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분 벽화의 보존 대책을…|진홍섭 <이대 박물관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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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이조시대를 제외하고는 우리 나라에 회화 유품이 극히 적음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삼국시대 이래 고려시대에 이르기까지 유명한 화가와 화적에 관한 기록을 보게 되나 막상 그 유품들은 하나도 볼 수 없고 삼고려 시대 말기의 몇 점 화적을 내놓고는 거의 벽화만이 알려졌을 뿐이다.
저 유명한 고구려 시대 고분의 벽화의 현상이 어떠한지 알 수 없으나, 다행히 일정 때의 모사품이 남아 있어 대체의 원형을 알 수 있을 뿐이다.
백제시대의 화적으로는 부여 능산리와 공주 송산리에 있는 2기의 고분 벽화뿐인데 이들도 모사는 되어 있지만 현장에서는 거의 원형을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인멸되었다. 신라의 벽화는 최근까지 하나도 발견됨이 없다가 지난 8월 이대 박물관에 의하여 영주 순흥에서 발견되었다. 고려시대에는 아직까지 2기의 고분 벽화와 부석사 조사당, 수덕사 대웅전 등 사찰 건물의 벽화가 수례 있을 뿐이다.
이상으로 볼 때 고려시대까지의 벽화는 그 수가 극히 적음을 알 수 있다. 이러나 현재까지 원형을 유지하고 있는 벽화 또한 매우 드물다.
사원 벽화는 벽체에서 분리하여 보존 조치를 취한 것도 있기는 하다. 하지만 대체로 모사 이외의 방법을 강구하지 않고 있는 듯 하다.
대개 벽화란 고분이든 사원 건물이든 간에 벽면에 그려진 채색 회화이다. 혹은 대리석을 마연하여 직접 그리는 수도 있지만 대개의 경우 면회한 위에 그리는 수가 많다. 이런 경우 벽화에 치명적인 타격을 주는 원인은 벽체 자체의 손상으로 입는 피해와 채색의 퇴색으로 인한 손상이 있다. 그러한 피해가 어떤데서 연유되는지를 구명하여 사전에 방지하여야 함은 물론이다.
한국의 벽화는 서양의 유성 회화와 달라 수용성 도료를 쓰므로 벽체에 침투되어 도료만을 분리할 수 없다고 한다. 그렇다면 벽체와 아울러서 보존하여야겠는데, 첫째 벽화는 자연적 또는 인위적 손상을 입는 수가 많으므로 그에 대한 보호책도 아울러 강구하여야 할 것이다. 둘째로 색채의 퇴색을 공기에 의한 과잉 건조, 관람인 등의 「개스」에 의한 오염 문제가 예상된다. 이에 대한 대책도 충분히 이루어져야할 것이다. 사실 부여 능산리 백제 고분 벽화 중의 천장에는 불에 거슬린 자리가 있으니 아마도 촛불 같은 것을 바싹 천장에 댔던 것이 분명하다. 실로 어처구니없는 것이다.
말하자면 그 수가 극히 적은 고대 화적에 대하여는 가능한 모든 방법으로 기록을 남기고 그 보존 대책을 강구하여야 함에도 공주의 백제 고분 벽화의 경우는 거의 완전히 인멸되고있는 것이다. 남은 것은 모사밖에 없다. 과연 이러한 길-. 즉 모사 하는 길밖에 없었던가 매우 한심스러운 일이다.
근래에 문화재 보존에 관하여 과학적 보존이란 말이 유행어 같이 등장하고 있다. 필자는 벽화의 과학적 보존 방법에 관하여 문외한이지만, 벽화가 일단 손상을 입으면 복원이 불가능한 성질의 것이라는 점을 생각할 때 보다 우선적이고 보다 철저한 과학적 보존 방법이 적용되어야 할 일이다.
최근 「프랑스」의 「라스코」 동굴을 견학한 일이 있는데 이 동굴은 약 2만년전의 유적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동굴 자체도 중요하지만 벽면에 수많은 채색 벽화가 남아 있는 것으로 더욱 유명하다. 이 동굴에 대한 출입은 근년 그 보존 문제 때문에 극도로 제한되어 있으며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현상 유지에 힘쓰고 있다. 동굴 부근의 외부에서의 행동이 재한 돼 있음은 물론 일정한 통로 이외엔 걷지 못한다. 굴 내에는 이중문이 있어 외부 공기의 직접 유입을 막고 출입자에겐 소독까지 실시하는 형편이다. 굴 내 통로의 조명도 모두 과학적 근거에 의하여 실시되었고 벽면에는 무수한 각종의 측정기가 설치되어 있다.
이곳에는 10년이래 근무한다는 전문 직원이 있어 하루 2회씩 동굴의 각종 측정기를 점검하여 기록하고 있었다. 물론 과학적 방법도 우리보다 앞서고 있겠지만 요는 성의에 달려 있다. 성의가 있으면 방법이 생기게 될 것이다.
우리에게 벽화 보존에 관한 당면한 과제가 있다. 경주 박물관에 사장되어 있는 서역 지방의 벽화, 백제 무령왕릉 발견 유물 가운데 두침의 회화, 순흥 신라 어숙술 간묘의 벽화 등이 그것이다. 서역 벽화는 수십년을 두고 아무 대책 없이 방치돼 있다. 근본적인 보존 방법을 강구하지 못한다면 현상 유지만이라도 되어야 할 일이다.
백제 무령왕릉의 유물은 지금 과학적인 처리가 진행 중이므로 그 결과가 한국에 있어서의 모범적인 보존이 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순흥 고분의 벽화는 조사 도중에도 변화가 보여 현상 보존을 위해 도로 묻어 밀폐하여 놓았다.
이들 화적은 모두 우리 나라에서는 극히 귀중한 1급 문화재들이다. 모두 사무적으로만 처리될 성질의 것이 아니다. 이에 관여한 사람들은 관여도의 깊고 얕음을 막론하고 성의를 다하고 모든 방법을 동원함으로써 보존 대책을 세워야 할 일이다. 또 그 대책은 국가의 책임 하에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순흥의 고분 벽화가 이화여자대학교 박물관에 의하여 발견, 조사되었지만 그것이 이대의 것은 아니다. 벽화가 그 성질상 한번 자체에 대한 손상이나 혹은 채색의 퇴색이 있게 되면 다시는 돌이킬 수 없이 사라져 가는 것임을 거듭 강조하면서 그 보존을 위하여 철저하고 시급한 대책이 있기를 요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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