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열 속의 가을걷이|오늘 남원참사 장례식·모산 사고 1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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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남원=임시취재반】『하늘이 드높고, 공기가 맑고…가을은 소풍 철이라고 했는데…. 지금은 그 가을하늘이 원망스러워 졌어요』-. 수학여행길에 오르다 지옥 같은 죽음의 길을 맞고 되돌아온 남원 국민학교의 어린이들은 14일 아침 동심으로는 상상할 수조차 없는 참사에 말을 잃었다. 어제까지 만해도 함께 천진한 웃음을 웃었던 급우가 다시는 되돌아 올 수 없는 영정의 모습으로 장례식에 나타났을 때, 교정에 모였던 학부모와 어린이들은 또 한바탕 울음을 터뜨렸다. 공교롭게도 이날은 바로 1년 전 46명의 경서중학수학여행 어린이의 목숨을 앗아간 모산 건널목사고가 일어난 날-. 해마다 연중행사처럼 되어 버린 수학여행참사를 두고 학부모들은 대책 없이 사고를 빚게 한 행정당국에 비난을 퍼부었다.
19명의 급우들을 수학여행 길에서 잃은 남원 국민 교 어린이들은 14일 상오 놀란 가슴을 부여안고 학교에 나와 희생된 급우들의 명복을 빌었다.
62명 중 32명이 수학여행 길에 올랐다가 9명이 즉은 6년 5반 교실에는 상오 8시 30분쯤 20여 명만이 출석, 허전한 교실을 지키며 눈물짓고 있었다. 짝은 물론 앞뒤의 급우를 모두 빼앗긴 김순임 양(13)은 선생님 없는 교단에 나가『우리 죽은 동무들을 위해 하느님에게 기도 드리자!』며 울 먹 어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학생들이 두 손을 모으고 눈을 감자 고요하던 교실 안은 갑자기『흐 흣!』흐느끼는 울음으로 넘치기 시작했으며 끝내 슬픔을 가누지 못해 어깨를 들먹이며 통곡, 울음바다를 이루었다.
소풍열차에 탔다가 가벼운 상처를 입고 이마에 반창고를 붙이고 나온 김영순 양은 고실 뒷벽에 걸려있는 죽은 김태숙 양의「마을풍경」그림을 어루만지며『그림과 공작에 솜씨를 자랑했던 태숙아, 어디 갔니? 이제 누가 우리교실을 아름답게 가꾸나…』라며 흐느끼자 또 한번 급우들이『와!』울음을 터뜨렸다.
37명이 소풍 길에 나섰다가 7명이 죽은 6년 4반은 텅 비어 있었다. 11명의 이 반 어린이들은 햇빛이 비친 교실 밖 창 밑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역시 죽은 급우들을 그리며 슬픔에 잠겨 있었다.
이날 하오 2시 희생 급우의 합동장례식이 열리는 남원 국민학교 교정에는 37학급 2천80명의 재학생 중 3백여 명만이 등교시간에 나왔다.
동료교사들은 이날 상오 9시까지 40명 중 20여 명만이 출근했으나 모두들 넋을 잃은 탓인지 수업을 하지 않고 있었다.
교장·교감·6년 담임 선생들도 사고의 뒷수습 때문인지 한 명도 출근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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