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카롭게 위트있게 … 대한민국 문화 토양에 새 바람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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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7호 26면

저자: 호영송 출판사: 문학세계사 가격: 1만4000원

요즘 ‘지식인’이라고 하면 흔히 ‘허세’나 ‘허위’ 등 부정적 어휘가 세트처럼 따라붙곤 하지만, 적어도 이 사람만은 예외일 듯하다. 평론가이자 시인·소설가·문화 기획자·언론인·교수·장관 등 보통 사람에겐 한 가지도 쉽지 않은 다양한 직함을 거느린 ‘한국의 대표 지성’ 이어령(79) 선생 얘기다. 사실 모든 것이 전문화·세분화된 요즘 기준으로 그를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그에게 어떤 배경이 있었기에 문화적 토양이 척박한 대한민국에서 ‘르네상스맨’이 됐고, 어떤 인생을 살았기에 노년에 이르러 지적 자존감과 모순되는 신앙고백을 하기에 이르렀을까.

『창조의 아이콘, 이어령 평전』

문학과 문화에 대한 뜨거운 애정으로 점철된 그의 삶을 기록한 최초의 평전이 나왔다. 단순한 문화현장의 관찰자가 아니라 문화 흐름의 창조자였던 그의 삶에 대한 기록은 개인사를 넘어 60년 한국 현대 문화사 자체이기도 하다. 저자는 그의 대표 저술 세 권을 통해 그에 대한 이해를 시도한다. 대한민국 최초의 베스트셀러 『흙속에 저 바람 속에』와 일본인들도 인정하는 일본문화론 『축소지향의 일본인』, 그리고 노년의 신앙고백 『지성에서 영성으로』다.

그가 20대에 중앙일간지 논설위원으로 발탁될 정도의 지성을 갖출 수 있었던 배경으로 저자는 모국어를 잃은 설움 대신 서양 고전의 바다를 마음껏 유영할 수 있었던 ‘일어 세대’라는 환경과 대한민국의 지성과 양심이 황폐했던 시절을 겪으며 키운 비판정신을 꼽는다. 4·19에 4년 앞선 1956년 기성세대에 대한 분노를 폭발시킨 신문 기고 ‘우상의 파괴’로 시작된 그의 비평활동은 한국에 현대문학을 가능케 했고, 그로 인해 문예평론도 문학이 됐다.

최초의 저서 『흙속에 저 바람 속에』(1963)는 당시 한국의 문화적 특성과 생활관습을 날카롭게 포착한 인류사회학적 저술로 ‘베스트셀러’의 개념을 알렸고, 시민의식의 전환을 이끌며 지적 혁명의 선두에 섰다. 1972년부터 13년간 문예지 ‘문학사상’ 주간으로서 출판문화 활성화에도 기여했다.

『축소지향의 일본인』(1982)에 이르러 그는 한국 문학의 울타리를 뛰어넘었다. 가장 뛰어난 일본론으로 알려진 루스 베네딕트의 『국화와 칼』을 대체할 만큼 센세이션을 일으킨 그의 인기는 학자를 넘어선 문학가의 언어감각과 감수성, 날카로운 논리와 위트, 풍부한 메타포 덕에 가능했다. 단세포적인 반일감정을 억제하고 냉정하고도 포용력 있게 일본 문화를 논한 그의 등장으로 일본 문화계는 한국의 지식인들에게 호의를 갖게 되고, 오늘의 대중문화 한류를 예감하는 지식 한류가 일기도 했다.

작은 의문도 지나치지 않는 무신론자였던 그가 과학의 이치를 넘어선 종교를 받아들이게 된 것은 사랑하는 딸의 불행이라는 개인적인 사건 때문이었다. 그러나 『지성에서 영성으로』(2010)에서 시작된 그의 영적인 삶은 결국 개인의 불행을 넘어 새로운 문화적 패러다임의 창조로 이어졌다. ‘하나하나의 생명이 소중하다’는 종교적 생명관에 뿌리를 둔 그의 생명 자본주의 운동은 방만해진 자본주의의 혁신을 주장하며 우리의 삶의 조건을 새로운 상상력으로 보게 한다.

모국어를 빼앗긴 설움을 새로운 문학언어 조립으로 극복한 고독한 문학청년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계 거성이 된 지금까지 이어령의 정신을 일관하는 키워드는 ‘창조’로 요약된다.

신에 대한 믿음에 기초한 새로운 인간성 탐색으로 새로운 문화자본을 발견하려는 그의 도전이 미래에 어떤 흐름을 창조해 낼까. 훗날 역사의 증언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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