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과 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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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텔리비젼」이나 「라디오」의「드라머」, 또는 영화에서는 으례 악이 지고 선이 이긴다.
대중 예술은 이런 권선징악의 원칙을 따르기 마련이다. 언제나 선이 이기기를 대중이 바라고 있기 때문이라 한다. 그러나 대중이라고 해서 꼭 악이 지고 선이 이기기 마련이라고 믿고 있을까?
지난 8일 자살한 한 고급 관리의 유서 속엔 『악은 살 수 있어도 선은 살지 못한다』는 구절이 적혀 있었다 한다.
그의 자살 동기가 살기에 지쳐 죽음을 택한 것은 틀림없다. 만일에 그가 가난하지만 않았다면 혹은 부인이 정신병에 걸리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의 두 아들은 또 실명 상태로 학교에도 다니지 못했다 한다. 영양 실조로 인한 실명이었는지도 모른다. 또 회복의 가능성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한번도 어엿한 전문의의 진단을 받지도 못했을 테니 말이다.
그러나 가난만으로 죽음을 택하게되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그의 경우 온 식구가 끼니를 굶는 것은 예사였다. 출근 「버스」삯이 없어 옆방 사람에게서 빌리는 일도 허다했다 한다.
그래도 그는 지금까지 용케 버티어 왔다. 뭣인가 그래도 삶의 보람과 긍지를 지니고 있었음이 틀림없다.
이것마저 잃은 그가 누구를, 또 무엇을 원망하면서 죽어갔는지. 아무리 부이사관이라지만 모든 것을 공제한 뒤 매달 손에 쥔 돈은 2만여원, 부정 없이는 도저히 살아가지 못했을 것도 같다.
그러면서도 다른 관리들은 흥청거리며 잘 살고 있다. 점심때 사 먹는 비싼 음식이, 퇴근 후의 한잔 술이 모두 부정·부패의 산 증거나 다름없다고 그의 눈에는 비쳤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코피」 한잔에도 발발 떠는 그를 비웃었을 것이다. 주변 없는 무능력자라고….
그는 정년을 앞두고 겨우 부이사관에 올랐다. 그를 비웃고, 어디서 생긴 돈인지 흥청망청 잘 쓸 수 있던 자들은 모두 그를 앞질러 언제나 좋고 높은 자리들에 앉아 있었다.
자식에게 남기는 유서란 좋은 교훈을 담는게 보통이다. 그런 유서 속에 그는 『선은 살지 못한다』는 말을 남겼다. 그러니 살아가려면 악해야한다고 마지막 유언을 남긴 아버지로서의 그의 가슴은 얼마나 찢어졌겠는지. 그 자신밖에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악이 늘 잘산다는 것만은 사람들은 잘 알고 있다.
사마천도 2천년 전에 이미 천도가 어디 있느냐는 비통한 의문을 「사기」에 담아 만고에 남겼다.
이 사실은 「사기」를 잃지 않아도 누구나 다 잘 알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끝내는 선이 이기고 말게 된다는 「드라머」의 「스토리」를 그처럼 즐겨하는 대중의 심리는 과연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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