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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핑 2억원어치 해도 무료주차권 꼭 챙기는 게 중국 소비자"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김난도 서울대 교수(오른쪽)와 천신레이 청쿵경영대학원(CKGSB) 교수가 지난달 27일 베이징 왕푸징의 CKGSB 회의실에서 중국 소비자의 특성과 기업의 전략에 대해 토론하고 있다. [베이징=최형규 특파원]

“중국인은 전통을 존중하면서도 최신 제품을 선호한다.”(김난도 서울대 소비자 아동학부 교수)

 “중국인은 실용을 추구하면서도 명품을 사는 모순된 행동을 한다.”(천신레이 중국 청쿵경영대학원 마케팅학과 교수)

 세계 최대 시장으로 부상하고 있는 중국의 소비자 특성을 놓고 한국과 중국의 최고 전문가들이 내놓은 분석이다. 김 교수는 중국 소비자들이 중국의 전통과 최신 글로벌 감각을 동시에 갖고 있어 지역과 계층에 따라 다양한 소비 패턴을 보이는 만큼 소비자 특성에 맞는 섹션화된 시장 접근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반면에 천 교수는 중국 시장이 기존 경제 이론으로는 쉽게 설명되지 않는 특성을 지닌다며 기업들이 장기 전략을 갖고 접근할 것을 주문했다.

 김 교수는 한국 최고의 트렌드 전문가로 밀리언셀러 『아프니까 청춘이다』의 저자다. 지난 9월 출판된 『트렌드 차이나』는 중국 소비시장의 현재와 미래를 적확하게 분석한 것으로 유명하다. 미국 미네소타대학에서 마케팅 박사학위를 받은 천신레이(陳歆磊) 중국 청쿵경영대학원(長江商學院·CKGSB) 마케팅학과 교수는 기업들의 브랜드 파워 전략과 마케팅 분야의 중국 최고 권위자로 통한다. CKGSB는 아시아 최고 부자인 홍콩 청쿵그룹의 리카싱(李嘉誠) 회장이 2002년 설립한 중국 최초의 비영리 사립 경영대학원으로 중국 최고 MBA 과정으로 평가받고 있다. 두 전문가의 대담은 ‘변화하는 중국 소비자의 특성 및 소비 트렌드 전망’이라는 주제를 놓고 지난달 27일 베이징(北京) 중심부 왕푸징(王府井)에 있는 CKGSB 캠퍼스에서 3시간가량 진행됐다. 중국 경제지 등 10여 개 현지 언론사가 취재했으며 한국 언론으로는 중앙일보가 단독 취재했다.

 -중국은 세계 최대 생산 공장에서 최대 소비 시장으로 바뀌고 있다. 중국의 소비시장을 어떻게 보나.

 “중국은 지난 30년간 낮은 원가의 제품을 만들어 급속하게 부를 축적했다. 그렇게 축적된 부를 사용하는 방법은 두 가지인데 하나는 투자이고 다른 하나는 소비다. 중국인들의 구매력이 커지면서 국내외 기업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그러나 중국의 시장은 소비 습관이나 문화 등에서 아직 성숙하지 못하고 (시장 논리에 따른 소비보다는 정부 주도나 유행에 따른 소비가 많아) 비(非)합리적인 면이 있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정부의 (시장) 간섭도 많다. 그러나 향후 5~10년을 보면 소비자든 기업이든 합리적으로 변할 것이다.”(천 교수)

 “어느 나라든 발전을 하려면 소비자·기업·정부라는 세 주체의 노력이 중요하다. 1단계는 자본이 있는 정부 주도의 발전이 이뤄지고, 2단계는 자국 내 기업들이 투자하고 시장을 만들어 발전을 이끈다. 3단계는 소비자가 구매력을 갖고 물건을 사면서 경제가 커진다. 중국은 현재 3단계에 와 있다고 본다. 중국의 도시화가 소비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앞으로 중국 도시화 비율이 높아질 것인데 이 경우 서비스 산업의 발전이 기대된다. 금융과 의료 관광 등 다양한 서비스 산업이 제조업 못지않게 발전하며 중국 경제를 도약시킬 것이다. 사회 제도도 정착될 것이다. 예컨대 소비자 금융과 복지 제도, 소비 지원 제도가 확충되면서 각자의 재산을 소비에 투자할 수 있는 여력이 생겨날 것이다.”(김 교수)

 -중국 소비자는 누구이고 특징은 무엇인가.

