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4)국민 방위군 사건(3)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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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국민 방위군 사건은 헌병 사령부에서 맡아서 조사, 군법 회의에 송치했다. 그러나 워낙 이 사건이 정치적으로 깊이 엉켜 있어 조사에는 많은 난관이 있었다.
또한 사건 자체에 대한 견해 차이도 심각했다. 일부에서는 이것은 일종의 경리 사고이며 법리론을 확대 해석 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데 반하여 대다수는 장정들의 희생이 엄청난 점을 들어 마땅히 극형에 처해야 한다고 맞섰다.
요는 이 사건에 국방 경비법과 비상 조치법 중 어느 것을 적용하느냐가 논쟁의 핵심이었다. 실제로 첫 군재 때는 전자를 적용해 윤익헌 부사령관이 겨우 3년6월의 형을 받았을 뿐이었다.
그러나 그후 여론이 비등하자 재심 군재에서는 비상 조치령을 적용하여 5명의 피고에 사형을 선고했던 것이다. 사족 같지만 여론이 재판에 끼치는 영향이란 미묘하고도 착잡한 문제는 선진국, 특히 미국에서도 아직 논쟁의 과제로 남아 있다. 그럼 이 사건을 조사 송치한 헌병 사 관계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겠다.

<김 준장 구속하지 말라>
▲윤우경씨(당시 헌병사 제2처장=중령·전 치안국장·72) <당시 국민 방위군에 부정이 있다는 소문이 나돌고 또 대구시 중거리에서 누더기 옷 입고 보따리든 자를 만나 물어보면 방위군도망병 이어서 조사해 봐야겠다고 상부에 보고했어요. 그러나 신 국방은 문제 삼을 것 없다면서 승인하지 않았어요. 그러던 중 2월 중순이라고 생각되는데 이 대통령이 부산서 대구로 와 지사 관저에서 일박했어요.
나는 경호 책임자인 김장흥 경무관(고)을 평소 잘 알고 있던 관계로 저녁에 숙소로 찾아가 방위군 이야기를 하고 대통령께 말씀해 달라고 했지요. 그랬더니, 그 이튿날 이 대통령이 오라고 해서 가 뵙고 대충 알고 있는 사실을 말씀드렸더니, 당장 조사하라고 명령합디다. 그 다음날 신 국방도 최경록 헌병 사령관과 나를 불러 대통령의 특명이라면서 조사하라고 지시했어요. 신 장관은 부정이 있어도 사령관 김윤근 준장만은 구속하지 말고 조사하라더군요. 이날로 김윤근 사령관 윤익헌 부사령관 등 6명을 소환, 부사령관 이하 5명은 구속하고 김 준장만은 사령부 내에서 연금 상태로 조사를 했어요. 조사해 보니 막대한 경리 부정이 있고 굶어 죽은 장정도 많다는 것이 드러납디다.
그런데 경리 서류에는 김 사령관이 결재한 것은 하나도 없고 모두가 윤 부사령관 도장으로 결재돼 있어요. 사령관 이하 간부들은 장정 숫자를 늘려 주·부식을 횡령하고 자신들은 무척 호화로운 생활을 했구요. 밀양 교육 연대에서는 환자가 많이 생기자 이들이 밖에 나가면 부정이 드러날까 봐 감금시켜둔 사실까지 드러났어요. 나는 엄중 처벌해야 한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작성, 군법 회의에 송치하고 신 장관에게 이 사건은 몇 사람의 부정 문제가 아니고 피해자가 수많은 장정이기 때문에 비등한 여론도 참작해서 최고형을 내려야 한다고 건의했습니다. 신 장관은 그저 알았다고 만 하더군요.
그런데 첫 군재의 판결은 엉뚱했어요.

<요노마다 기밀 비 상납>
국방 경비 법을 적용해서 김윤근 사령관에 대해서는 기소 각하를 하고 윤 부사령관은 징역3년6월, 그의 피고에게는 1년 반 정도의 가벼운 형을 매겼어요.
나는 큰일 났구나 생각했어요. 아니나 다를까 국민들은 재판 결과가 부당하다고 곳곳에서 아우성이고 국회에서도 야단법석이 났어요. 결국 신 장관이 이 사건과 거창 사건 등으로 5월6일에 물러나고 이기붕씨가 국방장관이 됐어요. 이 장관은 취임하자마자 대구로 와서 나에게 기록을 다시 내려 보낼 테니 재조사하라고 합디다. 이번에는 김윤근 사령관을 즉각 구속했습니다,
재차 심문에서 김 사령관과 간부들은 기밀 비 쓴 것을 순순히 실토하더군요. 첫번 조사 때는 이 항목만은 입을 잘 열지 않았었어요. 이들이 국회의원과 군 고위층에 상납한 기밀 비는 수억원이나 됩디다. 그리고 육본의 모 고급 장교 부정도 드러났구요. 즉 방위군에 지급할 부식비 중 1인당 15원씩을 잘라먹고 내주었어요. 나는 그 책임자를 불러 횡류한 돈을 예산 잔고로 해서 즉시 영달하라고 했어요. 그 자는 밤샛 동안 부리나케 돈을 마련해서 영달을 해 무사했어요.
나는 재조사 결과를 고등 군법 회의에 넘기고는 사표를 냈어요. 조사 과정에서 몇 고급군 장성들이 방위군 간부로부터 기밀 비를 받은 사실을 알고 있는 내가 그들과의 관계에서 더 이상 군복을 입기가 난처하다고 생각한 때문이죠. 방위군 간부들이 사형을 받게된 것은 첫 군재에서 형량이 너무 적었기 때문입니다. 그때 10년 내지 15년만 징역을 받았어도 그들은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지 않았을 겁니다.>

