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용, 김정기씨 현지 답사결과에서|"거창 고분은 11∼12세기 초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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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고창 고려고분벽화의 발굴은 한국고미술 특히 회화와 인석의 발견에서 그 가치가 주로 평가받을 수 있는 것이다.
경남 거창군 남하면 둔마리 대촌 부락 뒷산인 해발 8백m의 금귀봉 줄기의 중턱쯤 되는 한 야산에 자리잡은 고분은 문화재관리국이 파견한 김원용 박사(문화재 위원)와 김정기씨(문화재 연구실장)에 의해 11세기∼12세기 초의 것으로 밝혀졌다.
고분은 남향을 향해 있었으며, 동·서 두개의 현실로 돼있었다. 두 현실은 각각 길이2m46㎝, 폭91㎝, 높이 92㎝로 똑같은 크기였다.
동실에는 부장품이 있었던 것 같으나 도굴됐기 때문에 아무 것도 남아있는 것이 없었으며 벽화만이 남아 있었다.
동실의 동 벽에 5개의 인상이 그려져 있었고, 북벽에는 확인할 수 없는 묵선화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서벽 중앙 아래쪽엔 서실로 통하는 통로가 있었으며 이 통로 북쪽의 주악천상이 색채나 형태가 가장 선명한 상이었고 통로 남쪽에는 그림의 흔적이 없었다. 김원용 박사는 여기에도 그림이 있었으리라고 추단했다.
동실의 천장은 4장의 돌로 돼 있었으며 일부 보도된 것 같은 천장화는 없었고 남벽에도 그림의 흔적이 없었다.
서실에는 두께5㎝의 나무로 짠 관이 부서진 채 남아 있었다. 검게 옻칠을 한 목관의 한 귀퉁이에는 글씨 또는 그림의 흔적이 있는 것 같았으나 그 상태가 너무 나빠서 도저히 알아볼 수는 없었다.
여기에서 중년남자의 것으로 보이는 두개골과 몇 개의 치아가 발견 됐으나 유물은 없었다.
이 거창 고려 고분의 가치는 실상 회화적 측면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다. 김원용 박사는 이 고분의 동실에 남아 있는 6개의 인상화가 흰 회칠 위 에 그려진 것이며 『색채를 잘 쓴 것으로 색감이 부드럽고 선명해서 고려인물의 명랑·선명한 표정이 잘 나타나있다』고 설명했다.
고구려 고분벽화에 나타나있는 고구려인의 표정이 우울한데 비해 여기에 나타난 인물의 표정은 삼국인 보다 근대적인 느낌을 주는 것이라는 얘기다. 그 인물을 그린 선의 구사도 활달하고 자유로운 필치로서 당대 일류화가의 그림으로 볼 수 있다는 것.
고려고분벽화는 지금까지 개성 법당 방과 장단 수낙암동 등의 것이 알려져 왔는데 거창 고분 벽화는 가장 훌륭한 그림으로 볼 수 있다고 김 박사는 설명한다. 비천여들의 나는 옷자락은 특히 훌륭한 것이라는 것.
그림 가운데 가장 선명한 주악비천상은 왼손에든 그릇에 복숭아 같은 과일이 들어 있는 것으로 봐서 불교와 도교사상을 많이 담고 있다는 것.
이 고분의 조성 연대는 연대가 기록돼 있는 진주·평거동 고분군(정씨 묘6기)과 묘제양식이 같은 것으로 봐서 추정된 것.
호석을 쌓아올려 축조한 기술이나 제작법으로 봐서 몽고 병의 침입으로 고난을 겪던 고려 중기의 것으로는 볼 수 없고 진주고분보다도 오히려 더 오랜 듯 하다는 것이다.
주당인 서실의 서벽에도 그림 흔적이 있으나 김정기씨는 여기에 관이 가득 차기 때문에 그림을 그렸을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고 보았다.
이 고분의 전체형태는 직육면체로, 남북이 4m93㎝, 동서가 3m46㎝, 높이는 2m30㎝정도이지만 표면에 나타난 높이는 50㎝정도였다. 기단을 쌓은 호 석은 23㎝정도의 꺾쇠꽂이 간격으로 분묘의 상부 네 모서리를 연결했는데 이것은 방형 분에서 처음 보는 축조 법이었다.
이 분묘의 앞에서 발견된 두개의 인석의 가치는 특히 중요한 것이라고 김 박사는 보았다. 인석들 가운데 하나는 완전한 형태가 보존됐으며 전체크기는 높이 2m32㎝, 그중 인상만의 높이는 1m49㎝. 이조의 문인석이 거의 중국식 복장을 따르고 조각이나 표정도 거의 형식적인 감을 갖고 있는데 비해 이 인석은 민속적이고 전통적인 맛을 풍기고 있다.
고려의 인석은 개성부근에서 몇 개 발견돼있으나 많이 파멸되어 조각의 면모를 잘 알 수 없었으나 이번에 발견된 인석은 완전한 고려인석의 면모를 보여 주는 것으로 가치가 큰 것이다. 『이조인석은 어딘가 멍청하고 형식적이라고 보이는데 비해 이 인석은 분묘 안의 비천상의 표정같이 큰 눈과 불상과도 같은 원만한 표정이 인상적』이라는 설명이다. <공종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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