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이 라마도 화낼 때가 있더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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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인도 다람살라에서 달라이 라마를 모시며 26년째 수행 중인 청전(60·사진) 스님이 방한했다. 티베트 망명정부 다람살라의 삶의 풍경과 사람 얘기를 소개한 산문집 『당신을 만난 건 축복입니다』(휴)를 들고서다.

 그는 가톨릭→한국 불교→티베트 불교로 이어진 ‘만행(萬行·깨닫기 위해 두루 돌아다님)’으로 유명하다. 신학교에 입학했다가 송광사 구산(九山·1910~83) 스님으로부터 “전생에 고행승이었는데 그런 학교를 다니느냐”는 불호령을 듣고 출가했으나 마음에 차지 않자 다시 다람살라행을 선택한 것이다. “성(性)적인 문제로 괴로운 적 없느냐”는 질문에 “있다”라고 솔직하게 답한 달라이 라마의 인간적 모습에 반해 스승으로 받아들였다는 얘기도 유명하다.

  스님은 거침이 없었다. “겪어보니 종교의 폭력과 위선은 어디서나 똑같았다”며 고매한 척 위신을 차리는 일부 종교인들의 행태를 강하게 비판했다. 자신 앞에서 종단 내 위상을 들먹이며 대접받으려는 스님들을 두고 보지 못한다는 거다.

 그런 스님에게 다람살라는 달랐다. 모든 게 불편했다. 하루 열 차례 넘게 정전이 된다. 스님은 하지만 “그래서 나를 놓치지 않고 본연의 모습을 지킬 수 있었던 것 같다”고 했다. 또 “새옷보다 헌옷이 더 자유롭다. 사람은 자기 편한대로 살 때 행복하다. 남 의식하고 살면 얼마나 피곤한가. 괜히 폼 잡지 말고, 편하게, 상대방을 배려하는 그런 삶을 살려고 노력한다”고 했다.

 스님은 “인도에 무서운 각오로 오는 사람들이 많다”고 했다. 짧은 시간에 도인이 되려고 하는 ‘속성반’ 지망생들이다. 스님은 “나도 한때는 용을 써서 테크닉을 배워 어느날 갑자기 ‘뻥∼’ 하고 도인이 되길 바랬지만 결국 종교의 실체는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일이고 남을 배려하는 것이라는 점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또 “한국 사람들이 화를 잘 내는데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누구나 시간이 지나면 화낸 일을 후회한다”며 “화를 잘 내지 않는 사람이 성자”라고 했다.

“달라이 라마도 공식적으로는 화를 잘 내지 않지만 실제로는 화를 내기도 한다”며 마음을 잘 다스릴 것을 주문했다.

신준봉 기자
[사진 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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