<씨름꾼이 중책 맡아 그만…>
▲송효순씨(당시 101 헌병 대장=중령·예비역 준장·현 재향군인회 사무 총장·47) <방위군 비위 사실에 대한 조사는 실무적으로는 우리 101 헌병대에서 했습니다. 횡령한 수십억원의 행방이나 용도에 관한 이야기는 당시의 관련자들이 대부분 현존하고 있어 밝히기가 곤란하군요. 다만 돈이 흘러간 곳이 아주 광범해서 각 계의 요노에는 거의 다 미쳤다는 것만은 말 할 수 있지요. 결과적으로 그 죄상은 천인 공로 할만 조사 결과 사령관 김윤근 준장이 돈을 횡령해서 개인적으로 축재한 것은 별로 없었어요. 워낙 대주가라 금호형에서 유흥비로 사용한게 방위군 돈이었지요. 자기 말대로 「씨름꾼 장군」이 분수에 맞지 않는 큰 감투를 쓴게 사고의 한 원인이지요. 김이 대구 형무소에 있는 동안 관계도 있고 해서 내가 몇 번 면회를 했어요.
그때마다 그는 이렇게 이야기합디다. 『나는 행정도 정치도 모르는 씨름꾼인데 어떻게 하다가 중책을 맡아 일을 저질렀습니다. 많은 청장년을 희생시킨데 대해 달게 벌을 받겠으며 사형을 받고서야 큰 감투는 아무나 쓸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소.』
김 준장은 어느 모로 보면 순진한 면이 있었어요. 사건 책임은 방위군의 지휘부 구성 때부터 따져 올라가야 하겠다고 느꼈으며 도중에 이 사건이 정치적으로 엉켜 눈사람 식으로 확대된 거지요.>
▲최경록씨(당시 헌병 사령관=준장·4·19 후 육참총장·예비역 중장·현 주영대사·51·주=일시 귀국했을 때 회견) <첫번 조사에서 국회가 방위군 예산으로 급식비 등 27억원을 의결했고 이 돈이 간부에게 영달된 것을 알아냈어요. 이렇게 많은 어떻게 유용 됐나를 조사했더니 27억원 중 3분의1은 국회의 신 정동지회에 정치 자금으로, 관계 요노에 무마비 조로, 나머지 간부들의 유흥비 등으로 소비 했읍디다.
이 사건은 신성모 국방이 국회 안에 자기를 지지하는 정치 세력을 만들려고 70명의 신정동지회(회장 김종회 의원=당시 국방위 부장)에 정치 자금을 덴 데서 일어난 거예요. 내가 김종회·이종린 의원 등 3명의 국회의원을 불러다가 조사를 했어요. 방위군 간부들은 자기들이 착복한 돈으로 대구 교외에 큰 엿 공장을 차려놓고 방위군 장정에게 줄 쌀로 엿을 만들어 말았어요. 이자 놀이도 하구요. 어떤 자는 대구·부산·마산에 첩과 첩의 집을 이중삼중으로 마련하기도 했어요. 상식적으로 상상도 못할 만큼 죄상이 악질적이었습니다.

<처음엔 징계로 얼버무리려>
김윤근 준장은 울면서 나에게 모두 자백합디다. 내가 3주일 동안 조사를 하고 1개월만에 이 대통령에게 보고했는데 더 철저히 조사하라고 하더군요.
신 국방 쪽에서는 이 대통령에게 「모략이다」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느냐」 「최경록이는 야당으로 이 정권을 쓰러뜨리려 한다」는 등 별별 공갈과 중상 모략을 했어요. 그러나 언론 기관과 세론이 절대 나의 편이었고 사건이 워낙 크게 벌어졌기 때문에 그런 모략이 먹혀 들어가지 못한 거지요. 내가 이 대통령에게 관계자를 군법 회의에 붙이자고 건의해 승낙을 받았는데 육본에서 갑자기 일선에 다녀오라는 겁니다. 일선에 갔다와 보니까 글쎄 징계 위원회에 붙여놓고 사건을 유야무야 하려고 하지 않아요. 절대로 그렇게 얼버무릴 일이 아니죠. 그래서 군재에 회부됐지만 형량이 적어 재심하는 파란을 겪었어요. 결국 방위군 관계자만 처벌됐지 사건의 핵심이나 진짜 주동 인물은 못 밝히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전시 하에 사건을 이나마도 처리한 것을 다행으로 여기지요.>
◇주요일지(1951년2월22, 23, 24일)
※2월22일 ▲10만 「유엔」군, 중부전선서 12리 진격 ▲제주도에는 계엄령 해제
※2월23일 ▲아군, 평창 탈환 ▲「유엔」군 정찰대, 한강 도하 ▲정일권 소장, 중장 승진 ▲대만에 공습 경보
※2월24일 ▲미 9단장 「무어」소장 순직 ▲중공 의용군 사령관에 임표 후임으로 팽덕회 취임 ▲7천2백68억의 예산 제출(국방·치안 관계가 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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