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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 신학의 관계크리스천 문학가 협회 심포지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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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문익환 씨는 신학이 본래 문학중의 문학인 성서의 산물이라는 점을 들어 신학과 문학이 혈록관계를 가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한국교회의 반문학적 바탕 때문에 신학과 문학은 유리되어 왔다는 것이다. 즉 신학과 문학이 유리 된데 대한 전적인 책임은 신학 측에 있다는 것이다.
문씨는 문학을 포함하는 예술이 신학의 횡포로부터 벗어났을 때 비로소 아름다움이 빛나기 시작했다고 주장, 문학 쪽으로 보면 신학으로부터의 독립은 다행한 일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문학과 신학이 이대로 평행선을 달려서 좋을까 하는데 대해 문씨는 의아심을 나타냈다. 즉 신학은 아직도 고자세를 견지하고 있고 문학은 아직도 신학을 의아한 눈으로 보고 있는 듯 한데 이것은 바람직한 일이 아니라는 것. 문학을 포함하는 예술이 우선「아름다음」을 찾고「아름다움」을 창조하는 것이라면「아름다움에」대한 신학적인 해명이 있어야한다는 뜻에서 그렇다는 것이다.
김우규 씨는 우리 나라 현대소설에 끼친 기독교의 영향을 풀이하면서 기독교신앙이 작가들의 의식 속에 어떻게 침윤되어 왔는가를 검증하는 것은 하나의 과제이지만 이러한 논의에는 진작부터 한계가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즉 이 땅에 근대화의 추진제로서 도처에서 십자가의 모습을 보지만 우리가 원래 신이 없는 이방의 주민임을 생각할 때 그 십자가들은 우리의 의식구조에서는 외곽으로만 돌아왔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김씨는 신앙이 우리 의식구조내부에「깊이의 차원」을 확보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라고 지적, 따라서 기독교는 이 땅에서 생활과 관념 괴리에서 오는 자가당착을 얼버무린 채 공존하는 기현상을 빚고 있다고 설명했다. 「크리스천」과 작가가 별개의 양식에서 영위되고있는 사례도 그 좋은 예인데 이것은 기독교신앙이 문학적 지성의 적극적인 근거로 다져지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라는 것이다.
김영수씨는 우리 나라 현대시에 끼친 기독교의 영향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우선 한국 시에 대한 기독교의 영향을 서구 시에서와 같이 신학적인 체계로 규명해 간다는 것은 무리라고 단정지었다. 한국교회, 특히 신약의 경우는 문학을 인생에 대한 「멜러드라머」적 태도로 거부해 왔으며 따라서 근대시에 대한 기독교의 영향은 신학적인 전통에서가 아니라 신·구약적 도식으로 그 사상적 굴절을 규정할 수 있을 따름이란 것이다.
김씨는 기독교영향의 일반적 유형을 주요한 시『불놀이』에서 찾았고 기독교사상이 시적 체험을 창조의 신화와 탐구의 신화로 계층화한 시로서 김두승·박두진의 시들을 들었다. 또한 임인수와 김소월의 시에서는 종교적 충동과 미적 충동과의 상호작용과 기독교가 시인의 체험을 분류하는 이상적 방법이 될 수 있다는 예를 찾았다고 김씨는 밝혔다. 마지막으로 김현씨는 한국문학 전반에 끼친「샤머니즘」의 영향을 말하면서 「샤머니즘」은 논리적으로 사고를 전개시켜 사태를 파악하려는 능력을 영감에 의해 가장 성스러운 것과 직접통화를 하는 주술력으로 대치시킨다는 점에서 다른 종교와 다르다고 말했다.
김씨는 따라서 그것은 일종의 시적 직관이라 할 수 있어 시적 형태에서 가장 극명히 드러나는데 이를테면 서정주의 시가 그렇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시와는 달리 산문의 경우「샤머니즘」은 극복의 대상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산문은 현실을 논리적으로 이해하려는 노력의 소산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김씨는 김동리의『무녀도」나 박상륭의 여러 소설들이「샤머니즘」의 미로에 빠지지 않고 그것을 극복하려는 노력의 소산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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