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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SA, 용산 미군기지 CC서울서 한국 도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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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엿들을 수 있는 건 다 엿듣는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를 비롯해 35개국 정상급 인사를 대상으로 도청한 사실이 드러나 곤욕을 겪고 있는 미 국가안보국(NSA) 활동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말이다. 1952년 창설돼 현재 3만8000여 명의 직원이 한 해 80억 달러(8조4800억원)의 예산을 쓰는 막강한 정보기관이다. 미 세계정보수집망의 중추인 NSA의 손길에서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도청 대상 33개국 중 한국은 초점지역으로 꼽혔다는 게 뉴욕타임스(NYT)의 보도다. 외교부의 확인 요청에 오바마 행정부는 분명한 답을 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미국 내 16개 정보기관을 총괄하는 제임스 클래퍼 국가정보국(DNI) 국장은 하원 청문회에서 “외국 정상 감시는 정보활동의 기본”이라고 말했다. 정상에 대한 도청 사실을 시인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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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의 상황은 어떨까. 익명을 요구한 정보 소식통은 6일 “중앙정보국(CIA)이나 국방정보국(DIA) 등 미국의 다른 정보기관들과 달리 NSA의 서울 활동은 상당 부분 베일에 싸여 있다”고 말했다. NSA 별칭이 ‘그런 기관은 없다’(No Such Agency)로 불리는 것과 맥을 같이한다. 정보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CIA는 북한을 바라보고, NSA는 서울을 바라본다”는 말도 나온다. 대북 정보에 치중하는 CIA 등은 한·미 공조를 통한 정보 공유를 하지만 NSA의 활동은 은밀하게 이뤄지고 있다는 얘기다.

 핵심 정보 관계자들의 전언을 종합하면 NSA는 광화문 미 대사관과 용산 미군기지를 거점으로 활동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치외법권적 지위를 누리는 두 곳이 극비를 요하는 감청장비와 ‘특수정보수집팀’(SCS)으로 불리는 조직 운용에 적합하다는 점에서다. 용산기지 내 주한미군 지하벙커 지휘소인 ‘CC서울’은 우리 정보 당국이 주시하는 핵심 시설이다. ‘팝(FOB)-K’로 불리는 기지 내 DIA의 거점도 지목된다. 서울 강남 산악지역에 자리한 미군의 지하시설인 탱고벙커의 전자장비에도 도청설비가 갖춰져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소식통은 “30명 안팎의 NSA 전문인력이 대사관 직원이나 주한미군 간부로 위장해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보면 된다”고 귀띔했다. CIA가 15명 정도의 공식요원을 파견한 것에 비하면 비중을 알 수 있다.

 일각에서는 한·미 연합으로 경기도 성남지역에 운용 중인 대북감청 전문 ‘제777부대’(일명 쓰리세븐)의 장비 일부가 북한이 아닌 ‘한국 감시용’으로 쓰인다는 의혹도 제기한다. 한·미가 공동 근무하는 쓰리세븐 부대장은 한국군 소장급 장성이 맡는다. 소식통은 “대부분 장비를 한·미가 공유하지만 미국 측이 절대 공개하지 않는 장비와 구역이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정보 관계자도 “우리 땅이지만 미국의 엄청난 힘이라는 현실이 지배한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미국의 정보 제공이 절실한 우리 입장에서 미 측에 반입을 거부하거나 설명을 요구하기 쉽지 않다는 얘기다. 또 한국 측에는 제공 불가한 ‘노폰’(No Foreigner)이란 도장이 찍힌 정보는 한국은 배제된 채 미국만 독점하는 최고급 정보다.

 NSA 서울 거점에 있어 최고의 정보는 한국 대통령의 동향이다. 정보당국에서 보안업무를 맡고 있는 한 관계자는 “특히 도청 대상인 국가원수의 유고나 비상사태를 얼마나 실시간으로 포착하느냐가 최대 관심사”라고 말했다. 한국의 경우 대통령이나 청와대 핵심 관료, 국방장관이나 합참의장 등의 미국 관련 언급이나 군사동맹 관련 움직임을 알아내는 게 중요하다는 것이다.

 수집된 정보는 미 메릴랜드주 포트미드의 NSA 본부로 보고된다. 키스 알렉산더 NSA 국장은 미 정보기관 총책인 클래퍼 DNI 국장에게 전달하고, 필요한 정보는 다시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 보고되는 시스템이다.

 미국의 감청 능력은 “우리가 상상하는 이상”이라는 게 소식통의 설명이다. 북한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의 숨소리까지 놓치지 않는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김대중 정부 때는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프랑스 파리에 머물던 부인 고영희(김정은의 생모) 간의 통화 감청내용을 국정원 최고위급 인사가 공개석상에서 언급했다가 미국 측의 거센 항의를 받은 일도 있었다. 3년 전 연평도 포격사건 때도 북한 부대에 떨어지는 우리 군의 대응 포사격 소리와 북한군의 긴박한 통신내용을 쓰리세븐 부대가 생생하게 포착해냈다. 서울을 상대로 한 도청의 경우 훨씬 손쉽게 높은 품질의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것이란 말도 이래서 나온다. 외국 정보기관 요원들은 대사관 직원으로 공식 등록된 백색(일명 ‘화이트’)과 상사원·유학생 등으로 위장활동하는 흑색(일명 ‘블랙’) 요원으로 구분된다.

 정부는 이런저런 도청 방지책을 강구해왔다. 박정희 대통령 재임 때인 1970년대에는 청와대 도청을 막으려 벽과 창문에 특수 방지장치를 설치하려다 해프닝도 벌어졌다. 전직 정보기관 관계자는 “관련 예산을 체신부(현 정보통신부)에 은닉 편성했는데 이를 의원들이 문제 삼자 고위 관료가 속사정을 묻지 말아달라며 무릎을 꿇고 읍소한 일도 있다”고 전했다. 최근에는 통화 내용을 암호화해 전송하는 비화(秘話) 전화나 비화 팩스로 도청에 대비하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메르켈 총리의 사례에서 보듯 암호체계는 보호막이 되지 못한다는 게 전문가 지적이다.

이영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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