균형된 근대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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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얼마전 외국친구의 저녁초대를 받고 모「호텔」의 옥상 스카이·라운지에 올라간 적이 있었다. 그때 느낀 것이지만, 어느새 서울엔 이렇게 많은 고층건물이 들어섰는가. 한참 황홀한 기분으로, 또 흡족한마음으로 이 외국친구에게 자랑삼아 이곳 저곳을 설명했다. 한국도 이제는 근대화되었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사실상 한국동란으로 황폐했던 서울이 20년 정도로 이같은 눈부신 발전을 이룩했다는 것은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일이 아닌가.
그런데 문뜩 이 고층건물들이 화폐로 쌓아올린 듯 싶은 착각을 일으켜 돈으로 환산해보고 싶어진 것이다. 그러나 어마어마해서 따져볼 수 없었다.
화폐로 쌓아올린 고층 빌딩을 상상하자 우골당이라는 풍자어에 생각이 미치어진다. 시내 대학들이 한창 큰 건물을 지을 때 이러한 별명을 붙였던 것이다. 농촌에서 자제들을 대학에 보내기 위하여 소를 팔아 등록금으로 내면 그것이 대학 건물로 변했기 때문에 풍자해서 한 별명이다. 대학에도 고층건물이 많이 들어선 것이다.
옆자리의 외국 친구는 참으로 서울은 아름답고 어느 선진국의 도시에 비해서 손색이 없을 정도로 근대화되었다고 칭찬을 한다. 동남아 어느 나라에서 온 이 친구는 진심으로 칭찬을 하고 부러워하는 것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하늘같이 높이 치솟은 고층빌딩은 나라 전체수준으로 보아서 불균형한게 아닌가 농촌의 소가 우골당으로 변했으나 농촌에는 무슨 혜택이 돌아갔는가. 사회가 급속도로 변천할 때에는 반드시 거기에는 「언밸런스」, 불균형이 따르기 마련이기는 하다. 그러나 이러한 불균형이 그대로 지속될 수는 없는 것이다. 언젠가는 시정되어야 할 것은 당연하다.
이러한 불균형의 혜택으로 부가 어느 한쪽으로 몰렸다고 한다면 그 폐단을 탓하기보다는 다른 형태로 환원시켜야 한다. 이를테면 일반국민에게 혜택을 줄 수 있는 생산성 있는 기관에 투자를 한다는가 해서 평형상태로 가는 방향으로 노력해 주길 바라는 것이다.
우골당을 지어 놓은 대학내부는 부실하기 짝이 없고 훌륭한 빌딩은 지어 놓았으나 공장은 휴업을 하는 불건전한 사회풍토, 기업풍토에서 근대화는 이루어지지 못할 것이다. 기업가는 망해도 기업은 길이 살아남아야 한다. 우리사회는 비상식적인 일이 너무나도 횡행한다.
그러나 하여간 서울의 야경은 한없이 아름답기만 하며 또 서울은 살기 좋은 곳임에는 틀림없다. 【심문택<과기연구소장·이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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