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결수들 인권유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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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서울지검과 서울형사지법당국은 미결수나 검찰에 송치되는 피의자들을 줄줄이 오랏줄에 묶은 채 도심의 거리를 지나가게 함으로써 행형 당국이 스스로 인권을 짓밟는 일을 예사로 저지르고 있다.
지난9월1일 서울지검 영등포지청과 서울형사지법 영등포지원의 임시청사가 구 서울가정법원자리에 자리잡은 이래 서울지검 본청의 구치 감에서 배재고교∼서소문거리를 지나 영등포지청·지원에 이르는 3백m거리의 대로에는 하루에도 수십 명씩의 피의자들이 오랏줄에 묶인 채 뭇시선을 받으며 끌려가고 있다.
푸른색 옷차림을 한 미결수의 행렬이, 또는 갓 붙잡혀 검찰에 송치되는 내복차림의 아낙네, 심지어 향토예비군차림의 시민이 두 손을 고랑에 채이고 다시 허리를 칭칭 오랏줄에 감긴 채 끌려가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이다. 간혹 아는 얼굴이라도 만났는지, 묶여가던 일행중 한사람은 고개를 깊숙이 떨구며 발걸음을 비틀거렸다.
등·하학 길의 고교생들은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나타난 이 대열을 놀란 눈초리로 발걸음을 멈추고 지켜보기도 한다.
날렵한「세단」들이 질주하는 도심의 보도에서 인솔자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태연스레 뒷짐을 지고 대열을 이끌고 간다.
더욱 이들은 이런 곤욕을 치르면서 불려나가 하루종일 기다리다가 검사 또는 재판부의 사정이라는 이유로 조사한번 받아보지 못하고 돌아오기 일수.
이를 본 한 재야법조인은 인권보호 면에 있어서는 용수를 씌우던 30여년 전보다 오히려 한발 뒷걸음질한 느낌이라고 안타까와했다.
인권이나 명예문제를 떠나서라도 그들의 정신적인 안정을 해치는 결과를 가져 온다는게 법조인들의 의견-.
행형 당국의 이 같은 무관심은 비록 피의자로 구속됐을 망정『형이 확정되기까지 무죄의 추정을 받는다』는 형사소송법의 대 원칙에 조차 어긋나는 처사로 지적되고 있다.
재야법조인들은 당국이 영등포·성동 지청이나 지원을 열었을 때부터 미리 이 같은 인권유린을 막을 수 있도록 배려했어야 할 일이었다고 비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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