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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학 그 체계적 연구에의 발돋움|고대아세아문제연구소 발표회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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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실학사상은 한국의 주체적 근대사상으로서 그 체계적 연구의 필요가 벌써부터 주지되어 왔다. 그러나 실학의 사상적 측면은 고사하고 실학개념의 정확한 파악도 오늘날 해결을 보지 못한 채 있다.
그런 면에서 볼 때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한국연구실이 주최한 실학사상 연구발표회는 앞으로의 실학연구를 훨씬 적극화하는데 적으나마 공헌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번 제1회 발표회의 연구발표자는 실학개념에 대한 사상사적 고찰(이상은·고대명예교수) 신 후담의 서학비판연구(최동희·고대교수) 박세당의 실학사상연구(윤사순·고대강사) 등.
실학은 현재 ①조선후기의 독특한 신경향을 띤 일군의 학자·사상가들의 학풍·사조 ②수기 치인을 목표로 하는 유학의 한 분파 등으로 나뉘어 논란되고 있는 만큼 실학 그 자체를 명확히 하는 작업의 어려움은 학계에서 잘 인식돼 왔다.
실학자라고 오늘날 자칭되는 이들이 자기들을 실학자라고 얘기하지 않고 1930년대에 최남선·문일평·백남운·정인보 등에 의해 재구성되어 지칭된 명칭이기 때문에 실학의 의미는 학자에 따라 아직도 엇갈려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개념을 철학적으로 고찰한 이상은 교수의 발표는 어려운 작업으로 볼 수 있다. 또 일면 그것은 한국학계가 이미 논의를 벌였던 두 주장의 한쪽 즉 수기 치인을 목표로 한 유학의 한 분파로서 실학을 보는 해석에 접근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래서 이 교수는 서두에서 『실학은 유학 체계 내에서 운위되는 학문의 성격·목적·방법에 대한 문제를 반성함에 있어서 생긴 용어』라고 못박고 있다. 그래서 이 용어가 처음 나타난 곳은 주자의 중용장구에서 정자의 말로 적혀 있는 기미무궁 개실학야라는 문귀라고 보았다. 그는 이것이 한국에서 쓰인 실학이란 용어의 원래 연원이라는 것이다.
중용의 실학은 노장의 허무와 불교의 공적에 대항하는 뜻에서 정주가 천리의 진실 무망함과 이사를 나누지 않는 정신에서 볼 수 있다는 것.
정주학을 우리 나라에서 완전히 소화해서 자기 것으로 한 것은 회재 이언적이다. 그는 도를 인사의 리로 보고 궁리보다 체험과 실천을 더 중요시했다는 것이다. 임난 이후에는 관심이 퇴율성리학 시대의 심성수양에서부터 제세 구민의 사업 면으로 바뀌기 때문에 이 교수는 반계, 성호, 연암, 다산의 유학에서 실학을 보았다. 실학의 수립자인 반계는 ①옛 도 즉 왕도를 금세에 실현시키고 ②그 실현방법을 구체적으로 제시하려고 했다. 요순의 심법을 현세에 편다는 뜻이다.
이에 비해 실학의 집대성자인 정다산은 반계·성호가 주자설을 받아들이는 것과는 달리 「마테오·리치」의 『천주실의』를 받아 들여 천주와 같은 개념의 상제를 내세워 그의 명의 수행으로 인륜일용의 구체적 실현, 경국제민을 위한 토지제도의 개혁 등에서 실학의 면모를 찾았다고 이 교수는 해석했다.
그러나 박세당의 실학사상을 논한 윤사순씨는 주자학과의 연관에서 실학을 본 이 교수와는 달리 『반 성리학으로서의 유학의 자기 비판적 성격이 이조후기의 실학에서 찾아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박세당은 실학자중에서도 현재 많이 연구되지 않은 사람이지만 경학사상에서 보면 주자학설을 반대하고 원시유교경전의 본지를 파악하는데 애쓴 사람이다.
원시유교의 근본사상을 역시 수기 치인이지만 수기의 방법은 무념무상적 수양보다 생활 속에서의 덕성함양이라고 주장, 천리를 존중하는 것보다 천리에 순하여 자연에 적응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인정을 통해 인간사회와 우주가 조화된다고 보고 실제적 합리성과 실용성을 강조, 농서 색경을 편찬하기도 했다는 것.
그의 순천리사상은 현실주의적 사대, 소국도 국운에 따라 대국이 될 수 있다는 사고, 노장사상도 수기 치인하는 유학의 뜻을 가졌다는 등 주장을 가능케 했다. 그의 실리실용의 기준은 실학자들의 일반적 정신 같이 자기자신과 이민족에 있었으며 이러한 주체의식의 강조 속에서 경험사실과 현실을 중시하는 경향은 근대정신과 상통된 것이라고 윤 교수는 해석한다.
한편 최동희 교수는 학계에서 아직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신 후담의 사상을 소개했다. 그는 신 후담의 서학변에 나타난 서학비판에서 실학사상을 찾아보려 했으나 결과적으로 신 후담의 실학사상발전의 출발점만을 보았을 뿐 좋은 성과를 얻지 못했다.
결국 이러한 실학사상연구를 볼 때 『실학을 시대적 요구에 따라 유학이 달라진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면 실학의 용례는 앞으로의 시대문제를 극복할 사상체계의 이름일 수 있지 않는가』라는 간관자씨의 해석도 낳고 있다.
또 임난 후에 갑자기 이용후생이 강조되면서 나타난 것이 관학사상이라면 거기에는 특수한 이유가 없을까 하는 의문도 제기되었다.
이조후기의 독특한 학풍인가 또는 유학사상의 한 분파인가 하는 문제는 아직도 먼 연구과제로 남는 것 같다. 【공종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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