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대통령 "南北 비밀접촉 설명하는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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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본지의 5일자 보도로 알려진 나종일(羅鍾一)국가안보보좌관의 베이징(北京)북측 인사 접촉에 대한 청와대의 대응이 대통령 보좌 기구답지 못하다는 지적이 대두되고 있다.

羅보좌관은 이날 새벽 전화로 진위 확인을 요구하는 기자들에게 "북측 인사를 만난 것은 사실"이라고 했다. 그러나 아침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 직전 그는 "베이징에서 북한 관계자를 만난 게 사실이냐"는 기자단의 질문에 "사실이 아니다. 그 이상 확인할 수 없다. 조금 봐달라. 추측 기사다. 덮어달라"고 했다. 회의가 시작되자 그는 노무현(盧武鉉)대통령에게 "오늘 아침 중앙일보 보도는 포커스가 사실이 아니다"라고 보도의 초점 문제로 '포커스'를 돌렸다.

회의는 2시간 동안 비공개로 진행됐다. 회의 결과를 전한 송경희(宋敬熙)대변인의 오전 11시 브리핑은 혼란을 더욱 가중시켰다.

오락가락 브리핑=기자들의 질문은 盧대통령이 羅보좌관의 베이징행을 사전에 알았느냐에 집중됐다. 宋대변인은 처음엔 "지시에 의한 것이 아닌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대통령도 어떤 내용인지 궁금해 하셨고 투명성 원칙을 강조했다"고 전했다.

이 같은 브리핑은 즉각 "그렇다면 방중 전 盧당선자를 두차례나 만났던 羅보좌관이 상의 없이 북측 사람을 만났다는 얘기냐"는 의문을 낳았다. 盧대통령이 진짜 몰랐냐는 질문이 이어지자 宋대변인은 "아셨겠죠. 따로 개인적인 보고가 있지 않았겠느냐. 대통령이 모른다는 부분은 오늘 보도를 모른다는 얘기였다"고 했다.

오후 3시 브리핑. 宋대변인은 盧대통령이 베이징에 가라고 羅보좌관에게 지시했는지 여부에 대해 "확인해 줄 수 없다. 羅보좌관에게 직접 취재해달라"고 했다.

대변인은 이날 "대통령도 궁금해했다", 즉 '몰랐을 것'에서 "아셨겠죠"로, 다시 "확인해 줄 수 없다"로 말을 바꿨다.

대통령의 해명 지시 안먹혀=盧대통령은 이날 "투명성을 지켜야 하기 때문에 밝힐 게 있으면 밝혀야 한다"며 "羅보좌관이 오후 브리핑에 나가 공식 입장을 밝히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고 宋대변인은 전했다. 해명 지시인 셈이다.

그러나 羅보좌관은 이를 따르지 않았다. 宋대변인은 "해프닝성 보도에 대해선 대응 안하는 게 좋으며 하루 이틀 지나면 잠잠해질 것이라는 게 羅보좌관 판단인 것 같다"고 전했다. 역시 "보좌관이 대통령 지시를 거부했단 얘기냐"라는 질문이 따랐다.

宋대변인은 "거부라기보다는 국가안보보좌관이 직접 브리핑에 나가 추측 기사를 일일이 해명하는 것이 그 보도에 무게를 실어주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고 羅보좌관이 말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宋대변인은 "국가 이익이 걸린 미묘한 문제이기 때문에 중책을 수행하는 羅보좌관의 해명이 충분하다고 생각된다"고 말했다. 결국 청와대는 당초의 '해프닝성'이라는 성격 규정을 스스로 부인했다.

빈말이 된 대북 투명성=盧대통령은 취임사에서 "대내외적 투명성을 높이겠다"고 다짐했다. 만일 羅보좌관이 대통령의 지시에 의해 북측 인사를 만났다면 정권 초기부터 '원칙 따로, 실제 따로'가 된다.

羅보좌관의 개인적 행동이었다면 국가보안법 위반, 월권 논란 등이 불거질 가능성이 있다. 청와대 국가안보보좌관이 대통령도 모르는 개인적인 대북 접촉 채널을 가동하고 있다는 얘기라면 국기문란 여부를 조사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언론이 활용 대상인가=宋대변인에 따르면 이날 회의에선 "(비밀접촉 보도가)오보지만 한번 이걸 써먹으면 어떨까요 하는 듯한 언급이 있었다"고 했다. 즉각 "그게 도대체 무슨 말이냐"는 질문이 튀어나왔다.

최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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