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대해부] 2. 몰라서 불만,못 미더워 불안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0면

연금가입자 朴모씨:"국민연금 보험료가 3만원에서 6만원으로 올랐습니다. 이거 취소할 수 없나요?"

연금공단 직원:"국민연금은 사(私)보험이 아니기 때문에 취소할 수 없습니다. 죄송하지만 소득이 얼마나 되나요?"

朴씨:"한 달에 1백만~1백50만원 정도 벌고 있습니다. "

직원:"월 99만원을 번다고 신고했으니 보험료를 많이 내는 것은 아닙니다. 보험료가 오른 것은 자영업자의 보험료율을 직장인과 맞추기 위해 1999년부터 매년 1% 포인트씩 올리기 때문입니다. "

朴씨:"그건 누가 정하나요. "

직원:"국회의원들입니다. "

朴씨:"그럼 그 사람들한테 내라고 하세요. 아니 내가 연금을 안 타겠다는데 왜 취소할 수 없다는 겁니까. 억지로 보험료를 내라면 세금이나 마찬가지지…. "

지난달 13일 서울 논현동 국민연금관리공단 서울센터. 민원담당 직원은 10분동안 진땀을 빼며 설명했지만 朴씨는 막무가내였다.

공단에는 요즘 이 같은 불만전화가 수없이 걸려온다. 서울센터 관계자는 "연금에 대한 부정적인 소식이 전해지면 며칠 간은 전화통에 불이 난다"고 말했다.

◆ 국민이 먼저 외면=국민연금관리공단 홈페이지(www.npc.or.kr)에도 불만의 글이 끊이지 않는다. "주식투자에서 깨지고 정부에 돈(국민연금) 꿔주고 하니 기금운용이 엉망…. ""2045년에 연금기금이 고갈된다는 소식을 들었다. 매달 30여만원의 보험료를 내는데 연금은 어떻게 받나.""수익도 제대로 못내면서 연금을 지나치게 많이 지급하더니…." 등.

국민을 위한 연금 인데도 국민의 시각은 영 차갑다. ▶기금 고갈에 대한 불안(不安) ▶정부의 관리능력에 대한 불신(不信) ▶부담이 불공평하다는 데 대한 불만(不滿) ▶막연히 세금이라고 잘못 알고 있는 부지(不知)가 팽배해 있다. 이른바 '4불(不)현상'이다. 그래서인지 국민연금 하나만 바라보고 산다는 사람은 거의 없다.

중앙대 김연명 교수는 "연금의 발전을 가로막는 가장 큰 원인은 국민의 불신과 불안"이라면서 "장기계획에 따라 제도.운영방식 등을 개혁해 '4불현상'을 치유해야 한다"고 말했다.

◆ 상식화된 연금 고갈론=서울 광진구에서 갈비집을 하는 朴모(45)씨는 월 소득이 4백만원 정도인 데도 연금공단에는 62만원으로 줄여 신고했다. 그 결과 월 3만7천원의 연금 보험료를 낸다.

하지만 朴씨는 민간보험회사에 월 20만원짜리 개인연금과 종신보험을 따로 들고 있다. 朴씨는 "기금이 고갈돼 원리금도 못 받는다고 해 소득도 낮춰 신고했고, 이와 별도로 노후대책을 마련했다"고 말했다.

보건복지부 연금보험국 관계자도 "최근 친구들과 시골의 어머니가 연금을 제대로 받을 수 있는지를 물어와 당황스러웠다"고 말한다.

많이 배우고 많이 버는 사람일수록 불신은 더 심하다. 본지가 전국 성인남녀 1천9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대재(大在)이상은 73.2%가, 중졸 이하는 51.8%가 연금기금이 고갈될 것이라고 봤다.

월소득 1백만원 이하인 사람의 39.5%가 노후에 연금을 받을 수 없을 것이라고 응답한 반면 소득이 5백만~1천만원인 경우는 50%가 못 받을 것으로 예측했다.

연금공단 이용하 부연구위원은 "현행법에 따라 5년마다 연금재정을 재계산할 때 보험료와 연금지급액 수준을 제대로 조정하면 연금기금 고갈사태는 오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 상대적 피해 보는 직장인=세금에 대한 봉급생활자의 불만은 연금에 대해서도 똑같이 분출되고 있다. 월평균 소득 3백60만원 이상으로 가입자 중 가장 많은 보험료를 내야 하는 45등급(69만3천여명)중 87.4%가 직장가입자들이다. 이들이 월급을 많이 받기 때문은 물론 아니다.

지역가입자 중 국세청에 세금을 내는 과세대상자는 1백만명에 이른다. 이들은 의사.변호사 등 벌이가 꽤 괜찮은 자영업자들이다. 그러나 이들 중 월소득이 3백60만원을 넘는다고 신고한 사람들은 7만9천명에 불과하다.

'반대국민연금'사이트(antinpc.liso.net) 이창현 대표는 "자영업자의 소득이 제대로 파악되지 않은 상태에서 무리하게 전국민 연금제도를 도입하는 바람에 봉급생활자들이 상대적으로 피해를 보고 있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