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예산의 확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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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국회는 72년도 예산안을 마침내 법정기일 마감날인 2일 밤늦게 확정, 통과시켰다. 총규모 6천5백93억원에 달했던 정부원안에서 1백20억원(1·8%)을 삭감, 세출입 총규묘를 6천4백73억원으로 수정한 새해 예산은 헌정사상 처음으로 여·야간의 실질적인 심의과정을 거치면서도 별다른 난동이나 변칙사태 없이 법정기일 안에 국회를 통과했다는 점에서 기록에 남을만한 모범을 보여주었다.
확정된 6천4백73억원의 새해예산이 가지는 첫쨋번 특색은 그 방대한 규모에 있어서도 기록적인 것이라 하겠으나 그 팽창율(23·5%)에 있어서도 전년도(18·7%)를 훨씬 앞지르고 있음을 주목해야 할 것 같다. 이것은 이미 한계점에 도달한 감이 없지 않은 국민의 조세부담능력과 만성적 「인플레」과정의 진행 등 객관적 통제여건에 비추어 볼 때, 그 자체가 큰 문제성을 가진 것이라 아니할 수 없다.

<경기 정책적 배려의 소홀>
본란은 새해 예산안의 심의에 앞서서 그 심의의 각도를 무엇보다도 경기 정책적인 고려에 두어야 할 것임을 주장했던 것이나, 이 점에 대해서 국회가 전혀 손을 대지 못한 것은 유감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부실기업의 속출과 기업도산율의 증가, 차관원리금 상환수요의 증가에 따른 국내금융상의 심대한 애로형성, 그리고 국제경제환경의 변화에 따른 수출 「드라이브」정책의 애로봉착 등 많은 문제점에 직면하고 있는 실정에서 72년도 예산이 어떤 정책적인 입장을 반영할 것이냐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져야하겠기 때문이다.
당초 정부가 예산안을 편성할 때에는 국제경제환경의 변화를 예상하지 않았던 것이며 동시에 국내경제의 불황도 그렇게 크게 염려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러한 두 가지 낙관적인 전제를 수정하지 않은채 제3차5개년계획의 집행에 주안을 두고 팽창예산을 편성한 정부원안은 그 전제에 변화가 일어난 이상 국회에서 이를 충실히 수정하여야 마땅했다는 것이다. 사리가 그와 같음에도 불구하고 예산안에 대한 국회심의는 형식에 홀렸고 불과 1·8%의 규모조정에 그치고 만 것이다.
그러나 국회가 이미 새해 예산을 확정시킨 이 마당에 있어서는 이제 행정부가 예산구조상의 결함을 집행과정에서 과감히 조종해야 할 것이며 그런 뜻에서 우리는 몇 가지 의견을 제시하고자 한다.
첫째, 일반적인 불경기는 앞으로 수년 내에는 크게 회복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사실을 정책당국이 확실히 하고 예산을 집행해야 하겠음을 강조하고싶다. 우리의 불경기현상은 자본제경제가 경험하는 일반적인 경기현상과는 판이하게 다른 것이다. 즉 차관원리금상환수요의 집중적인 도래에 주인되는 불경기이므로 우리의 수출「드라이브」 정책이 계속 성공할 수 있는 조건이 충족되지 않는 한 불경기는 계속된다고 보아야 한다. 그러나 국제서화질서의 회복이 단시일 내에 이루어질 공산이 현재로써는 거의 없는 것이므로 좀처럼 해서는 불경기를 회복시킬 환경을 찾을 수 없는 것이다.

