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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콩고 탄탈룸의 저주 … '피 묻은 휴대전화' 언제까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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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DR콩고 동부 광산에서 삽자루를 들고 채굴 작업 중인 소년들. DR콩고는 첨단산업용 광물자원의 보고(寶庫)다. 여기서 나오는 이익은 분쟁 무기 구매에 쓰일 뿐 주민들에겐 거의 돌아가지 않는다. [사진 이너프 프로젝트]

지난달 30일(현지시간) 영국 BBC는 콩고 민주공화국(DR콩고) 정부군이 M23 반군을 동부 근거지에서 소탕했다고 전했다. 지난해 4월 부나가나를 중심으로 무장세력이 반란을 일으켜 80여 만 명의 난민이 발생한 지 1년6개월 만이다. 멀게는 1994년 접경국 르완다에서 발생한 종족 분쟁 여파로 DR콩고를 비롯한 중앙아프리카 일대가 쑥대밭이 됐었다. 대다수 한국인은 이런 뉴스에 무감각하다.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서 흔히 발생하는 종족 갈등, 군사 반란으로 여긴다. 하지만 DR콩고의 비극은 의외로 우리 가까이 그늘을 드리운다. 현대인이 일상적으로 쓰는 휴대전화의 필수 소재인 탄탈룸의 주산지가 DR콩고 일대이기 때문이다.

탄탈룸 등 알짜 광산에서 돈맛을 들이고, 이것을 차지하려는 다툼이 DR콩고를 갈기갈기 찢어놓았다. 조금 과장하면 우리가 휴대전화를 새것으로 교체할 때마다 DR콩고의 총성은 격화된다고 말할 수 있다.

 주석(Tin), 탄탈룸(Tantalum), 텅스텐(Tungsten), 금(Gold). 영어 앞글자를 따서 3TG라고 불리는 이들은 대표적인 ‘분쟁 광물(conflict mineral)’이다. 이들 광물자원이 종족 간, 국가 간 분쟁을 초래한다는 의미다.

 아프리카 자원은 예전부터 분쟁 진원지였다. 시에라리온과 라이베리아 등 서아프리카를 피로 적신 ‘블러드 다이아몬드’가 대표적이다. 다이아몬드를 확보하기 위해 내전이 벌어지고 이 군자금을 충당하기 위해 다이아몬드를 내다파는 유혈 다툼 속에 수십만 명이 희생됐다.

매장량 90%가 콩고에 … 반군 자금줄로

 3TG는 현대에 들어 분쟁 광물로 부각됐다. 주석은 전자·자동차 업계에서 파이프 및 회로 연결 납땜, 합금석 등에 두루 쓰인다. 탄탈룸은 각종 반도체와 중앙처리장치(CPU), 휴대전화 안테나, 원자력발전기, 현미경, 디지털카메라, TV, 전투기, 자동차에서 빼놓을 수 없다. 텅스텐은 금속선, 전기접점에 주로 사용된다. 금은 보석이기도 하지만 전자·항공우주 산업에 두루 사용되는 소재다.

 이 가운데 문제가 심각한 게 탄탈룸이다. 탄탈룸은 보통 콜탄이라는 원석에서 뽑아낸다. 전 세계 콜탄 매장량의 90% 이상이 DR콩고 일대에 분포돼 있다. 남키부 및 북키부주가 그중에서도 압도적인 매장량을 자랑한다. 콩고산 생산량은 전 세계의 20~50%에 이른다.

 이렇다 보니 DR콩고 분쟁에서 콜탄 광산은 주요 자금줄이 돼왔다. 콩고 정부가 채굴하는 콜탄보다 투치족 반군이 채굴해 파는 게 많을 정도다. 이들은 후투족 포로 등을 강제 동원해 콜탄을 캐낸다. 아이들도 제 키보다 큰 삽을 들고 광산으로 내몰린다. 채굴로 벌어들인 돈은 다시 군비확충에 쓰인다.

