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데이터와 김정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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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중국을 주제로 한 소셜미디어 콘퍼런스가 열렸다. 게리 로크 주중 미국대사도 참석해 “중국이 인터넷 통제를 하지 말아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래야 중국의 디지털산업이 창의적 혁신을 해나갈 수 있다는 논리였다.

그보다 더 관심을 받은 두 사람이 있었다. 한 명은 중국판 트위터인 시나(新浪)닷컴 웨이보의 최고경영자(CEO) 차오궈웨이(曹國偉)였다. 또 한 사람, 중국인들이 많이 쓰는 인스턴트 메시징 프로그램 ‘QQ’를 운영하는 텅쉰(騰訊)의 류츠쩌(劉熾仄)였다. 둘은 모두 미국 유학 경험이 있어 영어가 유창했고, 양복 대신 청바지를 입고 나왔다. 차오의 경우 원래 패널 대화를 할 예정이었는데 단독 강연으로 격이 높아졌다. 강연 뒤 명함을 교환하려다 20분은 족히 기다렸다. 그와 안면을 트려는 사람이 워낙 많아서였다. 젊은이들은 셀카로 사진을 찍느라 바빴다. 실리콘밸리에서는 정치인이 아니라 이런 ‘닷컴’ 성공자들이 더 선망의 대상이었다.

참가자들의 관심을 모은 또 한 명의 연사가 있었다. ‘foursquare.com’이란 회사의 톈후이 마이클 리(Tianhui Michael Li) 박사였다. 이 회사는 소셜미디어 사용자들이 인터넷에 남기는 빅데이터를 분석한다. 컴퓨터공학·통계학·수학을 활용해 이 회사 앱을 사용하는 2000만 명의 사용자가 남긴 25억 회의 방문지 데이터베이스를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지 뉴욕 지역을 대상으로 시연했다. 매 시간마다 사람들의 동선이 화면에 ‘점’으로 표시되고, 그 점들은 마치 살아있는 유기체처럼 점심시간이 되면 식당가로 몰려 갔고, 밤에는 유흥가에 군집했다. 밤이 깊으면 점들은 도시를 떠나 외곽으로 흩어져 각자 귀가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심지어 주말에 사람들이 언제, 어떤 지역의 어느 중국 식당에 자주 가는지도 표시됐다. 무더운 날에 많이 찾는 아이스크림숍도 알 수 있었다. 소위 인간 군상이 만들어내는 ‘행동 지도’였다. 많은 기업이 이런 빅데이터에 큰 관심을 쏟는 건 ‘고객의 속내’를 읽기 위해서다. 빅데이터를 상업적 용도 말고 사회과학이나 다른 영역에서 응용하는 것도 가능할 것 같다.

북한의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애플 컴퓨터를 사용하는 사진이 최근 언론에 공개됐다. 그가 거의 실시간으로 해외 뉴스를 본다는 말도 나온다. 스위스에서 교육받은 그는 스마트폰도 사용한다. 북한에서 내부 인트라넷이 아니라 외부 세계로 연결되는 인터넷을 사용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중 애플 컴퓨터를 쓰는 사람은 극소수일 거다. 북한의 컴퓨터에는 각각 고유한 하드웨어 식별번호가 있다. 이를 토대로 북한에서 나오는 ‘디지털 핑거프린트(지문)’를 역추적하다 보면 김정은의 컴퓨터 관련 데이터도 알아낼 수 있을지 모른다.

고립된 북한에서 인터넷은 김정은이 바깥세상을 ‘훔쳐 보는’ 통로일지도 모른다. 김정은의 ‘디지털 핑거프린트’를 관찰하면 그가 어느 시간대에 로그인을 하고, 어느 웹사이트를 많이 방문하는지 알 수 있지 않을까. 그러다 보면 생활패턴과 관심사, 취향에 대한 프로파일을 얻을 수 있을지 모른다. 리 박사에게 “인터넷에 접속하는 독재자를 모니터링하는 데 이런 기술을 응용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그는 “그런 용도로 생각해 보지 않았다”고 답했다. 디지털 세상은 이렇게 빠르게 바뀌고 있다.

써니 리 스탠퍼드대 아태연구소 팬텍펠로
boston.sunny@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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