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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1)대숲의 윤리<중앙일보 창간 6주년 특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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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대숲의 윤리>
(창간 6주년에 붙여|박두진)
대나무는
대나무로 더불어
싱싱하고 힘차게
빽빽하고 늠름하게
대나무들의 숲을 이루고 산다.
대나무 숲은 대나무들의 마음으로
대나무 끼리의 기상으로
대나무만의 뜻
대나무만의 정신
대나무만의 절개
대나무만의 청청한 지조로 산다.
대나무는
차라리 꺾일지언정
휘지 않고
차라리 꺾이지도 휘지도 않고
벌레 먹어 썩지도 않고
언제나 깨끗이
언제나 곧고 바르게
대나무의 지향은
오직 수직
위으로 위으로 하늘 높이만 향해서 뻗는다.
대나무 숲은
바람이 불면 피리소리
청아하고 소슬한 마음의 소리
대바람 소리의 소슬한 멋
그것을 듣는
사람들의 마음 속에 잠자고 있는
그러한 소슬함을 일깨워주고,
대나무 숲의 대나무들은
언제나 청청한 날카로운 잎새
텅 빈 대궁의 의젓한 겸허
그 마디와 마디의
정확한 절도
억세고 늠름한 기상으로 서서
마음이 휜 사람이 바라 보면
마음이 휜 스스로가 부끄러워 얼굴 붉히고
지조가 없고 욕심이 많고
추하고 치사한 사람이 올려다 보면
가만히, 스스로 탄식하여 고개 숙이고
날카로운 잎새가 양심 찌르고
뻑뻑한 그 대궁들이
위엄스러워 진다.
대나무 숲은
옛날에는 옛날
오늘은 오늘에도 우리들의 교훈
오래 오래 성현들이 마음 수그렸고
아끼고 사랑했고
오늘일수록 더욱 더
높은 그 뜻 새롭다.
그렇다. 우리들 오늘 너무
너무 많이 때묻고
너무 많이 잘 휘고
너무 많이 잘 꺾이고
너무 많이 썩고,
너무 많이 그 본분을 잃고
방황하고 있다.
아니, 우리들 오늘
스스로 휜자가 곧은 이를 비웃고
스스로 썩은 자가 깨끗한 이를 욕 주고
스스로 마음 검은자가
마음 정결한 이를 짓밟으려 든다.
아, 저 대 바람 소리의 소슬
쭉 쭉 하늘로 하늘로의 대숲의 뻗음
그 지향 그 고고
그 씩씩하고 절개 높은
곧고 바르고 그리고 억세면서 겸허한
한결같이 청청한
대의 뜻 대의 정신
대의 마음 대의 지조 대의 품격은
나 하나 오늘 우리
온 나라 온 겨레의
누구나 우러르며 마음 되새겨
겸허하고 성실하게
가슴에 그 손을 얹고 깊이 본받을
싱싱하고 줄기찬 지표이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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