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유통업체, 수퍼조합 통해 골목상인에 상품 공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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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변종 SSM(기업형 수퍼마켓)’이라며 골목상권 침해 논란이 일었던 대형 유통업체의 개인 수퍼마켓 상품공급업이 전기를 맞게 됐다. 이마트에브리데이·롯데슈퍼 등 대기업 계열 유통업체들이 앞으로는 개별 중소 수퍼마켓 대신 수퍼마켓협동조합 같은 단체에 상품을 공급하고, 이 단체에서 개별 수퍼마켓으로 상품을 보내주는 간접 상품 공급 방식을 추진하기로 합의했기 때문이다. 상품공급점은 골목상인들이 대형 유통업체와 독점계약을 맺고, 상품뿐만 아니라 간판·유니폼·판매관리시스템(POS)·경영 방법 등을 지원받는 수퍼다. 대형마트의 유통망을 이용하기 때문에 이들 수퍼에서 파는 상품 가격은 기존 수퍼마켓보다 10~20% 정도 저렴하다.

 이마트에브리데이리테일·롯데슈퍼 등 대기업 유통업체와 한국수퍼마켓협동조합연합회·한국체인사업협동조합 등 중소 수퍼마켓 단체는 이르면 14일 도매사업에 관한 상호 협력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기로 7일 합의했다. 수퍼마켓협동조합연합회는 중소 개인 수퍼 사장들이 조직한 단체이며, 체인사업협동조합은 유통업 도매사업자 단체다.

 MOU대로 상품공급업 방식이 바뀔 경우, 대기업의 상품공급업 범위는 현재보다 더 넓어질 수 있다. 현재 대형 유통업체의 상품공급점은 300여 개 정도지만 수퍼마켓협동조합연합의 조합원은 약 2만 명, 체인사업협동조합이 거래하는 수퍼마켓도 4만 개 정도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김경배 수퍼마켓협동조합연합회장은 “골목상권을 지켜야 하는 문제도 있지만 자본과 기획력, 제품단가 면에서 중소 수퍼마켓이 부족한 것도 사실”이라며 “합의안은 대형 유통업체와 상생하는 해법을 찾아보자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소상공인 중 상당수는 이번 합의안에 여전히 반대하고 있다. 최승재 소상공인살리기 운동본부 대표는 “소상공인 육성을 위해선 대기업의 상품공급업 진출을 규제해야 하고, 서비스업 등을 포함한 이들 업종을 소상공인 적합업종으로 지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세종 중소기업연구원 연구본부장은 “대기업과 골목상인들이 자발적인 합의안을 마련한 건 바람직한 일”이라면서도 “대형 유통업체들이 교섭력을 무기로 상품공급점 경영을 좌지우지하거나 직영점 전환을 통해 상권을 장악하는 것을 막을 대비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영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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