 “그들은 매우 실용적이고 가격과 체면에 민감하다. 집단이나 가족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파악하는 집단지향적 사고를 하고 동시에 개인주의적 주관을 중시하기도 한다. 또 중국적인 것, 예컨대 빨간색, ‘8’이나 ‘6’과 같은 숫자를 좋아하는 중국 전통을 존중하면서 최신의 글로벌 제품을 선호하는 성향도 보인다. 실용과 체면, 개인, 그리고 국제성 등 서로 모순적인 특징이 시장과 조화를 이루며 소비로 나타나고 있다(숫자 8의 발음은 돈을 번다는 ‘파차이’의 파와 같고 ‘6’은 순조롭다는 한자어 ‘류’와 발음이 같아 두 숫자를 선호한다).”(김 교수)

 “개혁·개방 이후 정부가 정책을 마련하고 민간 기업이 자발적으로 발전을 이끌었다. 그런데 요즘엔 ‘궈진민투이(國進民退, 국영 기업이 발전하고 민간 기업은 퇴보)’ 현상이 나타나 정부가 경제와 사회를 이끄는 주도적 역할을 하고 있다. 이는 정부가 소비시장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는 얘기다. 정부의 정책이 동부나 서부 어느 지역에 집중돼 있는지가 소비시장에서 매우 중요하다. 중국 소비자는 시장 상황에 맞춰 소비하는 경향이 강하다. 전문 매장에서 2000위안(약 35만원) 하는 제품이 온라인에서 300위안 한다면 저렴한 가격을 선택한다. 중국 소비자가 유명 브랜드를 좋아하는 것은 과시욕과 체면 때문이기도 하지만 중국 브랜드에는 신뢰가 없기 때문에 실용을 추구하면서도 고가의 외국 브랜드를 사는 모순된 행동을 한다.”(천 교수)

 -중국 소비자에겐 어떤 유전자가 있는가.

 “중국의 소비자는 좋은 물건을 구매하고 행복을 추구하려는 욕망이 강하다. 그러나 소비자를 보호하는 사회제도 등이 완비되지 않아 둘 사이에 간격이 크다. 따라서 기업이 (소비자 권익 보호 등으로) 그 차이를 메워줘야 한다. 그러나 기업 활동 역시 정부의 규제 내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관련 법과 제도의 정비가 필요하다. 중국은 세계에서 인구가 가장 많고 다양한 지역과 인종·문화로 소비시장이 매우 복잡하다. 또 유가·도가·불가·민속신앙 등 자유로운 사상을 가진 소비자와 유연한 시장의 가치관이 혼재한다. 여기에 중국 정부의 한 자녀 정책으로 가정에서 자녀를 위한 소비, 즉 가족에 근거한 독특한 소비 개념을 만들어냈다. 중국 소비자에게는 전통적 사회주의적 사고에 급격한 발전에 따른 현실적 사고가 혼재하고 있다.”(김 교수)

 “광둥과 산둥 지역은 경제 규모가 비슷하지만 가게에서 팔리는 구매 리스트 상위 10위를 보면 전혀 일치하지 않는다. 소득 수준이 비슷하더라도 지역과 문화에 따라 소비 취향이 다르다는 얘기다. 정부 정책도 소비의 방향을 바꿀 수 있다. 예컨대 교육비가 비싼데 이는 정부의 한 자녀 정책으로 한 명의 자녀를 위해 친가와 외가가 모두 나서 교육에 투자하기 때문이다. 중국 젊은이들의 구매력이 자신의 경제 능력을 초과하는 것도 양측 부모들의 경제력이 뒷받침되기 때문이다. 이들의 행동은 겉으로는 내향적이지만 실제는 외향적이다. 언행은 딱딱하지만 내심은 열정이 가득하다. 젊은이들의 메신저를 보면 매우 다양하다. 서구 젊은이들의 메신저 내용은 중국만큼 다양하지 않다. 모두가 웨이신(微信·중국판 메신저)을 통해 자신의 마음을 표출하는데 심지어는 식사할 때도 건너편에 앉아 있는 친구들과 웨이신으로 소통할 정도다. 이 같은 방식이 자신을 표현하고 소통하는 데 적합하다고 보는 것인데 이 방식이 마케팅에도 적용된다.”(천 교수)

 -복잡하고 미묘한 중국 소비자를 잡기 위한 기업의 전략은.

