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덕의 쌉쌀함 쌀밥의 달달함 참을 수 없는 유혹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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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7호 22면

1 더덕밥. 여섯 가지의 요리와 반찬이 함께 나온다. 아주 푸짐하다. 밥을 포함해서 불고기까지 무료로 추가 리필이 된다.

우리나라 남자들이라면 누구나 신이 나서 계속 해대는 얘기가 있다. 그게 뭘까? 눈치 빠른 분들은 이미 정답을 찾았을 것이다. 바로 군대 얘기다. 한참 감수성이 예민한 파릇파릇한 청년들이 생전 처음으로 강렬한 경험들을 했으니 그 기억이 머릿속에 각인돼 평생 떠나지 않고 틈만 나면 튀어나오곤 하는 것이다.

주영욱의 이야기가 있는 맛집 <26> 서울 종로 산채향의 더덕밥

나도 그렇게 평생 가는 군대 시절의 기억이 몇 가지 있다. 그중 하나가 더덕에 얽힌 것이다. 이등병 시절, 늦가을에 깊은 산속에서 훈련을 받을 때였다. 황소도 잡아먹을 만큼 식욕이 왕성하던 때라 항상 배가 고팠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고참병 한 사람은 땅에서 뭔가 뿌리 같은 것을 캐어내서 슬쩍 먹곤 하는 것이었다. 배가 고파서 부럽기도 하고 뭔지 궁금하기도 하고 해서 뭐냐고 용기를 내서 물어봤더니 친절하게도 선뜻 한 조각을 나눠 주었다. 그렇게 해서 ‘도시 촌놈’이 처음으로 생 더덕이라는 것을 먹어보게 되었다. 아무 양념도 없고 그냥 생으로 먹는 것인데도 정말 맛있었다. 향긋하기도 하고 씹을수록 단맛이 배어 나오는 것이 배고픔을 달래기에는 그만이었다. 그렇게 해서 더덕은 나에게 잊을 수 없는 음식이 되었고 군대 얘기의 단골 테마가 되었다.

4 가을 향기를 잔뜩 머금은 가을 더덕. 향이 더 강하고 단맛이 많으면서 아삭하게 씹히는 것이 일품이다. 사진 주영욱

더덕은 독특한 맛과 향으로 즐기기도 하지만 몸에도 좋은 식품이다. 인삼에 많이 들어 있는 사포닌(Saponin) 성분이 풍부하게 들어 있어서 사삼(沙蔘)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맛도 좋고 몸에도 좋으니 금상첨화가 따로 없다.

더덕의 제 맛을 즐기기에 가장 좋은 계절은 가을이다. ‘온갖 곡식과 모든 과일(五穀百果)’이 무르익는 가을이 되면 땅속의 더덕도 함께 무르익는다. 여름 동안 넉넉하게 내린 비와 뜨거운 햇볕을 받아서 풍부해진 땅의 기운을 머금으면 향이 강해지면서 단맛이 많아진다. 봄에는 질겨서 씹기가 어려운데 가을에는 아삭하게 씹히면서 단물이 가득 해져서 생 더덕으로 먹어도 맛이 아주 좋다.

서울에서 더덕 요리를 제대로 즐기기에 좋은 곳은 종로구 신문로에 있는 ‘산채향’이라는 곳이다. 더덕 요리 전문점을 표방하고 있는 곳이어서 더덕을 이용한 요리가 무려 20가지가 넘는다. 더덕밥, 더덕 오리 주물럭, 더덕 구이, 더덕 부침, 더덕 보쌈, 흑임자 더덕 구이 등등.

2, 3 산채향 외부 모습.

이곳은 더덕 요리에 푹 빠진 김성제(56) 사장이 2010년에 문을 열었다. 김 사장은 원래 건축업을 하던 분이었다. 식당 관련 건축과 인테리어를 많이 하면서 자연스럽게 식당에 관심을 갖고 있었는데 우연한 기회에 다양한 더덕 요리를 맛보고 더덕의 매력에 흠뻑 빠져 전문 식당을 개업하기에 이르렀다. 전문 조리사를 조리장으로 영입해 함께 더덕을 이용한 요리 메뉴들을 하나씩 개발해 왔다.

‘산채향’의 더덕 요리 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인 것은 바로 더덕밥이다. 더덕 껍질을 말려서 우려낸 물로 쌀을 안치고 더덕을 잘라 넣어 함께 끓여 밥을 지어낸 것이다. 멥쌀과 찹쌀, 그리고 검은 쌀을 함께 넣어 밥을 짓는데 농약을 전혀 사용하지 않는 우렁이 농법으로 재배한 친환경 유기농 쌀을 사용한다. 김 사장의 고향인 충남 보령에서 형님 두 분이 직접 농사지어서 올려 보내는 쌀이다.

더덕밥은 쌀밥의 단맛과 더덕의 약간 쓴 듯한 맛이 잘 어우러지면서 아주 독특한 풍미를 느끼게 해 준다. 더덕의 향이 은은하게 입 안에 오래 남으면서 밥맛의 여운을 더 길게 만들어 주는 것이 참 일품이다. 양념장을 넣어 비벼 먹어도 좋지만 그냥 먹어도 아주 매력적이다. 심심한 듯하면서도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것이 마치 제대로 만든 평양냉면 육수 같은 느낌이다. 이렇게 맛있게 지어진 고슬고슬한 밥이 자꾸 숟가락을 부르는 바람에 평소에는 공기 한 그릇을 다 비우지 않는 사람들도 “밥 좀 더 주세요”를 외치기 바쁘다. 우리나라 음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밥이고, 가장 중요한 반찬이 역시 밥이라는 것을 실감하게 해주는 맛있는 밥이다.

농익은 가을 더덕 향기가 녹아 있는 밥맛이 궁금하신 분들, 아니면 군대에서 더덕을 먹었던 얘기를 신나게 하고 싶으신 분들은 이곳에 가보면 좋을 것 같다. 단 그 지겨운 군대 얘기를 참을성 있게 들어줄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는 분하고 가는 것이 서로의 정신 건강, 아니 밥맛 건강에 좋겠다.

**산채향: 서울시 종로구 신문로 2가 1-209 전화: 02-733-1199 20가지가 넘는 더덕요리들이 있다. 더덕밥 1만3000원. 일요일은 쉰다.



음식ㆍ사진ㆍ여행을 좋아하는 문화 유목민. 마음이 담긴 음식이 맛있다고 생각한다. 마케팅 전문가이자 여행전문가. 경영학 박사. 베스트레블 대표. yeongjyw@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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