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바의 세계에 남긴 청담 스님 설법 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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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조용히 문을 연 나는 다시 한번 내 뼈와 살을 이토록 인생의 대법리를 찾고자 떠나도록 일깨워진 그 본향. 이젠 노모의 모습도 자식의 재롱도 아내의 수줍음도 내일이면 멀리 멀리 저 옛날 할아버지가 들려주던 구수한 사랑방 얘기가 되어 달라고 조그만 보자기를 난 섬들에 아무렇게나 내던져 두고 사랑방 안채에서 고뇌와 번민, 희열과 애증, 아니 아무런 생각도 없이 주무시는 어머님 모습 앞에 언제까지나 이 자식 불효 막심한 자식이 한계 속에서 인생의 대법리를 깨치고 오는 날까지 만수무강하시기를 빌면서 총총히 비쳐 주는 별빛에 훈훈한 가을 바람을 맞으면서 합천 해인사를 향해 떠나니 그때 내 나이 19세였다.<인산 전남 밤에>
설령 내가 중생의 성불을 미루는 한이 있어도 모든 사람을 다 건져 놓고 부처가 되겠다. <불교정화 강연에서>
인간이 산다는 것은 자연 안에서 사회적으로 얽혀져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이 참으로 인간답게 살려면 먼저 자연에 있으면서 자연을 초월하고, 자기 안에 있으면서 자기를 초월하는 본성은 발견해야한다.
즉 우리가 종단·민족·인류 등 거대한 공동체를 말하지만 인간의 실존은 역시 각 개인의 인격성에 있기 때문에 「상구보제 하화중생」을 「모토」로 하는 우리 불자들은 우선 그 생활태도에 있어서 근면·검소하고 창의와 진취에 용감한 생활적 인간이 되어야하며, 인간관계에 있어서 겸손·친절하며, 협동·봉사하는 도덕적 자유인이 되어야한다. <「불교의 사회 참여」중에서>
민족중흥을 위한 한국적 「이데올로기」의 현대적 의의는 낡고(봉건적) 물들고(사대적) 더럽고(퇴폐적) 못생긴(퇴영적) 것을 무찔러 버리고 새롭고 순수하고 깨끗하고 아름다운 것을 창조하기 위한 한국의 지도이념의 새로운 확립을 뜻하는 것인데 낡았다는 것은 우리가 아직도 후진성을 완전히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고, 물들었다는 것은 그와 같은 후진성으로 말미암아 아직도 선진국에 의존하는 사대적 경향을 탈피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고, 더러워졌다는 것은 그와 같은 사대화로 인해 개인적 양심과 민족적 정기와 사회적 정의가 땅에 떨어져 불의와 부정과 부패와 추태가 판을 치는 타락된 사회풍조를 뜻하는 것이고, 못생겼다는 것은 그러한 퇴폐적 생활감정과 생활태도로 말미암아 인류가 지향하는 최고 이상이며, 민족번영과 국가발전의 기초인 복지사회의 건설을 위한 전진적 노력을 중단한 퇴영적 사회를 뜻한다.
그러나 이 모든 전제보다 더욱 중요한 일은 자칫하면 근대화 작업과정에서 범하기 쉬운 인간소외의 현상인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근대화 작업이 나의 부재 속에서 진행되는 한 진정한 의미에 있어서의 근대화 작업은 절대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나의 국가관」중에서>
생명. 생명은 산것이며 죽은 것이 흐르는 것이며 또한 산것도 죽은 것도 흐르는 것도 아닌 것이다.
그리하여 이 생명은 형이상으로 형이하로 그리고 또한 그것들과는 하나도 아니며 둘도 아니 것이다.
생명. 생명은 곧 나인 것이다. 그러므로 이 생명은 사고와 대상이 아인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나를 인식할 수는 없는 것이다. 나는 나를 모른다. 오직 천진한 나일 뿐인 것이다.
산은 높구나 물은 깊구나. <「생명의 세계」에서>
▲이제 덧없이 흘러버린 내 70을 넘은 전 생애를 나 자신이 거울 앞에 서서 살펴보니, 온통 남에게 자비와 기쁨과 원만을 가져다주기 전에, 그에게 짜증과 역겨움을 주지 안 않았는지 모두가 서운하고 부끄럽기만 할뿐이다.
아니다. 그 슬픔도 부끄러움도 난 이제 모든 중생들이 참회하고 또 자기가 자기의 죄업을 인식하는 보람된 참회 도량을 세우고 있으니, 이것으로써 그들에게 못 다한 내 잘못을 씻어 불까 한다.<금년 봄 자서전을 쓰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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