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렐리」의 모든 것|사생활에서 「레퍼터리」까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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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한낮의 찌는 듯한 무더위가 서늘한 8월「로마」의 밤, 고대 「카라카라」 욕장을 무대로 2만여명을 수용한 야외 「오페라」극장, 경질 유리를 느끼게 하는 줄기차고 투명한 「테너」소리, 1백80cm의 후리후리한 키에 홍안 띠운 미남 주역 가수가 「오페라」『안드레쉐니에』 제1막에서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지기 전 『어느 날 푸른 하늘을 바라보며』라는 「아리아」를 피를 토할 듯한 격정으로 목청을 뽑던 장면은 이제도 좀처럼 잊혀지지 않는다.
그때 가수가 바로 「프랑코·코렐리」였는데 이제 세월이 흘러 「칼라스」와 『필라타』『폴리우트』를, 「닐슨」과 『투란도트』를, 「스텔라」와는 『일·트로바토레』를 불러 숙원인 「스칼라」좌와 「메츠」의 독존적성주가 됐다.
62년 「잘츠부르크」음악제에서 거장 「카라얀」지휘로 『일·트로바토레』가 막을 올렸을 때 화려한 미성에, 매혹되고 깊은 정감에 사로잡힌 청중들은 자리를 떠날 줄 몰랐으며 『빗토리오!』 소리만을 거듭 외쳤다.
「스페인」의 「피스카야」와 「아파공」지방을 무대로 15세기 초엽 봉건적인 횡포와 영주에게 박해받는 「집시」처녀의 복수 얘기, 여기에 깃들인 아름다운 영주의 여관과 젊은「투란도트」와의 사랑의 비극을 호소한 「코렐리」의 「드러매틱」한 노래는 「아폴로」 신을 연상시키는 「타이즈」 차림의 균형 잡힌 몸매, 돌 사슴처럼 쭉 뻗은 각선과 함께 뭇 여성 「팬」을 매혹시킨 근원이 되었다.
목소리를 보호하기 위해 술 담배를 않고 공식 「파티」조차 사양하며 「이탈리아」사람의 공통점인 다혈질적인 성격을 의식적으로 피하려 해 왔고, 심지어는 세속 인간들의 하는 일이란 모두 노래에 장애가 된다고 믿고 있기에 부인 「로레타」는 언젠가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연주회 날은 특별히 조용하려 하기 때문에 주고받는 말조차 귓속말 같아져서 몸짓으로 나타내는 의사를 내가 고안해냈읍니다』고. 「코렐리」는 애처가로도 유명한데 실상 「로레타」 부인은 그의 예술에 가장 으뜸가는 이해자였고 「코치」인 것이다.
「탈리아비니」와 「피아·다시나리」 미남 미녀 부처를 상상하고 부인을 만나 보니 상상과는 달리 육중한 몸집에 생김생김이 다소 억척스럽기까지 했다. 그러나 「코렐리」는 어느 연주회 건 반드시 아내를 동반했다.
이번 내한 때도 지휘자 겸「피아니스트」인 「로마」가 극장 제1 부지휘자 「알베르토·벤투라」와함께 「로레타」 부인이 오게 되는데 「코렐리」는 부인이 무대 뒤에서 노래를 들으며 일일이 「메모」를 해 줘야 마음놓고 부를 수 있다는 것이다.
한끼에 근반씩의 신선한 쇠고기와 생마늘 한줌을 꼭 준비해 달라는 「코렐리」의 체력 보강에는 「로레타」부인이 직접 검식한 다음에 주어진다.
하잘 것 없는 3급제도 기술자로 「스타트」했다가 미성 때문에 「오페라」의 세계로 전향한 「코렐리」의 인생 유전도 흥미롭지만 자기 연기를 위한 연구 자료로 역사·사회·풍속관계 전문서적이 넓은 서재를 꽉 메우고 있는 사실이라든가, 어느 「오페라」극장에서도 인기 「스타」는 연륜파 심술장이 단역에게 텃세를 당하게 마련인데 유독「코렐리」만은 이런 일이 한번도 없었다는 것도 재미있는 일이다. 그것은 풍부한 인간성 때문일 것이다.
이번에 불러 줄 「레퍼터리」는 당일 또는 무대 위에서 느껴진 감흥, 또는 관객 반응이나 분위기에 따라 바뀌어 갈 수 있는데 그만큼 다양한 것이다. 「토스티」의 가곡만 해도 사랑을 체념 못한 사나이가 떠나버린 애인에게 탄식으로 붙이는 『마지막 노래』를 듣게되면 우리들도 그리움에 사무쳐 가슴이 미어질 것이다.
흐르는 듯한 선율로 예부터「이탈리아」 사람 마음에 간직된 「체사레오」시로 된 『세레나타』, 「로렌초·스테케티」의 시로 엮어진 『꿈』에서는 「소트·보체」의 미성을 마음껏 구사, 자기를 동경하는 사나이의 꿈을 지닌 소녀의 심상을 흐뭇하게 부각할 것이다.
『귀여운 입술』을 근대 「이탈리아」 대시인 「가브리엘·다눈치오」가 29세 때 「포지리포」에서 써 「룻소」에게 준 시를 1940년에 「토스티」가 작곡한 아름답고 유연한 연가다.
「오페라·아리아」로는 「베르디」의 『맥베드』에서 조국을 쫓겨난 사람들이 고향을 그리는 슬픈 합창에 이어 「맥베드」에게 살해된 자식을 안타깝게 그리워하는 「막다프」의 비통한 영창, 「풋치니」의 『서부의 아가씨』에서는 보안관과 부광들에게 붙잡힌 청년 「존슨」이 교수 당하기 위해 숲 속에 끌려 들어가 애인 「미니」에게 전해달라고 지켜보는 사람들에게 『자유로운 몸 되어 멀리 가버렸다』를 애절하게 불러줄 것이다.
『투란도트』 제3막 『공주는 잠못 이루고』는 「풋치니」가 「테너」가수를 위해 최후로 쓴 「아리아」이기에 더욱 극성이 강한데 여기서는 왕자 「카라프」의 열렬한 사랑의 독백을 부른다.
「나폴리타나」로는 「카푸아」작곡이 2곡인 바 남구의 태양과 푸른 바다, 「오린지」향기를 노래한 『오 나의 태양』, 「나폴리·피에티그릇타」 음악제 입상작으로 「뷘첸치오」의 시로 된 정열적 사랑의 노래 『네게 「키스」하고 싶어』, 최근 「나폴리」민요 작곡가로 널리 알려진 「빌리」의 대표적 「칸초네」『귀뚜라미는 노래하고』는 깊어 가는 가을밤의 쓸쓸한 심정이 구비 쳐 올 것이다. 유한철 <음악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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