 세계 인권단체들은 오래전부터 이에 대해 강력히 문제제기를 해왔다. 분쟁 광물의 악순환을 막기 위해 각국 정부가 나서서 규제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블러드 다이아몬드’의 세계 시장 유통을 제한한 ‘킴벌리 프로세스’ 같은 게 3TG에도 적용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에 따라 2010년 미 의회는 도드-프랭크 금융규제개혁법안에 분쟁 광물 조항을 포함시켰다. 법안 1502조는 DR콩고를 중심으로 한 중앙아프리카 일대에서 무장반군이 분쟁 광물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는 걸 막기 위한 조치로 요약된다.

이 조치에 따르면 향후 기업들이 DR콩고를 비롯해 중앙아프리카공화국, 남수단, 우간다, 르완다, 부룬디, 탄자니아, 잠비아, 앙골라, 콩고 등 10개 분쟁 국가에서 생산하는 3TG를 사용할 때 엄격한 확인 절차를 거쳐야 한다. 부품에 들어간 광물의 원산지를 공개하고, 분쟁지역 광물 사용 여부를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보고해야 한다. 미 증시에 상장된 모든 제조업체가 대상으로 약 6000곳이 해당될 것으로 추산된다. LG디스플레이·포스코 등 국내 8개사도 직접 규제 대상이다. 미국 기업과 거래하는 국내 협력사들도 2014년 5월까지 분쟁 광물 사용 여부를 보고해야 한다.

미 의회, 불법채굴 광물 못 쓰게 법 제정

 이에 따라 애플·필립스·휼렛패커드·모토로라 등 주요 전자전기 제조업체들은 3TG의 공급망 추적에 나섰다. DR콩고 광산에선 새로운 풍경이 생겼다. 광부들이 캐온 원석을 마대자루에 담으면 감독관이 하얀 플라스틱 딱지를 붙여준다. ‘분쟁 없는(conflict free)’ 광물이라는 인증이다.

 하지만 실효성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일부는 딱지를 불법으로 거래한다. 낮에만 감독하는 척하고 밤이 되면 반군과 결탁한 감시반들이 뒤로 빼돌리는 일도 허다하다. 분쟁 억제를 목표로 한다지만, 자금줄을 잃어버린 반군이 다른 자원으로 눈을 돌릴 가능성이 있다. 지난 5월 영국 파이낸셜타임스가 현지 취재한 결과 무장단체들이 수입원을 목재, 석탄, 대마초, 상아, 심지어 인신매매 등으로 돌리는 추세가 확인됐다.

반군과 결탁한 감시반들 뒷돈 받고 유통

 게다가 이런 조치가 DR콩고 주민들의 삶을 더 피폐하게 만들 수 있다는 반론도 있다. 기업이 원산지 실사에 드는 비용 등을 고려해 ‘분쟁 없는’ 자원이 아니라 ‘콩고 아닌’ 자원을 선호하는 부작용이다. 실제 북키부 지방의 2011년 광물 생산은 2008년의 80% 수준으로 떨어졌다. 중국 업자들만이 유일한 수출통로가 되면서 가격 후려치기가 벌어지기도 한다.

 뉴욕타임스(NYT)는 M23 반군 격퇴 소식을 전하면서 “그렇다고 해서 이 지역의 유혈분쟁이 종식될 것이라고 내다볼 순 없다”고 했다. M23을 대체하는 또 다른 무장그룹들이 정부군이 미치지 못하는 빈 공간을 파고들 것이다. 실제 정부가 차지하든 반군이 차지하든 풍부한 광산에서 나오는 막대한 이익은 광부들을 비롯한 현지 주민들의 삶을 나아지게 하는 데 기여하지 못하고 있다.

 “학교도 없고 의료서비스도 기대하지 못하는 생활이 수개월간 지속되는데도, 주민들이 과연 정부에 등을 돌리지 않겠는가?”라고 유엔 관계자는 NYT에 말했다. DR콩고의 비극을 끝내는 길은 아주 멀고, 여전히 세계인의 관심을 필요로 한다.

강혜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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