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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과 교수의 선방 체험, 왜 실패했을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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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사교입선(捨敎入禪). 불교 교리를 충분히 공부한 후에 비로소 선(禪) 체험에 나서라는 뜻이다. 머리로 하는 불교 공부, 알음알이(지해·知解)를 경계하는 한국 선불교 전통에서 직관적 성찰을 통해 깨달음에 이르는 수행 방편으로 강조돼 왔다.

 성철(性徹·1912∼93) 큰스님이 제자들에게 불경 공부하지 말라고 했다는 말이 와전돼, 교리 공부 하지 말고 실제 참선에만 매달리라는 뜻으로 오해되기도 했다.

 사교입선이라는 표현에 걸맞은 수행 체험기가 나왔다. 이화여대 철학과 한자경(54) 교수가 쓴 『화두』(도피안사)다. 한 교수는 독일 프라이부르크 대학에서 칸트 철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에 돌아와 동국대에서 불교의 심리학인 유식학(唯識學) 연구로 다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인간 이성의 본질을 탐구한 칸트 연구와 깊이 있는 불교 공부를 바탕으로 철학과 불교의 접목을 시도하는 소장학자다.

 그런 이가 마음 속으로는 화두 참선을 간절히 꿈꿨던 모양이다. 기회가 날 때마다 단기 참선 프로그램에 참가했다. 부산 안국선원에서 7박8일, 전남 해남 미황사에서 7박8일, 이런 식이다. 신간은 2009년, 2010년 당시의 수행체험을 글로 옮긴 것이다.

 한 교수를 통해 드러나는 선방 풍경은 녹록하지 않다. 서울 상도선원장 미산 스님은 “답을 모르는 답답함이 온 몸으로 번지는 의정(疑精), 그 답답함으로 인해 온몸이 의심덩어리가 되는 의단(疑團)에 도달하는 게 중요하다”는 알쏭달쏭한 가르침을 줄 뿐이다.

 안국선원장 수불 스님이 “왜 목숨 걸고 참선하지 않느냐”고 호통치자 누군가 목 놓아 통곡하는 소리도 들린다. 한 교수 역시 답답함을 통곡으로라도 표출하고 싶지만 나오는 건 찔끔찔끔 눈물과 콧물뿐이다. 답답함을 머리로만 이해하려 한 탓이다.

 고통스런 과정을 통해 한 교수가 추구한 건 무엇일까. ‘나’라는 실체 아닐까. 그러나 한 교수의 선방 체험은 실패로 끝난다. 아쉬움을 품은 채 산문을 떠난다. 참선 수행을 동경하지만 망설이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책이다.

신준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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