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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9)체불노임|배상호(한국 노총위원장)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매 연말마다 말썽이 되고 있는 노임체불의 원인은 대개의 경우 기업 불황으로 돌리고 있지만 따지고 보면 기업인과 정부에 그 책임이 있다고 지적할 수도 잇다. 첫째 80%를 넘는 기업의 타인자본 의존도부터가 문제이다. 둘째 기업인들은 업종과 입지조건 또는 시장성에 대한 장기 전망 등 종합적인 검토도 없이 투자를 일삼았다. 셋째 경영관리능력이 부족한 기업인들이 정부의 특혜로 시설을 마련하여 무모한 경영을 일삼아왔다. 넷째 기업인들에 특혜를 베풀어 온 정부당국에도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없다. 이런 현실 속에 아무런 책임감이나 죄의식을 느끼지 않는 기업주가 있고 그들을 단속하는 행정력이 미약하고 민법상 임금의 선 취득권 조항이 삭제됨으로써 임금 채권 청산에 관한 법서 보장이 약화된 점등을 임금 체불의 주요 원인으로 지적할 수 있다. 더욱이 기업은 부실화되어 관리은행으로 넘어가거나 거액의 미불 임금을 밀려가면서도 양건예금·위장사채·기밀비·접대비·선전비 등으로 위장지출을 일삼는 비양심적인 기업인이 있어 외국의 전문가로부터 『한국에서는 기업은 망해도 기업가는 건재하다』는 평을 듣게까지 된 것이다. 원래 임금은 다른 상품 값과 달라서 인간인 노동자의 피와 땀의 대가인 동시에 노동자와 그 가족의 유일한 생명선이며 노동력의 재생산을 위한 절대적인 비용이라는 점에서 일반 채권과는 특이한 성격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기업주가 임금 자원을 빼돌리고 노임을 주지 않는다는 것은 인도적으로 용납할 수 없는 죄악일 뿐 아니라 자기와 동일한 인격과 권리를 가진 노동자를 착취하는 가장 악랄한 범법행위로 규정짓지 않을 수 없다. 결국 임금의 체불은 단순히 노동자와 그 가족에만 고통을 주는게 그치지 않고 법질서를 문란케 하고 불신풍조와 사회불안을 초래하게 되며 직장에 있어서의 모럴과 생산성, 나아가서는 국가 산업 전체에 크게 영향을 미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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