑 브랜드를 만들었다. 한때 ‘청담동 며느리룩’으로 이름을 알리며 더 높은 곳을 향할 것만 같던 이들의 반전이었다.

이에 대해 김 대표는 ‘패션의 흐름’을 꺼내 들었다. “변하고 있어요. 옛날에는 하이엔드의 고급스러운 옷으로 차별화하는 게 주류였죠. 세계 컬렉션에도 나가야 하고요. 이제는 달라졌어요. 사람들은 실용적인 옷을 사서 자기가 스스로 스타일링을 하며 나만의 옷을 만들죠.” 그래서 컬렉션보다 국내에서 더 다양한 시도를 해보자고 결심했고, 홈쇼핑 진출도 그중 하나가 됐다.

선후배 디자이너들이 잇따라 해외 무대에 나가는 상황과는 정반대 행보. 불안하지 않으냐 물으니 컬렉션 얘기를 다시 꺼냈다. “몇 시즌 동안 연이어 새로운 걸 해 봤어요. 하나의 실루엣만 가지고 풀어보거나 확 휘날리고 이런 것도 해보고…. 그런데 결국 이번에 다시 앤디앤뎁 스타일으로 돌아왔어요. 젊었을 땐 내가 못하는 걸 누군가 하면 자괴감이 생겼는데 이젠 아니에요. 내가 잘하는 것만 더 잘하면 그게 최고죠. 다양함이 공존하는 시대인데 남과 비교할 이유가 뭐가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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