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과 북의 대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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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마을을 가다듬어도 일구의 불안에 비슷한 느낌을 거부할 수 없는 채로 역사의 모퉁이에 끼어서 나의 인간으로서의 최선을 또 다짐한다.
벌써 남북적십자예비회담이 시작된지도 2삭을 넘어섰고 지난8월12일의 최두선 총재님의 이산가족 찾기 운동의 제청이 있은 지는 석달 반이 된다. 허리가 잘린 이 땅에 삶을 향유한 자 뉘라서 가슴의 고통을 자각하지 않고 이 역사적인 거사를 지켜볼 수 있었을까. 기대와 절망과 그리고 부끄러운 공포가 엇갈리는 상극적인 감회와 더불어 역사의 귀추를 지켜보는 이 안타까운 민족의 순간 순간들. 나는 그 속을 대표의 한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는 나 자신을 새삼 발견하곤 옷깃을 여민다.
9월20일 처음으로 대면하고 악수를 나눈 순간 같은 민족이라고 오랜 세월 익혀온 감정을 의지하여 반가움을 금할 수 없었던 것은 솔직한 느낌이었다. 그러나 그로부터의 회담은 26년이란 뼈저린 분단의 역사를 차차 실감케 하는 쓰라린 대좌의 연속이다. 손 내밀면 닿을 것 같은 겨레의 마음이면서도 도시 닿지 않는 도도한 분단의 물결을 원망하지 않을 수 없다. 세계의 모든 관심 있는 사람들의 기대 어린 눈길을 온몸에 느끼면서도 오랫동안 등지고 살아온 동기간의 증오와 회의가 응결되어 오가는 말이 빗나가는 비극을 탄 하지 않을 수 없다.
무릇 대화가 진실 된 성심 없이 이루어질 수 없듯, 그리고 성심이 성심으로 서로의 가슴에 와 부딪치는 경험 없이 이루어질 수 없듯, 이 민족의 갈라진 마음자리에선 아직 진실 된 대화가 성립될 수 없다. 좀더 참아야 한다. 그러나 노력으로, 각고하는 노력으로 대화를 성공시켜야지, 다른 길이 있을 순 없는 우리가 아닌가. 짓궂은 세계역사가 우리를 분단 분열시켜 놓았지만 세계역사는 우리의 상처에 아랑곳하지 않고 급류와 같이 자기네의 궤도로 치닫고 있으니 우리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우리의 상처를 스스로 고쳐야한다,
창밖에 섰던 북쪽 여기자가 어디에서인가 보았던 순한 아주머니의 웃음을 자청해 보내왔다. 마주 웃어주는 내 얼굴은 내 마음을 반영했을 것이다. 그후 그 여기자는 다시는 웃어주질 않는다. 왜 그럴까. 무엇 때문에 웃어주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마주 앉은 북쪽 대표가 일장의 선전연설을 퍼붓는다. 찬물을 함빡 뒤집어쓰는 느낌이 든다. 그러나 이렇게라도 이야기는 계속되어야 한다. 불연독성기압과도 같이 감칠맛이 없는 대화 속에서라도 우리는 성심을 가지고 흩어진 식구들의 가슴을 맞대주는 일을 위해 의사소통의 실마리를 꾸준히 찾아 나가야한다.
손을 부여잡고 서로를 반기는 울음이 폭발하는 광경이 이룩될 때까지 이 고통스러운 대좌에서 물러설 수는 없는 일이다. 3국이 통일되기 위해서 그 긴 세월을 이겨낸 이 겨레였거늘 불과 2개월의 대화의 초두에 이런저런 감상이 있을 순 없다. 나는 오늘도 기도 속에 『민족의 가슴속을 헤아릴 능력주소서』간결히 담아본다. 남북의 대화를 위해서해서.
정희경<이화여고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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