 “장기 브랜드 강화 전략을 써야 한다. 그런데 중국 진출 기업들은 눈앞의 이익에만 급급해 한다. 기업가 정신도 없고 고객 충성도도 고려하지 않는다. 중국 소비자는 세상에서 가장 불쌍하다. 외국에서 BMW 차량을 사면 3년 서비스가 보장된다. 그러나 중국에서 사면 해외에서 살 때보다 가격이 두 배인데도 서비스 기간은 1년으로 줄어든다. 중국 소비자들은 지출만큼 대우를 못 받는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내가 1999년 미국으로 유학 가기 전 베이징의 유명 식당들이 14년 후 귀국해 보니 한두 군데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멀리 보지 않고 눈앞의 돈만 벌려고 하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다.”(천 교수)

 “소비자가 지불한 만큼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 소비자 주권이다. 이를 위해 두 가지가 필요하다. 하나는 소비자 운동이다. 단합해서 문제를 제기하고 기업 변화를 촉구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정부 감독과 규제다. 미국도 독점이나 정보 비대칭, 시장질서 교란 행위에 대해 단호하게 제재한다. 중국 기업은 신뢰와 디테일에 신경써야 한다. 국내 소비자에게 신뢰를 얻어야 해외 소비자에게 사랑받을 수 있다. 중국을 여행하면서 가장 많이 듣는 소리가 ‘크다’이다. 뭐든지 커야 하고 건물도 제일 크다고 자랑한다. 그러나 지금은 디테일의 시대다. 소비자의 신뢰를 얻으려면 일본 제품의 디테일을 배울 필요가 있다. 작은 부분에서 소비자를 배려한 게 보인다. 외국 기업은 중국 시장과 소비자를 더 존중할 필요가 있다. 외국에서 성공했다고 중국에서 성공했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중국 소비자가 글로벌한 감각을 갖추고 있지만 동시에 중국적 가치관도 중시한다. 100만 위안(약 1억7400만원)어치를 쇼핑해도 무료 주차권은 꼭 받아가는 게 중국 소비자다.”(김 교수)

 -앞으로 주목해야 할 중국 소비 트렌드는.

 “중국 소비자들은 갈수록 감성보다는 이성적으로 변할 것이다. 소비에 대한 가치관이 높아져 갈수록 요구가 늘어날 것이라는 얘기다. 이 과정에서 정부는 정보의 비대칭성과 소비자의 비이성적 성향을 해결하기 위해 정책적 조정을 할 것이다.”(천 교수)

 “건강과 환경, 유기농, 녹색 제품이 각광을 받을 것이다. 소득이 높아지면 이 네 가지 분야에 대한 소비가 늘어나기 때문이다.”(김 교수)

 두 전문가의 대화가 끝나고 기자들의 질문이 이어졌다.

 -최근 중국 언론이 삼성 휴대전화의 문제점을 집중 보도했다. 외국 기업 때리기이고 이는 (중국 기업과의) 공정경쟁에 역행한다는 비판도 있다.

 “중국에서 외국 기업에는 불공평한 게 공평하고 공평한 게 불공평한 것이다. 몇 년 전 월마트 충칭 지점에서 일반 돼지를 친환경 돼지로 속여 팔았다가 영업정지를 당했다. 3개월 후 영업정지가 풀렸는데 이상하게 돼지가 더 많이 팔려나갔다. 중국 소비자들은 외국 기업에 좋은 인상을 갖고 있다. (정부 단속에도) 월마트에 대한 신뢰가 있고 영업정지까지 받았기 때문에 더 이상 가짜 친환경 돼지를 팔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강해지는 것이다.”(천 교수)

 -중국 기업이 한국 기업에 배울 게 있다면.

 “한국 기업은 과거 해외에서 적자를 보면서도 가격 대비 가치를 강조하는 전략을 구사했다. 그리고 핵심 기술을 확보했다. 이후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해 품질 좋은 고가 제품이 됐다. 중국 가전업체인 하이얼(海爾)이 이 같은 방식으로 발전하고 있다.”(천 교수)

베이징=최형규 특파원

김난도-천신레이 대담 … 중국 소비자 그들은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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