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공대화 길 닦은 주역은 누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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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키신저」가 지난 7월 극비리에 북평을 찾아간 사건은 확실히 역사적인「미스터리」가 되어있다. 어떻게 해서 그 길이 뚫렸을 것이냐는 의문과 그 비밀이 끝내 보장되어 「극성스러운」미국의 신문들이 면목을 잃었다는 점에서 호사가들의 화제이기도 하지만 「워싱턴」-북평의 길이 어떤 「루트」로 뚫리기 시작했느냐는 의문은 앞으로의 미-중공관계나 그에 부수되는 문제의 향방을 전망하는 데에 중요한 발상점이 되기 때문에 미국의 중공문제전문가들이나 언론계의 관심 밖으로 그 문제가 아직 나가있지 않다.
최근 미국에서 나타나고 있는 중공에 대한 놀라운 연구열과 관심-. 그렇기 때문에 중공얘기가 나오면 대학의 연구실이나 기자들의 모임에선「핑퐁」이전과 내년 5월 (「닉슨」의 북평방문)사이로 화제가 건너뛰곤 한다.
「핑퐁」으로「워싱턴」-북평의 길이 열린 것은 아니라는 상식에서 출발하여 그 추리와 전망에는 정설이 없다. 그러나 주목할만한 단서가 최근 고개를 들고 있다. 중공국적의 한 일본인이 그 교량의 한 숨은 교각이고 그 옆에 「키신저」「라이샤워」「마셜·그린」이, 다른 한쪽에 임표가 선 것 같다는 얘기가 그것.
상백룡이라는 사람은 중공군에 가담해서 임표와 함께 항일전선에 섰던 사람. 중국인으로 대륙과 일본을 가끔 왕래하는데 원래는「고히나다」(소일향) 라는 이름의 일본인이라는 것 (최근에도 일본에 머물러있는 듯 물론 일본정계와는 무관하고).
「키신저」「라이샤워」「마셜·그린」 3인조와 상백룡간의 얘기는 70년 초부터 시작됐다는 얘기고 보면 그로부터 「핑퐁·테이블」이 마련되기까지는 무려 1년 반이 걸린 셈이다.
금세기후반최대의 외교통화가 과연 이「채늘」을 통한 것이라면 백악관-3인조-상백룡-임표-모택동 간에 오고간 어휘와 그간의 표정들은 얼마 후에 얼마만큼이나 세상에 알려질 것인가? 적어도 5년, 10 년안에 알려지기 어려울 것은 틀림없고 어쩌면 그 전모가 전해지기는 영원히 기대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교각의 일역을 맡은 것으로 알려진 「라이샤워」교수 (하버드대·전 주일 대사)는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상백룡이라는 사람에 관해 얘기해 주겠느냐는 말을 듣고 『그것이 누구냐』 고 되물었다 (질문의 시기가 일렀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 「채늘」에 대해 한 전문가는 다음과 갈이 그 가능성을 뒷받침했다. 첫째 어느 쪽이 먼저 접근했건 간에 미·중공간의 유일한 통화구인 「바르샤바」회담은 그 구상을 교류하는 선으로 약하다. 또 제삼국의 외교「서비스·라인」을 이용하기는 너무나 중대한 일이었다. 둘째 중공이 중대한 문제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모택동을 움직이는 영향력에 임표를 따를 사람이 없다. 문제의 중대성과 상백룡이 임표의 친우라는 점에서 그 「채늘」은 충분히 납득이 간다는 것.
그러한 「채늘」을 「진실」인 것으로 가정할 때, 거기에 휩싸이는 의문점과 거기서 뽑아지는 추정이 생긴다.
임표 실각 설에도 불구하고 「키신저」의 2차 중공방문이 이루어 졌다는 사실이 맨 먼저 제기되는 문제.
첫 의문점에 대해 한 유력한 전문가는 이렇게 분석했다. 『「키신저」의 2차 방문은 중공에 이상한 움직임(비행금지 10월1일행사취소등)이 있었던 9월말 훨씬 이전에 결정된 것이고 또 그 이상한 움직임은 중공의 대미정책에 변화를 가져올 만한 것이 아닐 것』이라는 것.
실상 미국의 여러 중공전문가들은 중공에 큰 변화가 있는 것 같은 명확한 증거가 없기 때문에 9월말의 조짐을 크게 생각하지 않고 있다. 「키신저」의 2차 방중이 순조로 왔던 사실을 들어 오히려 임표가 건재할 것이라는 역해석까지 있다.
둘째는 임표가「채늘」에 개입되어 모택동에 영향을 주었을 경우 중공의 대미협상기조가 무엇일 것이냐는 문제다. 이점에 대해서는 임표가 국방담당자라는 점으로 미루어 군사문제가 필연코 바닥에 깔려있으리라는 전망이다.
미국이 대만에 대한 직접·간접의 군사지원(7함 대등)을 전면 철회시키는 문제 같은 것이 「그라운드·베이스」가 되어있을지도 모른다는 분석이다.
중공 「유엔」가입문제가「유엔」총회에서 한창 불을 뿜고있는 동안 그에는 관심 없다는 듯「키신저」는 북평을 갔고, 또 북평은 그를 맞았다. 「키신저」-주은래의 회담이 10시간에 걸쳐 이루어졌고 인민일보가「키신저」의 동정사진을 크게 여러장 실었다는 사실은 퍽 재미있는 일이다. 「임표의 개입」-. 그렇기 때문에 미·중공간의 대화는 외교적·정치적·경제적 측면보다 군사적인 측면, 다시 말해서 「아시아」의 힘의 배치에 「억센트」가 있는 것일까.
이런 접근에서 본다면 중공이 일본의 군사력을 경계하는 것이나 또는 주은래가 「뉴요크·타임스」의 「레스턴」을 만났을 때 한국에서의 미군철수를 강조한 점은-물론 새로운 사실은 아니지만-앞으로의 미·중공관계와 그 「임플리케이션」을 전망·추적할 때 다시 음미해야 할 문제인 것 같다.
【보스턴=김동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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