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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운 「상황」과의 관계유지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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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글을 쓴다는 것은 「작가」와 「상황」사이에 「긴장관계」를 유지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작가가 끊임없이 「상황」을 의식하고 그것을 고뇌의 과정으로 여과시킨 다음, 개인적 정신의 체험을 보편화시킴으로써 작가와 상황과의 관계가 유지된다는 말이다.
여기에는 물론 탁월한 관찰력과 예리한 분석력과 정연한 논리화와 작가 개개인의 가치관이 요구된다. 그러기 때문에 작품을 읽을 때는 항상 그 작가의 미의식이 뛰어난가, 그 작가의 역사의식은 정당한가, 그 작가가 바라고 있는 도덕적 질서관은 받아들여져야 하는가 하는 질문을 제기해 보는 것이다.
사실상 그런 질문을 통해서 우리는 한국소설, 혹은 한국문학의 방향 같은 것을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질문 앞에서 우리가 늘 당황해마지 않는 것은 「상황」에 대해서 지나친 문제의식에만 사로잡히고 말았을 때 보게 되는 「문학」이 아니라 시사적 감상의 앙상한 골격인 것이다. 흔히 6·25동란의 경험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전쟁소설이 없다고 이야기하지만, 그것은 상황과의 객관적 긴장관계를 유지하지 못했기 때문이라 할 것이다. 최근 남북가족 찾기 회담의 개최와 함께 분단에 대한 작가들의 관심의 고조가 매월 소설에서 눈에 띄는 현상으로 드러나고 있지만, 그것이 민족의 감상적 이야기로 떨어지고 마는 것도 그러한 이유 때문일 것이다.
이런 현상은 현실에 대한 정당한 파악이 아니라 현실에 대한 아부에 지나지 않는 것이므로 보다 깊은 성찰과 작가 안에서의 진지한 검토가 요구되고 있다.
이 달의 소설 가운데 이호철씨의 『그해 십이월』(지성)은 6·25동란 때 이북의 한 피난민이 고향을 떠나는 일종의 회고담이다.
아마도 최근의 가족 찾기 회담에 도발을 받은 것 같은 이 소설은 이산가족의 비극적 측면을 강조하고있으며, 또한 월남민의 감회 같은 것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할머니의 죽음, 젊은 아내와의 생이별, 피난의 무질서 등은 오늘날에도 잊을 수 없는 쓰라림에 해당한다.
여기에 할머니의 죽음에서 노출되는 전통적 「한」이 가세해서 이 작품의 독특한 분위기를 형성한다.
그러나 「열 일곱살에 일청 전쟁을 겪으셨다는 할아버지, 스물 일곱 살에 일로 전쟁을 겪으셨고 서른 일곱 살에 제일차세계대전을, 쉰 다섯 살에 만주사변」을, 그리고 일흔 넷에 6·25사변을 겪었다는 사실과 할머니와 그 집안의 다른 여자들의 죽음을 통해서는 며느리의 비극을 강조하고 있는 사실 등은 그 엄청난 역사적 사건이 개인에게서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을 보여주는 반면에 이 작가가 개인이나 역사를 보는 태도에 있어서 결정론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 작품에서는 감정적 승복감과 논리적 모순감을 동시에 느끼는 배반감을 맛보게 된다.
이문희씨의 『향객』(월간중앙)은 농촌출신의 주인공이 서울에서 학교를 다니고 시골에서 보다 잘 살기 위해 서울에서 집장사를 하다가 동업자에게 사기 당한 다음 시골에 돌아와서의 이야기다. 이 작품의 중요성은 서울에서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시골에서 살지 않으려는 시골의 풍속적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데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시골사람의 교활성과 출세주의 혹은 배금주의가 단편적으로 드러나고 있기 때문에 시골의 풍속적 모습의 본질을 제시하려는 작가의 투철한 의식과 객관적 성찰이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이 작품은 다른 작품에서도 드러나는 것이지만 문체의 힘에 의해서 읽히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이 작가의 장점이면서 약점일 것이다.
김성홍씨의 『굿이나 보며』(현대문학)는 우리사회에서 직장인들이 빠져있는 소시민적 태도의 무사주의와 표면적성과로써 도덕적 실패를 은폐하려는 형식주의에 관한 고찰에 해당하는 작품이다. 작자는 이 작품에서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이 여자를 돌로 쳐라」는 기독교적 윤리관이 형식적으로 받아들여졌을 때 야기되는 도덕적 무책임성이 우리사회에서 통용되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문제를 「긴장관계」없이 다루고 있기 때문에 다른 작품에서 거둔 감동과 완벽성을 여기서는 찾아볼 수 없는 것이다.
조해일씨의 「방」(월간문학)과 송영씨의 『중앙선기차』(창작과 비평)는 가난한 사람들의 세계를 통한 한국적 풍속의 축도를 보여주고 있다. 조해일씨의 작품은 한집에 셋방살이를 든 다섯 가구 가운데서 한 가구의 방이 갑자기 없어진데서 발단이 되어 타인이 끼어 든 여러 사람의 방, 즉 신혼부부·소설가·순경·대학강사 등의 방을 보여주는데 여기서 방이 상징하고 있는 것, 그리고 특히 대학강사의 발광은 지식인의 위축과 간섭에 대한 깊은 인식의 소산일 것이다.
송영씨의 작품은 기차 속의 혼란 속에서 우리사회의 지배적인 정신의 풍속-소시민적 이기주의·정신의 타락·젊은이의 좌절감·돈과 권력에 대한 아부-이 음험하게 드러나고 있는 작품이다. 이러한 두 작가의 태도는 이들이 허황한 현실감각이나 소박한 미의식에 얽매이지 않은 자유로운 정신의 소유자임을 의미한다. 이것은 앞으로의 한국 소설에서 강조되어야 할 요소 중의 하나인 것 같다. <김치수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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