<안정위주의 예산집행>
이처럼 우리의 불경기가 장기화할 것이라고 판단한다면 무엇보다도 정책기조가 성장위주에서 안정위주로 전환되어야 할 것이며, 결국 국내문제보다 국제수지를 더 우선하는 정책이 소망스럽다는 것이다.
둘째, 우리의 정책기조가 근본적으로 수정되어야 한다면 당연히 예산규모의 팽창율을 자제해야 하는 것이며 행정부는 국회가 통과시켜준 예산에도 불구하고 예산규모를 집행면에서 크게 축소시킨다는 자세로 예산을 집행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세수면에서 무리를 하지 말아야 할 것임을 특히 주목해야할 것이다. 내국세징수실적이 극히 저조한 올해의 실정으로 보아 무리하게 책정된 내년도 조세수입을 예산안대로 확보하려 한다면 업계의 도산을 가속시킬 염려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경기국면을 철저히 「체크」하면서 세입을 조정하고 그에 따라서 세출을 조정해나간다는 이른바 예산집행의 신축성을 중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세째, 안보의 중요성을 감안해서 국회가 국방예산을 증액하고 총규모를 줄여 국방비의 점유비율은 상대적으로 증대되었다.
이러한 예산구조로 보아 정책당국은 다음과 같은 사항을 신중히 고려해야할 것이다. 즉 군사면의 안보와 경제면의 안보를 신중히 교량해서 예산을 집행해야 하겠다는 것이다.

<경제적 안보개념의 확립>
우리의 경제상황이 파동요인을 내포하여 경제활동수준이 정체되고 그럼으로써 사회적으로 불안요인이 형성된다면 군사적 안보능력에도 타격을 줄 수 있음은 충분히 당국은 고려해야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군사적 안보개념과 동등하게 중시하여 예산을 운영하는 입장을 고수하기를 우리는 당국에 권고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서는 모든 부문에 있어 예산집행의 우선순위를 사전에 결정해놓고 경제동향에 따라서 집행범위를 조절해나가는 기술이 필요하다 할 것이다.

<투융자는 후순위집행>
네째 투·융자집행은 가장 후순위로 돌릴 것을 당국에 권고하고 싶다. 우리는 그동안 과잉투자경향 때문에 오늘날 경제적 애로에 봉착하고 있는 것이다. 부실기업·금융질서의 교란·국제수지적자폭의 확대 등 일련의 경제적 모순은 모두가 과잉투자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이러한 후유증을 합리적으로 정리하지 않은 채 계속 투융자를 한다는 것은 모순의 확대와 심화를 촉진하는 결과가 될 것이다. 그러므로 투융자는 이제 예산집행순위상 가장 후순위로 돌려야할 방안에 와있다는 것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필요불가피한 중요 애로를 타개하기 위한 사업이라든지, 계속사업으로서 공사를 중단하는 것보다 완공시키는 것이 국민경제상 훨씬 유리한 경우에 해당하는 것까지 집행을 후순위로 돌리라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산규모를 조정하는데 있어 신축성이 가장 큰 부문이 투융자일 뿐만 아니라 경기정책적 수단으로서 원용될 수 있는 부문도 투융자인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국제수지상의 모순을 시정하고 물가추세를 안정시키며 경제체질을 개선해야한다는 당면과제를 이룩하기 위해서는 상대적 불경기정책을 집행할 필요가 있으며 이를 위한 가장 강력한 예산상의 수단은 바로 투융자 규모의 축소임을 잊어서는 안되겠다.
끝으로 국회의 심의과정에서 삭감된 세출부문 중에는 추경예산을 통해서라도 반드시 부활시켜야 할 항목들이 들어있음을 지적해야할 것 같다. (1)학령인구의 증가에 따르는 교육공무원증가와 그들에 대한 처우개선비 (2)전화시설의 증가에 따르는 교환원 등의 증원경비 (3)일률적으로 15% 삭감한 각부처의 여비 등이 바로 그것인데 이 같은 필수불가결한 세출수요증가분에 대해서는 일반직공무원의 감원조치 등을 통해 전체세출규모를 확대치 않은 범위 내에서 전체세출예산을 재조정해야 할 것이다.
국내외적으로 벅찬 시련에 직면해 있는 한국경제는 앞으로 초긴축으로 무엇보다 국내물가의 상승 무드를 극복해나가야 할 과제를 안고 있다. 이런 상황하에서 새해 예산을 집행해 나가야 할 정부당국으로서는 그야말로 허리띠를 졸라매는 각오를 솔선수범 국민에게 보여 주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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