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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우리는 쿠바로 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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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6면

한국 기업들이 쿠바의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미국 플로리다에서 1백km 남짓 떨어진 카리브해의 소국 쿠바. '사회주의 국가' '미국과 소련의 미사일 위기' '피델 카스트로''미국의 경제봉쇄'-. 이 정도가 한국인이 쿠바에 대해 갖고 있는 지식의 대부분일 만큼 먼 나라다.

실제로 북한과 상주 대사급 외교관계를 맺고 있으면서 한국과는 수교하지 않은 몇 안되는 나라 중 하나다. 이미 글로벌 네트워크를 갖추고 있는 한국 기업들이 전 세계에서 시장개척을 하지 못한 사각지대(死角地帶)였다.

그 나라가 서서히 빗장을 열고 있다. 지난달 한국 기업으로는 처음으로 쿠바시장 개척에 나섰던 5개 중소기업 관계자들이 한 자리에 모여 쿠바 진출에 관한 난상토론을 벌였다.

◆ 시장 전망은=안료.도료 생산업체인 태성화학의 유태호 사장은 "24시간이 넘는 비행 끝에 아바나에 도착했을 때 통역하는 사람이 김일성대학에 유학을 다녀온 쿠바인 세명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고 황당했다"고 말했다. 그는 "포장도로의 차선이 다 지워지고 건축물 내외부의 칠이 바랜 상황이어서 시장만 개방되면 잠재력이 무궁무진하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했다.

다른 기업인들의 반응도 긍정적이다. MP3 플레이어 '아이리버'로 유명한 레인콤의 박지민씨는 "국민 중 대졸자 비율이 17%에 달할 만큼 고학력자들이 많아 국가에서 인터넷을 통제하는데도 MP3를 다운받아 즐기는 등 개방적인 면도 있다"며 "한국 제품에 대한 현지인들의 반응도 좋아 시장 개척을 낙관한다"고 말했다.

폐쇄회로TV 등의 영상을 디지털로 저장하는 제품인 디지털비디오레코더(DVR)를 들고 쿠바를 찾은 컴아트시스템 설창훈 사장은 "보안 문제에 관심이 많은 쿠바 정부 관계자들이 화질 좋고 관리가 쉬운 DVR의 장점에 감명을 받은 듯했으며 이미 파나마를 통해 수출 상담도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신중한 전략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코비스광학 황인천 대리는 "쿠바 시장은 거의 무상으로 생필품을 공급하는 4백50여개의 국영 상점과 외화로 물건을 살 수 있는 고급 상점으로 이원화된 상황"이라며 "외화를 벌 수 있는 고소득자를 중심으로 고급제품 판로를 뚫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코비스의 주력제품인 안경 렌즈의 경우 국영 상점용은 중국산 제품의 원가(60센트)에도 미치지 못하는 29센트에 낙찰됐을 정도로 저가 경쟁이 치열하다는 것.

토론 참석자들은 장기적으로 직접투자도 검토해야 한다는데 이견이 없었다. 가방.의류용 원단을 취급하는 동현아이엔디 이승국 사장은 "1천1백만명에 달하는 쿠바 사람들의 구매력은 예상보다 높아 지금이라도 쿠바 정부의 보증만 확실하면 바로 물건을 실어보낼 수 있다"면서 "평균 임금이 15만~25만원에 불과한 데다 1995년부터 1백% 외국자본 회사 설립과 이익금의 본국 송금을 허용하는 등 쿠바 정부가 외국인 투자를 전면 개방해 매력있는 투자처"라고 덧붙였다.

쿠바는 아바나 인근에 3개의 자유무역지대를 운영 중이며 입주기업에 대해서는 수입 관세.소득세 및 고용 관련 세금을 면제하고 있다. 이에따라 2001년 현재 4백개 이상의 합작투자회사가 활동 중이며 외국계 지.상사 수도 6백여개 이상으로 추정된다.

◆ 풀어야 할 과제는=쿠바에 직접투자했던 외국계 기업 관계자는 "도로.전기.통신 등 인프라가 미흡한 데다 숙소.탁아소 등 후생 복지시설을 갖추는데 예상 외의 부대비용이 많이 들었다"며 "사회주의 국가의 특성상 임금 차등 지급을 통해 현지 직원들의 동기를 부여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점도 문제"라고 말했다.

철저한 준비 없이 달려들었다가는 낭패를 보기 십상이라는 것이다. 또 태환폐는 달러와 1대 1로 교환되지만 국민폐는 1달러당 23페소인 이중 환율구조와 만성적인 외환 부족에 시달리는 점도 교역 확대에 걸림돌이다.

이에 대해 KOTRA 멕시코무역관 전춘우 차장은 "쿠바는 구상무역이나 신용장 방식 등의 외상거래를 선호하고 있으나 국가신용도가 낮아 대금결제 조건을 탄력적으로 운용할 필요가 있다"며 "현지에 진출한 유럽계 은행 등이 국가 신용도가 아닌 기업의 신용도에 따라 보증업무를 하고 있는 점을 감안해 한국 수출입은행이나 수출보험공사의 지원을 검토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 쿠바는=국내총생산(GDP) 25억5천만달러, 연간 교역액 1백억 달러로 적지 않은 경제규모를 지니고 있다. 한국정부의 선(先) 수교원칙에 묶여 한국 기업들은 파나마와 캐나다 등을 통해 쿠바 시장에 간접 진출하고 있는데도 수출액이 2001년 1억2천만달러(쿠바당국 추계)에 이르렀다.TV.냉장고 등 가전부터 컴퓨터.승용차.IT제품까지 쿠바시장에서 갈수록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KOTRA 중남미 지역본부 김건영 부본부장은 "아직 한국 진출기업은 없지만 미국의 경제봉쇄가 풀릴 경우 미국과 인접한 지정학적 위치상 멕시코에 이어 대미 우회 수출기지가 된다는 점과 쿠바의 인구 규모와 관광자원 등으로 볼 때 장차 카리브해의 상업중심지로 떠오를 가능성이 크다는 점 등은 간과할 수 없는 요인"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11월 무역투자협력협정 양해각서(MOU)가 체결되면서 물꼬가 트인 경제교류는 지난달 17개 업체(한국 본사는 5개)가 무역상담회를 연데 이어 쿠바도 서울에서 열린 '프리미엄코리아 2003' 수출상담회에 구매단을 파견하는 등 본궤도에 올라섰다.

또 쿠바 당국이 직접 '쿠바무역투자 심포지엄'을 오는 5월 서울에서 개최해 한국 기업과의 교역 문호를 넓히는 한편 KOTRA도 IT시장개척단 파견(6월), 아바나국제박람회 참가(11월) 등을 예정하고 있다.

김창우 기자

<사진설명>
지난달 한국의 첫 시장개척단으로 쿠바를 방문했던 기업인들이 다시 모여 쿠바시장 공략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왼쪽부터 ㈜레인콤 박지민씨, 태성화학㈜ 유태호 사장, ㈜코비스광학 황인천 대리, ㈜동현IND 이승국 사장, KOTRA 멕시코무역관 전춘우 차장, KOTRA 시장개발팀 김동엽씨. [임현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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