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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조후기 한 고을 호적 발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이조후기의 한 고을 호적대장이 경남 산청군 단성면 강수리 향교의 서고에서 발견돼 당시의 호구와 가족상황 및 공세 등 지역사회연구에 희귀한 사료를 얻었다.
28일 이곳을 답사한 신영훈 문화재전문위원과 김상조 지방문화재위원은 한 장지로 엮은 84㎝×70·5㎝의 커다란 고문서 13책자를 조사하고 그것이 1717년(강희72년) 1729(옹정7년) 1750년(건륭15년)의 세 차례에 걸쳐 기록된 단성현의 호적대장임을 확인됐다.
이 문서에는 이곳 현감이며 진주 진관 병마가도제도위인 관할 행정관의 수결(사인)까지 돼있다.
책이 너무 크고 무거워 문고리 장식을 붙여 벽에 걸어 두게된 이 문서에는 40행의 괘선을 긋고 한 줄에 42∼62자씩 세 길로 반듯반듯 묵서 돼있다.
『응종10년, 원당 제일리 사산촌 제일통통수송강승명』으로 시작된 이 호적 대장은 사회조직의 기본단위로서 5호∼10호를 1통으로 삼고 열거했는데 매호에 가계와 가족구성 등 소상하게 적어 놓았다.
단성현 제5리 평지촌 제1통 제3호의 경우를 보면 가장인 유학 김창건씨와 그 일족의 연령·생년월일·본관·부친·조부·정조부·외조부가 적혀있고 부인의 연령·전호적지·부친·조부·정조부·외조부 등과 남녀노비들의 현존해있는 연령·가족관계·전 노비의 결혼 또는 도망친 사항 등에 미치고있다.
한편 이 호적대장 뒤쪽에는 집집마다 바치는 세금 종류에 따라 호구수로 각각 나눠져 있고 공조·선공감·사용원·오위영·금위영 등에 바치는 곳을 명기, 군포와 호포를 분류해있다.
또 맨 끝장에 잡항이란 조목을 두어 도망간 남자 42명 여자 56명, 물고한 남자 1백71명 여자 2백38명, 시집간 여자 25명, 세금을 바치는 사람의 수는 남자 장정 4천4백80명, 노인 6백9명, 소년 1천56명, 여자 장정 4천7백40명, 노파 6백15명, 소녀 1천7백25명, 그리고 승려 31명으로 기록되어있어 당시에도 여자인구가 남자보다 많은 현상을 보여주고 있다. 【진주=곽기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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