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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테스탄트 시대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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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지난 31일은 세계종교사에 커다란 선이 그어진 날이다. 1517년10월31일 저녁 「마틴·루터」는 서양중세 사회와 교회를 근본으로부터 개조하게될 95개조를「비텐베르크」성당 문에 내붙였다. 당시「비텐베르크」대학의 일개 교수에 불과하였던 「루터」는 이 95개조를 다만 신학토론에 붙일 목적으로 내걸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 결과는 실로 놀라운 것이어서 1주일 이내에 수만 부가 독일전역에 퍼져 나갔고 당시 교회에서 면죄 표를 판매하던 일은 실질적으로 중단상태에 빠졌으며, 교황과 황제에 불복하는 귀족이나 군주들도 많이 나타나게 됐다.
드디어 1529년에는 「루터」의 개혁노선을 지지하는 의원들은 개혁세력을 부당하게 탄압하는 황제에 대해서 항의하는 항의서를 제출하였다. 이후로 개혁주의자들은 「프로테스탄트」(항의자) 라고 불리어 졌다.
그러나 우리가 주목할 것은 오늘의 서양문명 곧 세계문명이 이 항의 자들의 손에 이룩되어왔다는 사실이다. 16세기 이후의 서양은「가톨릭」주의로 강화되었던 「이탈리아」·「스페인」·「프랑스」에서보다「프로테스탄트」주의가 지배했던 독일·「스위스」·「네덜란드」·영국 등에서 급속도의 현대화가 촉진되어온 것을 볼 수 있다.
「루터」가 중세체제에 항의를 제기한지 4백54년이 지난 오늘 세계의 변혁「템포」는 날로 더 빨라지는 것을 볼 수 있다. 50년대의 세계와 60년대의 세계가 격세지감이 있더니, 이제 70년대에 있어서는 그 변화가 더욱 빨라지는 것을 누구나 느낄 것이다. 우리는 이런 시대를 마땅히 「프로테스탄트」시대라고 불러서 좋지 않을까? 어제의 현실을 그대로 묵수하고 또 오늘의 현실을 내일로 끌어들여 가기보다, 오히려 이 현실을 계속 개혁함으로써 내일의 새 현실을 이룩해나가는 계속적인 변혁시대이기에 말이다.
그런데 「프로테스탄트」시대에는 반드시 혼란이 동반하지 않을 수 없으며 현실개조의 진통이 따르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의미에서 혼란과 진통은 「프로테스탄트」시대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20세기 후반기의 다원적 변혁의 시대에 누가 물리적 힘에 의한 고정적 질서를 만들려 든다면 그것은 인간의 창의력을 묶어놓는 행위라고 할 수밖에 없다.
지난 선거 이래로 우리 나라는 제법 세계의 「프로테스탄트」시대에 발맞추어 새로운, 더 고양된 현실창조에로 진통을 겪는 듯 하였다. 그러나 전근대적인 직선적 사고방식은 아직도 도처에 상존 해 있는 것 같다.
10월31일 「루터」의 종교개혁기념일도 이 땅에서는 별로 일반의 주목을 끌지 못한 채 보낸다. 그러나 세계사에 이 특기할만한 날이 「프로테스탄트」시대를 이 땅에도 불러일으키는 하나의 시발점이 되었으면 싶다.
한철하<한국장로교신학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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