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국론 통합의 정신 살려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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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3.1절 84주년에 나타난 우리 사회 내부의 갈등이 심각하기 그지없다. 이 같은 이질성은 북한 문제를 바라보는 인식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니까 북핵 사태를 바라보는 시각 차이가 너무나 뚜렷한 것은 당연하다.

한편에서는 '반미.반전'(反美.反戰)을 내세우며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반핵.반김'(反核.反金)을 내세워 주한미군 철수 반대를 부르짖고 있다.

또 한편에서는 북한 핵개발 저지를 명분으로 한 미국의 북폭(北爆)을 우려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북한의 남침 위협을 한반도 전쟁 위기의 본질로 인식한다.

*** 3.1절 시위를 보는 시각差

이번 3.1절 시위 현장을 바라본 언론은 '1946년 이후 처음 나타난 좌우 대립'이니, '심각한 남남 갈등'이니 하며 우려의 목소리를 전하고 있다. 심지어 일부 식자층 가운데는 '남북관계보다 더 풀기 어려운 것이 남남 갈등'이라는 자조섞인 얘기가 나돌기도 한다.

그러면 과연 통일 문제에 관한 한 국론 통합은 불가능한 것인가. 지난 수년간 민간 차원의 대북 지원을 추진하면서 많은 국민을 상대로 모금운동을 벌였던 나의 생각은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그리고 중앙일보와 한민족복지재단이 공동으로 주최하는 '북한 어린이 돕기 2003'을 통해 그러한 가능성을 느끼고 있다.

지난해 말 시작된 이 운동의 특징은 무엇보다 다양한 성격의 단체가 참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우리 사회의 보수세력을 대표하는 한국자유총연맹과 보수 성향의 로터리클럽이 한 축을 이루는가 하면 또다른 한 축은 운동권 출신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는 진보 진영의 나눔문화가 차지하고 있다.

YWCA와 대한간호협회 등 여성단체와 한국종이접기협회와 같은 어린이단체, 그리고 사랑의보금자리나 한민족복지재단 같은 봉사단체, 국제패션진흥연구원을 비롯한 직능단체들이 함께 모여 서로의 전문성과 독자성을 인정하는 바탕 위에서 대화하고 역할을 분담한다.

이념이나 정치적 주장은 가급적 배제하고 공통의 관심사를 찾아 합리적인 방안 도출을 위해 토론한다. 이렇기 때문에 이북7도민회나 재향군인회의 입장도 경청할 수 있고, 통일연대나 전국연합의 의견을 수렴할 수 있다.

서로의 생각은 달라도 관심은 같기 때문에 대화를 통해 문제 해결에 접근할 수 있다. 이른바 '코드'는 다르지만 '발상의 전환'을 통해 통합을 이뤄낼 수 있다. 닮은꼴만 선호하는 합동(合同)이 아니라 모양은 달라도 서로를 공유할 수 있는 통합(統合)의 정신이기에 가능한 것이다.

남북 관계와 국론 분열의 또다른 변수는 현대의 불법적 대북 송금 문제다. 현대가 경협사업의 독점을 위해 5억달러를 불법 송금한 사건은 사안의 성격상 국제사회의 신뢰와 남북 관계의 근본을 뒤흔들 수 있는 엄청난 폭발력을 가지고 있다.

더욱이 북핵 문제로 인해 한반도에 전쟁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조성되고 있는 미묘한 시점에 이처럼 예민한 문제가 미칠 파장에 대한 검증도 없이 특검제 실시가 정치적 현안으로 떠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문제를 해결하고 국민과 국제사회의 신뢰를 회복해야 할 정치권이 본질은 이해하지 못한 채 지엽적인 사안에 매달려 소모적인 논쟁만 벌이고 있다는 점이다.

*** '코드'달라도 국익 생각해야

진실은 밝혀져야 한다. 그리고 특검법은 통과됐다. 대통령의 거부권을 거론하는 소리가 들리지만 그것이야말로 더 큰 재앙을 부를 수 있다. 따라서 대의정치를 존중하면서 국익을 생각하는 지혜가 필요한 때다.

특검을 통해 진실을 가리되, 수사 내용의 공개 범위와 법적 처벌은 국회에서 국익을 고려해 결정토록 하는 현명함이 요구된다. 우리 역사는 성리학적 명분론에 휩싸여 논쟁을 일삼다가 나라를 망친 붕당정치(朋黨政治)의 폐해와, 문제 해결의 의지만 있으면 국론 분열은 극복될 수 있다는 소중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분열된 국론의 통합이야말로 3.1 정신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역사적 교훈이다. 그리고 지금 국민은 지도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국익을 위해 고민하는 모습을 보고싶어 한다.

金亨錫(한민족복지재단/사무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