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민 김 총무의 사표 저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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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신민당 김재광 원내총무의 사표 소동은 단 10시간만에 일단 수습됐으나 당 내외에 씁쓸한 여운을 남기고 있다.
김 총무는 지난 7일 하오 정례정무회의가 끝난 후 사의를 결심, 8일 아침 효창동 김홍일 당수 댁을 찾아가 사표를 정식 제출했다.
김 총무의 갑작스런 사표 제출은 표면상으로는 군특수범 난동사건 국회특조위의 신민당측 조사위원들(이철승 전수한 이세규 채문식)이 당론을 어기고 단일보고서 작성에 합의해 준 것을 문제 삼은 것.
사표 제출의 직접적인 동기는 7일 하오 정무회의에서 드러난 불화였다.
내무문책이 보고서에 채택되지 않을 때 야당 단독보고서를 내기로 한 당론이 묵살된 조사위의 보고서 문제를 의제로 올리면서 김 총무는 『소속의원들이 당론을 예사로 뒤엎는 분위기 속에서 총무를 어떻게 하겠느냐』고 불평을 털어놨다.
김영삼 의원과 박병배 정책심의회의장이 총무의 입장에 동조했다.
조사위원인 이철승 의원은 『내무장관을 비롯한 인책문제도 반영했는데 굳이 단일보고서에 반대할 이유가 어디 있는가』면서 「소신껏」했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김 총무와 박 의장은 다시 『전체의견 아닌 소수의견으로 기록된 것이 어째서 반영됐다는 얘기냐』고 반박하는 등 언성을 높이며 다투었다.
이 문제가 결론이 나기 전에 양일동씨가 『요즘 보니까 김 총무가 지방 자치제 투위라는걸 각 도별로 구성했는데 이건 왕당파(김 당수 지원세력)를 만들겠다는 것 아니냐』고 김 총무를 몰아세웠다. 어떻든 회의는 어떤 문제에도 결론을 내리지 못한 채 서로 옥신각신 다투다만 회의가 되고 말았고 이것이 김 총무가 『사표로 그동안 잃은 것을 만회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 듯 하다는 것이 간부들의 풀이다.
어떻든 김 총무는 사표를 제출하면서 『의원총회가 오치성 내무장관의 인책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는 별도로 보고서를 내기로 했음에도 내무장관에게 훈장을 주어야겠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총무와는 상의도 없이 단일보고서에 합의를 해주었으니 나 자신 총무로서의 「리더쉽」부족에 책임을 지고 한편으로는 당론을 어긴 개인 행동을 규제하는 전례를 만들기 위해서 사표를 냈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또 『지자제투위의 도책 중 내 사람이라고는 한 사람밖에 없는데 당운을 걸고 관철해야할 이 문제를 두고 왕당파 운운하면서 파벌 의식으로 걸고드는 풍토에서 어떻게 총무를 하겠느냐』 『추예 안을 통과시켜 주자고 떠들고 다니는 당 중진이 있다』 『차제에 당수병이나 대통령 후보병이 걸린 사람들은 자숙해야겠다』고 몇 몇 특정인을 비난하기도 했다.
김재광 총무는 총무 취임이래 불과 한달 반 남짓 되는 사이에 김대중 양일동씨 등 비주류는 물론 주류의 김영삼 이철승 정운갑씨 등 모든 세력으로부터 계속 견제를 받아 왔다. 이 견제는 그가 사법파동 처리에서 자신의 실책으로 의원총회에서 「브레이크」가 걸린 이래 거의 노골화했고 총무단은 그 능력의 한계를 드러낸 느낌이었다. 외유의원 선정, 상임위 배정, 발언자 선정 등 총무단 이하는 거의 모든 일에 의원들의 반발과 불평이 따랐다.
여기에다 공화당의 김재순 총무는 총무회담 때마다 『야당엔 총무가 몇 사람이냐, 그 문제는 의원총회와 상의하고 나왔느냐』고 리더쉽의 부족을 비꼬았고 장경순 부의장 같은 이도 『원내 통제를 좀 잘하시오』라고 핀잔을 주기도 했다. 이런 과정으로 보아 보고서 문제를 사표의 계기로 잡은 것일 뿐 저변에는 김홍일 당수의 친위대 내지는 원내총무의 권위 확립이라는 절실한 필요가 그 밑에 깔려 있었다고 봐야 한다.
어쨌든 김 총무의 사표는 애초부터 수리가 전제된 사표가 아니었다. 사표가 제출되자 김홍일 당수는 원내대책위를 긴급 소집해서 사표를 찢어버리고 백지화한 것으로 일단락 됐다.
김 당수는 사표가 반려된 뒤에도 이틀 동안 국회에 나오지 않은 총무에게 『당신이 그만 두려면 나하고 함께 그만 두어야지』라고 했다.
이에 대해 당내에선 당수가 총무를 견제하고 지도할 줄은 모르면서 일방적으로 두둔한다는 평도 있다.
김 총무의 사표 소동은 김홍일 당수에 의해 반려되어 일단락 됐지만 이를 계기로 노출된 당내 각파의 알력은 이른바 「왕당파」출현에서 오는 문제보다는 상호 견제 작용 과정에서 빚어질 기존 세력 균형이 파괴되지 않을까 하는 점에 신경을 쓰고 있는 것으로 보아 내연 상태로 들어설 것 같다. <허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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