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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감 바람에 떠는 은행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경비 과용」에서 실마리가 잡힌 금융적폐일소의 필요성과 이에 따른 금융 정상화 조치의 등장으로 은행가에는 무서운 경비 절감 바람이 불어닥치고 은행 임직원들은 새로운 긴축환경에 적응하느라고 전전긍긍하고 있다.
절감 「쇼크」를 맨 먼저 받은 곳은 은행장실과 이사실의 판공비 지출을 맡고 있는 비서실. 행장 명의의 결혼 축의금은 건당 만원대가 통례였으나 10월부터는 3천원 수준으로 깎였다. 접객용 미제 「오린지·주스」가 「환타」「오란 C」「콜라」등으로 바뀌고 「청자」가「신탄진」으로 격하된 곳이 대부분. 경상비를 제외한 대외 경비 지출은 사소한 것까지 행장이 직접 「체크」하고 약간 액수가 많은 것은 은행 집회소에서 매주 금요일에 열리는 금요회 (은행장 회의)를 통해 은행별 액수를 동일, 다른 은행보다 단 한푼이라도 더 썼다는 비난을 받지 않으려는 비장한 결의를 보이고있다.
일반 직원들도 10월 이후 가처분 소득이 크게 줄어들어 수지 균형을 맞추는데 쩔쩔매고 있다. 본봉과 법정 수당은 변함이 없지만 이것 외에 매달 받던 여러 가지 명목의 생활 보조금이 잘려나갔다. 어린이날·어머니날·광복절 수당이 각각 지급됐는가 하면 가을철을 맞아 보약으로 몸을 튼튼히 하라는 추계 단련비까지 있었다. 그래서 말단 행원 기준으로도 매월2∼3천원씩의 급료 외 지급이 있었고 사실 이런 것들이 은행원들의 생활을 어느 정도 안정시킬 수 있는 요인이었다..
절감 선풍을 맞아 대리급은 한달 평균 3만여원의 손해를 보게 됐다고 한다. 그래서 점심시간에 은행원의 외식 경향이 현저히 줄어들고 구내 식당에는 차례를 기다리는 행원들이 장사진을 치고 있는 풍경도 생겼다.
경비 절감이 경영 합리화를 위해서는 항상 좋은 것이겠지만 전후 사정을 고려하지 않은 무조건적이고 일률적인 절감 조치는 업무 수행에 막대한 차질을 가져오기도 한다.
특히 값진 연구와 귀중한 분석 결과를 우리 사회에 제공해 온 한은·산은·외환은 등 국책 은행의 조사부 기능은 큰 타격을 받게 될 것 같다. 이들의 연구·조사 결과는 항상 출판물을 통해 제공되는 것인데 정기적인 조사 월보·통계 월보 이외에 특정 문제를 다루는 각종 단행본의 출판이 거의 금지될 형편에 있어 우수한 은행 조사부 기둥의 마비와 관계 직원들의 사기 저상이 우려된다고 관계자는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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